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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의 민초통신] '바이든 -날리면'부터 풀자

2024-04-30

"진정한 소통은 지난 내 허물
들춰내 고치는 용기도 필요
'정치하는 대통령'이 이제는
나라 바르게 하는 계기되길"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아주 원론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정치란 무엇인가. 누구든 머릿속에 어떤 '상(像)'이 가물거릴 것이다. 아마 금방이라도 쉽게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걸 말로 정의하고 명쾌하게 풀어내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정치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나라를 바르게 하는 것' 등 단박에 이해하기 난감한 해석을 내놓는다. 더 부연해 설명해주면 그제야 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금방 또 '다른 상'이 머릿속에서 어른거리곤 한다. 그만큼 정치는 천의 표정을 지녔다.

총선에서 참패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말해 화제다. 한사코 거부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을 제안한 직후 참모들에게 그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비서실장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치하는 대통령'에 대한 기자 질문을 받았다. 답은 이랬다. "지난 2년은 국정과제의 설계와 집행에 업무 중심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국민께 더 다가가 소통하겠다는 뜻이다. 야당과도 좀 더 설득하고 소통하는 데 주력하겠다." 지난 국정운영과 앞으로 해나갈 일을 설득, 소통을 빌려 설명했지만 뭔가 다른 상이 가물거리는 듯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은 대통령이 '정책 방향은 옳았고 소통 문제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식'으로 총선 민의를 부정하며 결국 변하지 않겠다는 강변만 늘어놓았다고 비판했다. 마땅히 정치 중심이어야 할 대통령이 그동안은 뭘 하다 이제야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냐는 핀잔도 덧붙였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오만과 독선, 불통으로만 낙인찍힌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설득과 소통을 내세운 그 자체가 어떤 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유권자들도 그렇게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국가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표자가 그 영토와 국민을 위하여 실행하는 여러 가지 일'이 정치의 기본일진데 그 같은 기대를 꼭 성급하다고 내칠 이유는 없다. 다시 말해 정치의 순기능을 ①갈등을 해결하고 다툼을 종식하는 '갈등 해소' 측면과 ②미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공동체 형성'의 두 차원에서 보고 윤 대통령이 이제 ①을 바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해보자는 것이다. 정치의 특성은 갈등이며, 갈등이 곧 정상궤도를 벗어난 비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늦게나마 조정용 설득과 소통을 말하게 됐다고 믿고 싶다는 얘기다. 소통에 전념하다 보면 자연히 ②까지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기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요즘은 대통령에 대한 냉소주의가 현명함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돼 있는 분위기다. 세계 전쟁 위협과 경제 불안, 양극화와 끝없는 정치 대결, 인권의 추락과 언로 폐색, 재난 등 사건 사고 빈발에 정부와 국회 정당이 전혀 손을 못 쓰고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는 인식이다. 어떤 문제는 대통령이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시키기보다 오히려 조장하고 이용한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입으론 공정과 상식을 말하지만 제 식구는 무조건 감싸고 범죄로 의심되는 일마저 멋대로 '퉁치려는' 모습을 보여 냉소를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누가 봐도 사과할만한 일을 되레 뭐가 잘못이냐고 윽박지른 경우 역시 적잖았다. 용산 집무실과 한남동 관저를 둘러싼 극소수의 사람과만 통하며 정치를 한다는 말까지 나오던 판에 선거에서 지고야 국민과 야당, 설득과 소통을 얘기하니 솔깃하지만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더욱 문제는 '정치하는' 대통령, '국민에게 다가가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데 있다. 진정한 소통이라면 그저 상대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난 내 허물도 스스로 들춰내 고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잘못을 지적해도 귀 막고 무시했던 '오기'에 대해 이제는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는 각오 또한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당연히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 당신의 잘못이라고 지적해온 사안일 것이며 그 후과(後果)가 국정에 큰 악영향을 끼친 일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가을 취임 넉 달 만에 터진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사건'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언론계에선 특히 이 사건의 왜곡을 바로잡아 정상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의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경위야 어떻든 대통령 본인의 말실수 탓에 터진 그 일은 강변과 억지, 권력 남용성 제재와 법정 다툼으로 얼룩지며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단숨에 깎아 먹었다. 취임 당시 50% 선이던 윤 정부 국정 지지율은 사건 후 반 토막, 24%로 급전직하했다. 국내는 물론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나중에 한국은 언론 자유가 침해받는, '독재화의 길로 들어선 나라'로 지목되는 단초가 되었다. '48초 한미 정상 환담'을 마치고 나오며 윤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에게 한 말, "국회에서 이 OO들이 승인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를 둘러싸고 ××××가 '바이든'이냐 아니면 '날리면'이냐로 온 나라가 쩍 갈라졌던 소모적 듣기 평가 논쟁은 방송사를 둘러싼 심의 제재, 법정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인 현재 시제다.

다시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이 사건은 윤 대통령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한 부분만이라도 유감을 표시하고 나섰다면 크게 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본인이 정말 무슨 표현을 했는지, 정 아니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상황 설명만 조금 했더라도 둑 터진 물줄기처럼 여기저기 내지르며 흘러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귀국 후 도어스테핑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건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라며 진상규명을 강조했고 상황은 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진짜 사실이 뭔데 사실과 다른 보도로 모느냐는 볼멘소리는 여전히 죽지 않았다. 욕설과 비속어가 여과 없이 구사되는 영상은 여전히 온라인을 떠돌며 사람들을 부끄럽고 찜찜한 상태로 내몰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언론 자유가 빠르게 침식되는 나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의 '정치하는 대통령론'이 이제는 정치냉소주의를 불식하고 나라를 바르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바이든- 날리면 논란'을 앞장서 푸는 것도 그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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