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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동대구로에서] 컬링여자대표팀 광고 촬영 유감

2018-04-04

홈 개막전 시구가 유력했던
삼성 연고지 출신 女컬링팀
LG의 광고 찍었다가 물거품
선수들이 계약을 결정할 때
조언해줄 어른 없어 아쉬워

[동대구로에서] 컬링여자대표팀 광고 촬영 유감
유선태 체육부장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최고 스타 가운데 하나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은 지역(의성) 출신인 데다 소속도 지역팀(경북체육회)이다. 올림픽 폐막 직후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는 지난달 30일 열린 올 시즌 개막전 시구자로 이들을 선택하고자 했다. 영남일보는 삼성의 부탁을 받고 여자 컬링팀 섭외를 연결시켜 줬고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다. 무산됐다. 이들이 LG전자 청소기 광고를 찍은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그게 뭐라고?”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시계추를 20여 년 전으로 돌리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1997년 5월4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치러진 프로야구 LG 트윈스-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KBO가 만든 ‘KBO리그 대첩목록’을 보면 이날 만들어진 기록은 아래와 같다. △한국프로야구 최초 연타석 만루홈런(정경배) △한 경기 개인 최다타점 타이(정경배·8타점) △역대 최다 득점차 경신(22점) △한 팀 한 경기 최다득점(27점) △한 팀 한 경기 최다타점(26점) △한 팀 한 경기 최다루타(58루타) △한 팀 한 경기 최다홈런 타이(9개) 등등. 삼성이 한 경기 공격에 관한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며 LG를 시쳇말로 ‘묵사발’ 만들었다.

이로 인해 경기장 밖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그때 LG는 삼성과의 3연전에서 모두 17개의 홈런을 얻어맞으며 49점을 뺏겼다. LG 천보성 감독은 삼성 타자들이 부정 배트를 사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KBO가 나서 조사를 벌였고 결국 문제없는 배트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래도 의혹이 쉽사리 가시지 않자 KBO는 같은 해 5월24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배트 정밀검사를 의뢰했고 X레이 검사와 도료검사까지 거친 뒤 6월16일 이상이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야구기자 고(故) 이종남씨가 저술에 참여한 ‘한국야구사’에 따르면 “이로써 부정배트 소동은 일단락됐으나 삼성은 부도덕성에 관한 의심을 받아 큰 곤욕을 치렀어야 했다. 삼성은 LG가 삼성구단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데에 양식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했으나 LG는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삼성이 쓰던 것과 동일한 배트를 구해다 쓰기에 급급했다”고 기술했다. 당연히 그 일로 두 팀 간 감정의 골은 깊게 파였고 아직도 완전히 메워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의 선택은 다시금 두 팀 간의 골을 파내는 꼴이 된 듯하다.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의 선택을 두고 누구도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이들을 대신해 홈 경기 시구자로 나선 지역 출신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천500m 금메달리스트 임효준 선수 역시 충분히 자격이 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이들이 삼성 개막전에서 시구할 것 같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지역민들은 수십 년 동안 지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과 지역에서 나고 자랐을 뿐 아니라 음지에서 미래를 개척하며 새로운 지역의 대표 주자로 급부상한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의 환상적 조합을 머릿속에 그리며 흐뭇해했다. ‘지역 출신 대표 정치인의 잇단 몰락과 개선되지 않는 지역민의 정치적 편향성’ ‘수년째 제대로 보이지 않는 미래’ 등으로 인해 급격하게 떨어져 버린 애향심과 자긍심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젊은 선수들이 LG와 광고 계약 결정을 내리기 전, 분명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이 주변에 있었을 텐데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그들도 다른 지역민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에 저간의 사정을 얘기해 줬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유선태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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