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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칼럼] 나의 작은 거인에게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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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고, 어린이에 대한 애호사상을 앙양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 어린이날이다. 여기에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든가, 어린이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만 해당한다는 내용은 없다. 어린이날이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것에는 누구나 어린이날의 뜻을 기리고 그 의미를 기억하며 노력하자는 의미가 담긴 것일 테다.

지난 5월5일, 주변의 어린이와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느 휴일처럼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열린 감각으로 온 세계를 수용했던, 어른과는 다른 시선과 상상의 폭을 지닌 감수성을 일깨우는 방법이 있다면 바로 아동문학을 읽는 것이 될 수 있다. 동시를 읽고 공부하며 깨진 편견 중 하나는 동시는 쉽고 단순하며 주로 의성어와 의태어로 이루어진, 언어에 대한 감각을 깨우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물론 어린이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은 단어 사용과 단순한 구조는 동시라는 장르가 지닌 하나의 장점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새롭게 만난 동시들은 어린이도 읽을 수 있는 시, 내면을 건드리고 몰랐던 곳을 가보게 하는, 멀리 그리고 깊은 곳까지 나아가게 하는 시였다. 웹진이나 메일링 서비스 등 문학이 독자에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다가가는 시대인 만큼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매주 미발표 신작 동시를 배달하는 레터링 서비스가 있다. 바로 동시전문잡지 '동시마중'을 만들어가는 편집인 이안 시인이 2023년 1월 창간한 '블랙'이다. 독자들의 후원금으로 만들어가는 '블랙'은 카카오톡 채널을 구독하면 누구나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5월5일 기준 75호까지 발행된 '블랙'은 동시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발표한 시인들 중 12인의 동시 60편을 모아 동시 선집 '나의 작은 거인에게'를 출판사 상상에서 출간했다. 현재 동시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열두 명의 시인은 대부분 아직 첫 시집을 출간하지 않은 신인으로, 시인에게도 독자에게도 귀한 지면이다. 각자가 가진 고유성과 더불어 그들이 접속하는 어린이들과 현장이 담긴 동시들을 다채롭게 만날 수 있다.

"동그라미/ 동그으라미/ 크기가 달라도// (중략) 시작은 언제나/ 한 발로/ 땅을 찔러 딛는 일// 다른 발을 뻗을 때/ 쓰러지지 않도록// 기우뚱 서 있는/ 한 발을/ 믿어 주는 일" 동시 선집에 수록된 김기은 시인의 '컴퍼스'는 미숙했던 처음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위태롭고 기우뚱한 한 발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종종 맞닥뜨린다. 그러나 자신 있게 발을 뻗을 수 있는 이유는 딛고 설 수 있도록 어른의 자리에서 마련해 놓은 '땅'이 선행되어 있기 때문이며 한 발이 한 발을, 서로가 지탱해주는 믿음 때문이다.

자라면서 잊거나 사라져간 시절과 이야기가 복원될 때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린이의 세계가 넓고 깊게 확장되면서 나와 세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주변의 어린이와 내 안의 어린이는 너무나 작은 존재지만 거인처럼 존재감이 크다. 나의 작은 거인에게 말 걸며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나날이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각기 다른 열매를 맺어갈 씨앗을. 그 작은 씨앗이 제 몸집보다 큰 열매를 맺는 놀라운 경이를.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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