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쉬어간다는 그곳…예쁘고 다정스러운 간판들이 곰살맞게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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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면 소재지 원촌마을. 구름도 쉬어 간다는 산간마을이 ‘흰구름 마을’로 변화했다. 옥상 위의 간판이 구름처럼 둥둥 떠다닌다. |
호남의 지붕 진안고원. 우리나라 오지의 대명사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의 한가운데 구름도 쉬어 간다는 백운면이 자리한다. 마을 위에는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이 자리하고, 금남과 호남정맥의 산길이 통과하는 마을. 물길과 산길과 사람의 길이 흐르지만 멈추어 소통하는 일이 드물었던 마을, 그곳에 지금 멈추었다.
◆ 진안 백운면 원촌리 흰구름 마을
면 소재지인 원촌리 어귀에 닿으면 아기자기 가꾸어 놓은 초등학교가 싱그럽다. 그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앉은 파출소가 왠지 든든하다. 파란 난간마다 흰 구름이 그려진 다리 아래로 맑은 물이 쫄쫄쫄 작지만 시원한 소리를 내고, 다리를 건너면 햇살에 녹아내릴 듯 노곤하고 조용한 삼거리가 열린다. 무진장 버스 한 대가 흰 구름 할인마트 앞에서 출발을 잊고 서 있다.
구름처럼 떠돌다가도, 새처럼 바쁘다가도, 이곳에 들어서면 잠시 내려앉는다. 예쁘고 다정스러운 간판들이 곰살맞게 반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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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건강원에는 염소 한 마리가 지붕에 올랐다. 옆에는 무인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안쪽은 옛 장터다. |
‘풍년 떡 방앗간’에는 나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새 한 마리가 이삭을 물고 날아든다. ‘용호 카 공업사’에는 ‘카’들이 뒤뚱뒤뚱 달린다. ‘뉴 상설 할인매장’은 하얀 의자 하나를 내 놓았고, ‘흰구름 할인마트’엔 흰 구름이 동동 떠다닌다. ‘희망 건강원’의 슬레이트 지붕 위에는 염소 한 마리가 방자하게 올라서 있고, ‘백운 약방’ 머리 위에는 커다란 흰 구름 하나가 파란 하늘 속에 떠있다. 원촌리 흰구름 마을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탄생한 예쁜 간판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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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산책길을 알리는 표지판. 길은 물길로, 논길로 이어진다. |
마을에는 자전거 길도 나있다. 백운초등학교 어린이들로 구성된 ‘흰구름 탐사단’이 설계한 길이다. 개조심길, 염소똥길, 아무나 수영장 등 척 보면 알 만한 이름들이다. ‘바람을 느껴요’ 길에는 용하게도 바람이 많고, ‘하늘을 보아요’ 길엔 온통 하늘이다. ‘논길 타고 흰 구름 잡고’ 이웃 마을로 마실 갈 수도 있다.
‘가보세 이용원’에는 수십 개의 거울이 사방 가득 걸려 있다. 거울집으로 착각할 정도다. 아저씨는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쪽잠에 드셨다. 손님의자 아래 반원형의 흔적이 당신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희망 건강원과 가보세 이용원 사이 골목길로 들어서면 꽤 널찍한 주차장이다. 그곳에는 옛날 전화번호의 끝자리가 6번이었다는 ‘육번집’, 삽이며 가래가 그려진 ‘대광철물’, 식료품점에 택배 일까지 보는 ‘덕태상회’가 조르라니 앉았다. 나직한 가겟집들로 둘러싸인 터는 한눈에 옛 장터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20년 전까지 오일장이 열렸다. 진안장, 마령장과 함께 3대 장에 속했던 제법 큰 장이었다고 한다. 오일장이 성할 때에는 주민이 300명에 이르렀고, 가장 번성했을 땐 9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은 40여 가구에 140여명이 산다. 서로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 산간마을이다.
프로젝트를 통해 방문객의 수가 조금 늘었지만 실질적인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을 자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스스로 갖게 되는 보람과 긍지 같은 것, 가장 번성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그것은 ‘오래된 미래’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 마실 간다, 논길 타고 흰 구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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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면 운교리의 물레방아. 전북도 지정 민속자료 36호로 지정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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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 상회’는 번성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
논길 타고 흰 구름 잡고 이웃 마을로 간다. 운교리에는 문화재가 된 물레방앗간이 있다. 빨간 지붕 머리에 이어 멋지고 이쁘기 그지없다. 1850년 이전부터 있었다니 160년 넘은 방앗간이다. 옛날에는 지형을 이용해 디딜방아를 놨는데 30년 전쯤부터는 소나무로 짠 물레방아가 돌면서 한 세월을 풍미했다. 기름도 전기도 아닌 자연과 지혜가 만들어 낸 에너지였다.
껌껌한 내부에 작은 창이 눈부시다. 그 빛 받아 희미하게 디딜방아와 도정 시설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10여 년 전 움직임은 멈췄지만 지금도 힘차게 돌아갈 듯 그 모습 짱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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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령면 계서리의 ‘계남 정미소’. 2006년 ‘공동체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지금은 휴관상태다. 입간판은 예전 그대로다. |
다시 논길 타고 흰 구름 잡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이웃마을로 향한다. 마령면 계서리에는 박물관이 된 ‘계남정미소’가 있다. 사진작가인 김지연씨가 사들여 2006년 ‘공동체박물관’이란 이름의 사진전시장으로 열었다. 정미소 벽에 2012년 9월부터 잠정적 휴관에 들어간다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다녀간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도 적혀 있다. 애틋하다.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 기계화에 내준 자리, 그 자리에 남은 것들은 애틋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팁
▶대구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방향으로 가다 함양 분기점에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대전방향으로 간 후 장수 분기점에서 전주방향으로 가다 진안 IC에 내린다. 마이산 탑사 방향으로 좌회전해 가다 백운면으로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운교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백운면 소재지로 가고, 우회전하면 운교리 물레방아와 마령면의 계남정미소로 간다.
▶40년 역사의 삼산옥은 백반과 돼지고기로 이름나 있고 육번집은 콩나물국밥, 우리회관은 묵은지찌개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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