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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논설위원의 직터뷰]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 '작은 거인의 꿈' 김홍일 센터장·이승혜 사무국장 "세상과 단절한 청년들에 친구처럼 다가가 잠재된 꿈 끌어내줘요"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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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의 꿈' 김홍일 센터장과 이승혜 사무국장이 센터 팻말을 함께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우리 사회가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고독은 아름답다." 가슴을 후벼 파는 시어(詩語)다. 동서고금의 시인들은 그런 말로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하곤 했다. 그러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절대 고독에 갇혔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나. '죽음보다 무서운 게 외로움'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오늘날 이런저런 이유에서 고독을 자처하고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다. 안타까운 것은 미래의 주역이자 버팀목인 청년들 가운데서 은둔형 외톨이가 늘고 있다는 현실이다.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청년 인구 가운데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2021년 기준 5%(50여만 명)에 이른다. 대구는 2만7천명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청년'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는 또 다른 '청년'이 있다. 지난해 설립된 대구시 승인 비영리 단체 '작은 거인의 꿈'을 이끌고 있는 김홍일 센터장과 이승혜 사무국장이다. 1999년생 동갑내기 대학생이다. '작은 거인의 꿈'은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진입을 위한 다양한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꾀한다. 영남권 첫 은둔형 외톨이 지원 단체다. 이들을 만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동지이자 연인으로 의기투합
기대 부응 못하자 자책감·원망
사회 나가고 싶어도 두려움 커
주위 마음 아픈 친구들 돕기로

오랜 기다림·얘기 들어주는 것
멘토와 신뢰 쌓이며 마음 열어

은둔 풀고 봉사·취업…큰 보람
앱 소통창구로 체계적 지원 계획

▶어쩌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빛이 나지 않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일을 하게 된 동기는.

△김홍일="저 또한 또래 청년들과 다를 바 없었죠. 불과 수년 전까진 앞으로 뭘 해 먹고 살아야 할지 늘 고민이었어요. 그러던 중 군 입대를 했는데, 주위에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랐죠. 문득, 사회복지사 일을 하면 그런 친구들을 도울 수 있겠다고 여겼어요. 내친김에 공부를 시작했죠. 틈틈이 준비한 끝에 전역 해인 2021년 최종 자격증을 땄습니다. 사회에 나와 보니 은둔형 외톨이가 적지 않다는 걸 확인했죠. 다 제 또래 친구들이잖아요. 그들에게 다가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작은 거인의 꿈'은 그런 각오의 결과물입니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몰과 주위 후원을 통해 상담·봉사 활동 등 운영 경비를 마련하고 있어요."

김 센터장과 이 사무국장은 2년 전 대구에서 청년 활동을 하다 만났다. 두 사람은 MZ세대 말로 '남사친' '여사친'으로 지내다 지난해 은둔형 외톨이 지원 사업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지금은 동지(同志)이자 연인(戀人) 사이다.

▶'작은 거인의 꿈', 이름이 독특하군요.

△이승혜="'작은 거인'은 꽃을 피우기 전엔 씨앗같이 작은 모습이지만 활짝 피면 누구보다 화려하고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이를 뜻합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그들의 잠재돼 있는 '꿈'을 끌어내 스스로 일어서게 해준다는 뜻에서…."

▶은둔형 외톨이는 왜 마음의 문을 닫으려 하는지요.

△김홍일="이유는 천차만별이죠. 어렵게 고백한 그들 얘기에 따르면 과거부터 누적돼 온 열등감과 열패감 때문이지요. 경쟁·체면 중시 사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은둔의 길로 들어선 거죠. 부모와의 오랜 갈등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고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쌓여 원망감으로 변한 경우죠. 어릴 적 학교 폭력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들 언젠가는 사회로 나가고 싶어 해요. 너무 오랫동안 은둔하다 보니 세상 밖 타인들의 시선이 두려울 뿐인 거죠."

▶사회적 편견이 적지 않습니다. '묻지마 범죄'도 은둔형 외톨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승혜="은둔형 외톨이 가운데 조현병을 앓거나 지능지수가 현저히 낮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대인 기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마음이 좀 아프고 결핍돼 있지요. 결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닙니다. 일반인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성격 유형'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와의 상담 과정이 녹록지 않겠습니다.

△김홍일="찾아가면 방문부터 걸어 잠가요. 마음의 빗장이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줍니다. 그때부턴 제가 심리상담사이기 전에 그들의 '친구'가 됩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친구를 그리워하는 존재'이거든요.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들은 온종일 애니메이션만 봐요. 반면 한국의 외톨이들은 SNS도 하고, 게임도 즐기는 등 스스로 사회 참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변화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죠. 이제 사회가 이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함께 부대끼고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은.

△김홍일="멘토(상담사)와 멘티(외톨이) 사이에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합니다. 처음엔 대화를 거부합니다. '여기 왜 왔냐'는 반응이죠. 오랜 기다림 끝에서야 대화의 물꼬가 트입니다. 외톨이들은 설움에 북받친 듯 울기부터 해요. 속에 있는 말을 꺼내려는 시그널이죠. 멘토는 자상한 친구처럼 그저 얘기만을 들어줍니다. 누군가가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것, 그들에겐 낯선 일이지만 간절히 바랐던 일이기도 해요. 3개월가량 이 과정을 반복하면 대화가 무르익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들에게 미션을 주고 '스펙 쌓기'를 유도합니다. 각종 알바는 물론 저희 단체가 운영하는 봉사단·텃밭 농사 프로그램에도 참여시켜요. 저희가 케어한 이들 가운데 무려 7년을 은둔한 사람이 있었어요. 성실히 상담을 받고 봉사활동을 펼친 끝에 은둔을 풀었습니다. 최근엔 취업에 성공했다며 연락도 왔고요. 말로 표현 못 할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역 사회의 관심과 대책은 어떻습니까.

△이승혜="2022년 대구시에서 '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 조례'가 제정됐어요. 근데 '고립'과 '은둔'은 분명히 달라요. 고립 청년은 사회적 연결 네트워크가 부족한 이를 일컫지만, 은둔 청년은 그게 완전 결핍돼 있는 사람이죠. 전자는 홀로 서 있을 순 있지만 후자는 그마저도 어려운 사람이에요. 대구 일부 기초지자체엔 '은둔 청년 지원 조례'가 있어요. 대구시도 관련 조례에 '은둔 청년'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민·관이 현황과 정보를 공유해 은둔 청년을 도울 수 있는 공공지원센터도 설립해야 하고요. 때마침 대구시가 은둔 청년 실태 조사를 진행 중이거든요. 오는 10월쯤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사를 읽는 독자 가운데 은둔형 자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김홍일="은둔형 자녀를 둔 부모님 대부분이 수치스러워해요. 혹시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지 하는…. 백번 이해하고도 남죠. 하지만 외톨이 문제는 가정 안에선 결코 해결되기 어려워요. 우리 사회가 시스템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부모님의 경우 저희 센터에 있는 전문 상담 선생님(2명)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보호되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주저하지 말고 SOS를 쳐 주세요."

▶'무거운' 질문만 했네요. 온종일 '외톨이' 일로 바빠 두 분이 데이트할 시간도 없지 싶은데.

△김홍일·이승혜="왜 어려운 일에 매달리냐는 주위의 걱정 어린 말씀도 없지 않아요. 하지만 저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죠. 말하고 보니 자화자찬이네요(웃음). 데이트가 뭐 별건가요.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뜻을 갖고 함께 미래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데이트 아니겠어요."

▶향후 계획은.

△김홍일·이승혜="'작은 거인의 꿈'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켜 좀 더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사업을 펼쳐보고 싶어요.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해 그들과의 지속적인 소통 창구로 키워 볼 생각입니다. 이밖에 외톨이들이 직접 자기 발로 '작은 거인의 꿈'을 찾아올 수 있도록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세상의 공익적 가치를 더하는 일에 매진하는 이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처럼 '아름다운 청년'을 만난 것 같다. 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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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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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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