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계단 수직으로 난 ‘의상봉’…
소머리 닮은 별유천지 ‘우두산’…
첫눈 산길에 하얀 발자국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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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견사주차장-(40분)-고견사-(30분)-능선 갈림길-(20분)-의상봉-(20분)-우두산-(10분)-마장재 갈림길-(30분)-계곡 합수지점-(25분)-고견사주차장.의상봉에서 우두산 정상으로 가는 길. 계단, 난간, 로프를 연이어 만나게 된다. 작은 사진은 우두산 정상에서 마장재로 가는 길에 본 의상봉. 동양화처럼 펼쳐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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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인 지난 7일 전국에 대설주의보가 내리더니 폭죽 터지듯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첫눈산행을 기다리던 차에 이게 웬 떡인가 싶은데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도로가 발목을 잡는다. 빙판도로를 벗어나 겨우 고속도로에 올렸을 때는 벌써 해가 중천에 뜬 뒤였다. 당초 계획한 산은 아직 길이 열리지 않아 뒤로 미루고 도로가 뚫렸다는 거창 우두산(牛頭山·해발1천46.2m)에서 신설을 밟아보기로 한다.
가조IC를 빠져나와 산행기점인 고견사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고속도로와는 달리 빙판길이다. 엉금엉금 기다가 차를 버리고 걷는다. 용케도 우리 일행의 차가 가장 멀리 올라왔지만 주차장까지는 멀다. 폭신하게 내린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앞서간 이들도 신설을 즐기려는 듯 흐트러지지 않고 가지런히 길을 터놓았다. 다리를 하나 건너고 주차장이 가까워지자 기암에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의상봉이 먼저 그 위용을 드러낸다.
우두산은 산의 생김이 소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백두대간인 대덕산 삼도봉에서 남동쪽으로, 수도지맥 가운데 명산으로 꼽히지만 정상인 우두산보다 의상대사가 참선을 했다고 이름 붙인 의상봉이 더 유명해 산 전체를 의상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 이백의 시 ‘산중문답’ 중 인간 세상에 이만한 경치가 또 없다고 표현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구절에서 ‘별유’를 빌려 별유산으로도 불렸다. 최근에는 표석이며 이정표 모두를 우두산으로 표기해두었다.
주차장 끝 등산안내도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장군봉, 바리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정면으로 고견사 1.2㎞ 이정표를 따르면 의상봉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다. 주차장 끝에 고견산장 매점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마장재, 우두산으로 오르는 길과 갈라지는데 정면의 넓은 길을 따르면 고견사까지 모노레일이 등산로와 나란히 깔려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계단을 만나고 계단 중간쯤 오르면 오른쪽 아래에 높이 30m는 됨직한 견암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폭포 상단에 올라서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눈에 묻힌 길 위에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세상 모든 길이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에서 시작되듯이 아무도 지나지 않았다면 꽤나 허둥거렸을텐데, 발자국이 가지런하니 이게 바로 탄탄대로나 다름없다. 20분쯤 올랐을까? 예보에는 갠다던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금세 함박눈으로 바뀌어 사박사박 내려 쌓인 눈 위로 눈이 쌓여 앞서간 발자국을 지워낸다.
마침내 일행이 걷는 이 길이 첫길을 내어 뒤따르는 사람들의 이정표라고 생각하니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다. 이런 신설산행에서 앞선 사람의 흔적을 따르다 앞사람이 잘못된 길을 되돌아온 길까지 고스란히 답습한 경험이 많았던 터라 정확한 길 내기에 신경이 곤두선다.
고견사 일주문 앞에 섰을 때는 평소 30분 남짓하면 걸을 길을 한 시간이 소요됐다. ‘우두산고견사’로 적은 편액이 내걸렸는데 축구공만한 말벌집이 글씨를 가리고 있다. 뒤로 보호수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천년의 세월 동안 우람하게 버티고 서있다. 대웅전 왼편 약수터에서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경내를 돌아보는데 가끔 풍경소리만 땡그랑거릴 뿐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서인지 인기척은 없다. 눈발이 굵어져 꽃비처럼 법당지붕 위에 내려앉고, 쓸어놓은 마당에 떨어져 말 그대로 적막한 절집이 된다.
고견사를 뒤로하고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20분쯤 올라 오른쪽 바위벼랑아래 ‘복전함’이 놓인 자리에 샘터가 있고, 그 맞은 편에 눈을 가사처럼 뒤집어쓴 불상과 불단이 차려져있다.
앞선 등산객 몇 명이 눈길을 헤쳐 나갈 자신이 없었던지 ‘우리는 여기까지가 한계예요’라며 발길을 돌린다. 여기서부터 능선까지 10분 정도는 가파른 경사 길인데다 눈길이라 오르기 만만찮다. 능선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장군봉에서 온 길과 만나는데 의상봉으로 가려면 오르던 길을 정면으로 넘어 잠시 내려섰다가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올라야 의상봉 아래 안부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오똑한 봉우리가 의상봉인데 수직에 가까운 계단이 3단으로 연이어 놓인 200여 계단을 오른다. ‘의상봉 1038m’를 새긴 표석이 서있고 사방은 탁 트여 가야산 일대와 지리산, 덕유산까지 조망처로는 이를 데가 없는데, 눈보라로 가까운 장군봉과 진행할 우두산까지만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다시 안부에 내려와 우두산으로 향하는데 한 무리의 산꾼들이 점심을 즐기고 있다. 다행히도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20㎝가량 쌓인 눈이 바람에 몰린 곳은 허리까지 빠지는 길이라 지나간 사람이 있으니 날로 먹은 기분이다.
정상까지는 450m. 바윗덩이를 오른쪽으로 한번 돌고 왼쪽으로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쳐야 하는 난코스인데 난간이나 로프가 설치돼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몸이 겨우 빠져나가는 바위 틈을 지나야하는 구간도 있어 바위산의 재미를 더해준다. 20분 만에 정상에 오르니 ‘우두산 1046m’라 적힌 표석과 ‘합천 21’이 새겨진 삼각점이 놓여있다.
정상에서 마장재쪽으로 길을 잡으려는데 앞서간 사람의 흔적이 없다. 조금 전에 만난 한 무리의 산꾼들이 여기까지 올랐다가 되돌아간 모양이다. 길을 내어가며 300m를 내려서니 ‘마장재 1.7㎞, 주차장 2.0㎞’라 적힌 이정표가 서있다. 마장재까지 길을 내면서 진행하기는 무리인 듯해서 주차장 쪽으로 길을 잡는다. 잠시 능선을 따르는데 오른쪽으로 지나온 의상봉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진다. 바위며 소나무 위에 하얀 눈꽃이 피어 실경산수화가 따로 없다.
능선을 따라 고도를 낮추던 길은 계곡을 만나면서 내리꽂히는 정도다. 두어 번 계곡을 가로지르며 희미한 등산로를 찾아 길을 내면서도, 뒤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선명한 발자국을 찍어 남기려다보니 내디딘 무릎이 욱신거린다.
함께한 일행이 눈치를 챈 것인지 발등이 묻히는 눈을 툭툭 차가며 앞서나간다. 신설을 밟아보는 욕심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길 내는 데에 제법 소질을 보인다. 그렇게 30분 정도 내려와 계곡 합수지점에 ‘마장재 1.4㎞, 주차장 0.9㎞’의 이정표를 만난다. 주차장에서 마장재로 오르는 갈림길인데 여기부터는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이 찍혀있다. 오른쪽으로 작은 고개를 넘어 사면을 따라 순한 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25분이면 견암폭포 아래 주차장에 닿을 수 있다. 주차장에는 아직까지 차가 올라온 흔적이 없다.
첫눈을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눈 천지 속에서 보낸 하루. 설렘으로 첫발을 내디뎌 동양화 전시장을 돌아 나온 듯 가슴 벅찬 하루를 마무리한다.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학교 강사 apeloil@hanmail.net
■ 우두산은…
◇…우두산은 경남 거창군의 해발 1천m 이상의 산 20여개 가운데 코스를 다양하게 잡을 수 있어 산꾼들로부터 사랑받아 왔다. 의상봉·우두산만 오르면 3시간 남짓 소요되고, 장군봉·바리봉을 지나 정상에 올랐다가 마장재까지 잇는다면 6시간 남짓, 비계산까지 이으면 8시간 정도의 코스도 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코스가 고견사~의상봉~우두산~마장재~고견사주차장으로 되돌아 내려오는 코스다. 식수는 기점인 고견산장 매점 앞의 식수대와 고견사 약수터를 이용하면 된다. 겨울철에는 바위구간과 빙판길이 많으니 크램폰(아이젠) 등 장비를 필히 챙겨야 안전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행을 마무리하고 가조면소재지 온천지구에서 온천욕으로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리는 것도 우두산 산행의 매력이다.
■ 교통
◇…88고속도로 가조IC에서 내려 바로 우회전, 가조면소재지에 들어서 첫 네거리에서 고견사, 우두산 이정표를 따라 4㎞를 진행하면 고견산장 앞에 대형버스도 주차 가능한 주차장이 나온다. (내비게이션= 고견사·경남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산1)
■ 볼거리
△고견사= 해인사 말사로 신라 문무왕 7년에 의상과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터로 알려진 의상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밭 150결을 주고 대궐의 향을 내려 해마다 2월과 10월 수륙재를 지내게 한 사찰이다.
또 이 절에는 고운 최치원이 머물렀다고도 한다. 최치원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고, 의상대사가 도를 닦을 때 날마다 대사와 상좌가 먹을 만큼 쌀이 나왔다는 쌀굴도 있다.
고견사 석불(경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과 동종(경남도 문화재자료 제170호)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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