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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잘 아는 사람의 낯선 행동을 마주하게 되면

2024-05-06

사회지도층 사적 일로 비난
공적자리 물러나는 일 잦아
공인, 공적 역할만하지 않아
공·사 일 분리하여 이해하는
한층 열린 사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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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진 대구대 총장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의 낯선 행동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조금 전까지 편하게 대해주던 사람이 사나운 모습으로 나오면 당혹스럽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낮과 밤이 다른 사람도 드물지 않다. 사적인 자리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공적인 자리에서 하는 말이나 행동과 크게 달라서 술자리라도 마주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벼락출세하거나 큰 부를 쌓은 사람이 뽐내거나 잘난 척이 지나쳐 친구나 동료를 대하는 태도가 종래와 달라지면 손가락질과 눈총을 받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통합된 개성과 일관성을 가진 존재이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날 때는 가능하면 상대방의 겉모습과 인상을 살피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며 성격을 파악하려고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일정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남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나 남이 나를 보는 이미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지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로 당연시하고 기대하는 행동이 있다.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가 달라져도 일관성 있게 행동할 것으로 기대된다.

착한 사람은 시간과 장소가 달라지고 상황이 변해도 응당 착하게 행동할 것으로 기대한다. 착하던 사람이 어쩌다 실수로라도 나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당황하게 되고 선뜻 이해하지도 용납하지도 않으려 한다. 반면 나쁜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할라치면 그냥 그러거니 하며 쉽게 받아들인다. 나쁜 사람은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어쩌다 하는 착한 행동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진다. 학창 시절 불량 학생이 간혹 반듯한 자세로 공부하는 각오라도 다질라치면 다들 왜 그러느냐 묻거나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의심한다.

우리는 누구든 사회 내에서 다양한 지위를 가지고 살아간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버지로, 학교에서는 학생이나 선생님으로, 회사에서는 과장이나 부장으로, 친구들과는 친구로서 살아간다. 사회적 위치와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기대되는 모습과 행동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지위에 따라 기대되는 역할을 하면 될 듯하다. 하지만 다양한 지위와 역할이 좀처럼 통일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합리적이고 냉정한 직장인이 가정에서는 자상하고 너그러운 부모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100년이 안 되는 짧은 동안 성큼 선진국으로 발전하였다. 지금처럼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수행하는 역할은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하고 다양하다. 사람들이 수행하는 복잡한 지위와 역할에서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하기 한층 어렵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이며 사회적 성취가 축적되면 저마다 감당할 지위와 역할이 다양하고 복잡해진다. 사람들이 일정한 성취를 이루고 나면 새로운 지위와 역할이 생겨난다. 전과 후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한편으로 불가피한 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 속에는 머리가 여럿 달린 존재가 등장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네의 말과 행동은 이런 다면적인 모습에 더 가깝다. 머리가 여럿 달린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일 수 있다. 사회 지도층이 사적인 일로 비난받고 공적인 지위에서 물러나는 일이 잦다.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공인이라고 공적인 지위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일을 공적인 일과 분리하여 이해하고 사적 영역에서의 일은 엄격히 사적인 일로 받아들이며 너그럽게 포용하는 한층 열린 사회를 기대해본다.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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