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때문에…서원 앞 호수 너머 ‘과거 시험장’ 참 뜬금없이 서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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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2년 도산별과를 보았던 송림 자리를 표시한 시사단. |
안동호 거대한 물은 산 아래를 쓰다듬으며 강처럼 둥글게 굽어져 흐른다. 서원 앞 너른 흙은 왕버들의 연둣빛 그림자로 채색되었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햇살이 쏟아지고 물 내가 인중을 적신다. 나무 아래 굳게 네모난 열정(冽井)이 새살스러운 것들에 얼룩지듯, 온 몸의 촉각이 나른해지고 촉촉해진 눈동자가 찔끔 동공을 씻어낸다. 이런 계절을 앞에 두고 그 옛날 학생들은 어찌 공부를 하였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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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왕버들이 있는 안동 도산서원 전경. |
◆안동 도산서원
주차장이 있는 입구에서 서원까지는 천천히 10여 분을 걸어야 한다. 길가에 심어 놓은 키 낮은 가로수는 갈빗대 모양으로 정지되어 있다. 가로수 너머는 낭떠러지, 그 아래엔 안동호다. 산길 걷는 걸음걸음 수평의 풍경이 받아주니 느긋하고 안정감 있다.
산을 등지고 호수를 바라보는 서원은 꽤 규모가 있다. 시작은 퇴계 선생이 유생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이었다. 당시에 있었던 것은 학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제자들이 힘을 합해 세운 연락서재 정도다. 서원의 중심 강당인 전교당과 동재, 서재, 서고인 광명실, 서원 관리인의 살림집인 두 채의 고직사, 목판본을 보관하던 장판각, 선생의 위패를 모셔놓은 상덕사 등은 선생의 사후에 지어진 것들이다. 유물전시관은 물론 가장 최근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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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실 앞의 능소화가 타고 올라간 나무. 협문을 나가면 도산서원의 유물 전시관인 옥진각으로 향한다. |
몇 계단 위 정문에 들어서면 직선의 층계가 진도문까지 오른다. 계단의 오른쪽은 온통 정원인데 가꾸는 정성이 눈에 보인다. 왼쪽에는 농운정사와 하고직사가 자리한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소박하다. 진도문 양 옆에는 동서 광명실이 서있다. 서고인 광명실은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어졌다. 창을 열면 멀리 안동호가 보일 것이다. 책을 보관하는 곳이라지만 책 읽다 딴 생각하기 좋은 곳이 틀림없다. 서 광명실 앞에 능소화 한그루가 대단한 포스를 내뿜으며 서있다. 유월이 깊어지면 꽃이 필 텐데, 상상속의 그 광경은 SF 영화적이다.
진도문을 통과하면 강당공간이 열린다. 양쪽에 동재와 서재를 거느리며 전교당이 우뚝 올라서있다. 대강당인 전교당은 보물 210호다. 도산서원은 1575년 선조 8년에 사액을 받았는데 전교당의 ‘도산서원’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그리 크다고 할 순 없지만 원내의 대부분 건물들이 워낙 조막조막해서인지 꽤 우렁차게 느껴진다. 올려다보는 시선의 효과도 있을 것이고,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정리대상에서 제외된 곳이었으니 퇴계 선생의 이름이 지닌 무게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전교당 뒤 상덕사(보물 211호) 삼문은 잠겨있다. 전사청 앞에서 전교당을 내려다본다. 풀빛의 판문과 청색의 빛으로 물든 강당마루, 그리고 기와의 질서와 오래된 색감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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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 서당 옆 퇴계선생이 직접 가꾸시던 화단 절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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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문에서 정문을 보다. 오른쪽이 농운정사와 고직사, 왼쪽이 서당을 감춰 둔 화단. |
◆도산서당과 절우사
정문에 들어서면 보이는 정성스러운 정원, 도산서당은 그 속에 감춰진 듯 자리한다. 선생은 60세에 4년에 걸쳐 서당을 짓고 아호를 ‘도옹(陶翁)’이라 정했다. 옹기쟁이 늙은이, 왜 그리 지으셨을까. 건물은 작고, 건물 벽에 난 문은 더욱 작다. 서당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선생은 꽃중의 군자 연꽃을 심고 정우당이라 하였다. 서당 옆은 비가 오면 물이 흐를 것이라 짐작되는 좁장한 계곡이 있고 그곳을 한 발짝 폴짝 넘으면 작은 정원이 있다. 얼핏 정원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산 속에서 자연스러운데, 몇 그루 나무가 자라고 있는 그 작은 땅은 퇴계선생의 화단이었던 절우사다. 선생은 이곳에 매화와 대나무, 국화, 대나무 등을 직접 심고 가꾸었다고 한다. 이 작은 서당에서 이 작은 화단을 가꾸며 기거한 시간이 7년이었다.
퇴계 이황은 좌찬성 이식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에 아버지를 잃었고, 12세에 논어를 배웠으며, 14세 때부터는 혼자 독서하기를 좋아했고, 도연명의 시를 사랑했다 한다. 20세 전후부터 평생을 병치레하였는데, 1970년 고희를 즈음하여 병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평소 사랑하던 매화에 물을 주게 하시고 침상을 정돈케 한 후 일으켜 달라 하시고는 그대로, 단정히 앉은 자세로 돌아가셨다. 선생의 지와 덕에 대해서라면 사실 상상도 안 되고 절절하게 와닿지도 않는다. 그러나 서당의 틈 많은 마루에 앉아 세계를 휘 둘러보고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면 모든 감응은 완전하다.
◆서원을 바라보는 시사단
서원 앞 호수 너머에 높은 단 하나가 있다. 고대의 제사장 같기도 하고 천문 관측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뜬금없게도, 과거 시험장이란다. 조선 정조는 퇴계선생을 매우 흠모했다고 한다. 그래서 1792년에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를 열었는데 응시자가 7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원래 자리는 송림이었다. 그러나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고, 송림이 있던 자리에 축대를 쌓고 자리를 표시해 둔 것이다. 비각의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채제공이 지은 것이라고.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찾아가는 길
55번 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가다 남안동 IC로 나간다. 5번 국도로 안동시청 방향으로 간 후 35번 국도로 계속 북향하면 도산서원이다. 주차료는 소형 2천원, 관람 요금은 어른 2천원, 청소년 1천500원, 어린이 천원이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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