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 갤러리 같은 실내…도예가 부부의 질박한 콩요리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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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고두반 한정식은 콩 음식 전문 농가맛집이다. 모두부, 비지, 콩물, 콩전, 콩잎김치 등을 맛 볼수 있다. 화학 조미료 없이 요리한 한상차림은 흡사 전라도 밥상의 질감을 갖고 있다. |
식당을 개업하는 날에는 서비스 정신도 날이 시퍼렇게 서있다. 하지만 인간인지라 다들 초심을 잃게 된다. 그래도 농가맛집은 여느 식당과 다른 게 하나 정도는 있다. 솔직히 농가맛집의 음식이 더 맛있다고 볼 수는 없다. 상당히 초보적이다. 요리에 달통한 것도 아니고 세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트렌디한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풋풋하고 정겨움이 있고 제철의 식재료가 텃밭에서 그대로 공수된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 조선콩을 이용한 다양한 메뉴 등장
경주시 도지동 156의 2, 불국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대기실 마을에 들어앉은 경주 농가맛집 1호인 ‘고두반(古豆飯)’.
상호처럼 국내산 콩을 갖고 별의별 메뉴를 다 만든다. 두부, 비지, 콩물, 콩전, 콩자반, 콩잎김치, 콩잎장아찌, 비지로 무친 나물….
여주인 최성자씨(53)와 그의 남편 김정윤씨(53)는 동갑으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솔직히 음식보다 여주인의 은물결 같은 심성과 조신한 화법이 압권이다. 또한 엄마를 닮은 딸 또한 더없이 살갑다. 농가맛집에 가장 맞는 캐릭터로 보였다. 여주인은 조선여인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세간살이부터 실내 인테리어, 민화, 봉재까지 공예예술적 감수성과 손재주가 상당하다.
이 마을에는 재미있는 역사가 있다.
이 마을은 일명 ‘도지마을’로도 불리는데 신라문화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삼산오악사상’의 중심지인 낭산(狼山)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신라 성덕왕이 현재는 폐사지인 이거사로 행차할 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는 곳’이라 해서 ‘대기실’이라 불렸다. 남편은 산처럼 변하지 말자는 뜻으로 2000년 경주시 동방동에 낭산도예를 차려 지금까지 전통청자 재현에 심취해 있다.
남편은 주경야독을 하며 자신만의 형태를 찾아나섰다. 공방에선 편리한 가스가마로 가도 그는 장작가마를 고집한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그만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음양 투각기법의 청자를 만들 수 있었고, 그중 수천만원의 명작은 비매품으로 그가 고이 간직하고 있다.
도예가와 손재주 좋은 아내는 어떻게 농가맛집을 열게 됐을까.
아내는 15년 전 한식조리사를 취득했다. 2001년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집을 지었다. 딸 명길씨(26)는 경일대 공예디자인과를 졸업한 감각파. 엄마하고는 환상의 복식조다. 양재기능사 자격증까지 소지하고 있는 아내는 앞치마, 커튼은 물론, 창문도 직접 집 주변의 나무를 갖고 짰다. 커튼 위에는 액세서리용 자그마한 도자기를 고명처럼 올려놓는 센스를 발휘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기질이 다분해 상차림은 물론 실내 인테리어도 다른 농가맛집에 비해 상당히 세련돼 보인다.
실제 최씨가 이런 식당을 운영할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냥 현모양처로 남편의 도자기 일이나 도우며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인들이 경주 집에 놀러오면 최씨가 이런저런 메뉴를 해 올렸다. 꽤 반응이 좋았다. 지인들은 ‘남편은 그릇을 만들고 아내는 그 그릇에 음식을 해 담아 팔면 좋을 것 같다’면서 부부를 부추겼다. 최씨는 싫지 않았다.
실제 그녀는 충남 아산 친정집에 있을 때 2년반 정도 분식집을 꾸려본 경험이 있었다. 산적에 기름에 튀긴 가래떡을 끼운 떡꼬치를 선보여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적도 있다. 이밖에도 대학교 평생교육원, 소상공인지원센터, 농업기술센터 우리음식연구회 등을 통해 다양한 요리법을 접한다. 그런 즈음 경주농업기술센터에서 최씨에게 농가맛집을 할 것을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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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농가맛집 1호 ‘고두반’의 안주인 최성자씨와 딸 김명길씨. |
◆ 배워가면서 음식을 개척했다
지난해 농가맛집을 열었다.
일단 좋은 소금을 만들자고 했다. 편하려면 전남 신안군의 태평염전의 소금을 사용하면 족했다. ‘그래도 농가맛집의 자존심이 있는데…. ’라면서 남편의 가마에 소금을 구워 사용했다. 죽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대나무통 같은 토기에 소금을 넣고 구웠다.
처음에는 1천300℃ 이상 고열에서 굽자 소금과 토기가 다 녹아 뒤엉켜버렸다. 사용할 수 없었다. 온도를 낮춰나갔다. 1천℃ 어름에 맞추자 소금 입자는 더 하얗게 변하고 입자도 변하지 않았다. 먹어보니 기존 천일염에 비해 더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두부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여기저기 유명하다는 곳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다들 노하우라면서 잘 가르쳐주지 않았다. 물론 친정집에서 집안 어른들이 두부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막상 하려고 하니 엄두가 안 났다. 예전 친정에서는 양도 한 근 남짓했지만 지금은 4㎏ 이상 많은 콩을 사용한다. 당연히 만드는 법도 다를 수밖에. 역시 시행착오가 제일 큰 스승이었다.
지난해는 대기실 마을에서 콩을 확보했다. 80㎏ 한 포대에 50만원을 주었다. 지난해 모두 12가마를 구입했다. 일단 콩을 물에 불려야 한다. 동절기에는 15시간 정도, 하절기에는 7~8시간이면 족했다. 그 다음에는 갈아야 하는데 입자 크기가 문제였다. 처음에는 굵게 했는데 그렇게 하니 재료 낭비가 심하고 부드럽지가 못했다. 나중에 불린 콩을 가늘게 갈아야 순두부 단계에서 잘 엉긴다는 사실도 간파한다.
중간 크기의 가마솥도 구입했다.
일단 간 콩을 삶아야 하는데 보통 물은 갈린 콩 양의 2배를 더 넣어야 한다. 찬물에 간 콩을 넣지 않고 약간 뜨거운 느낌이 나면 간 콩을 붓고 장작불로 1시간여 불조절하면서 장작불을 조절해야 된다. 여기서도 엄청난 노하우가 작동된다. 열기가 절정에 달하면 간 콩이 흘러넘친다. 이때는 찬물을 끼얹어 부글부글 끓는 간 콩을 가라앉힌다. 다음 또 끓어오르면 그때는 보자기에 부어 짜내면서 간 콩을 비지와 콩물로 분리시킨다. 다음은 간수를 콩물에 넣어 순두부를 만든 뒤 나중에 모판에 부어 돌로 눌러 모두부를 만든다.
부부는 온도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해서 실수로 딱딱한 두부도 만들어 봤다. 초창기에는 무조건 푸짐한 인심이 좋다고 생각해 많은 양의 두부를 올렸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두부 만드는 과정의 비밀을 대충 캐치할 수 있었다.
초창기에는 간수를 많이 넣을수록 더 좋은 두부가 나올 것 같아 막걸리와 김치를 갖고와 푸짐하게 먹곤 부부는 설사와 구토를 하면서 1주일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일단 화학조미료를 멀리했다.
웬만하면 국내산 그 계절 재료를 올리자고 다짐한다.
텃밭에서 상당수의 채소가 나온다. 지난해는 고추 500포기를 심어 100근 이상 땄다. 그걸 갖고 고추장을 만들었다. 젓갈은 경남 기장과 경주시 감포의 생멸치를 갖고 천일염만 넣어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올해는 지난달 초에 젓갈을 한꺼번에 담갔다.
◆ 주먹구구식으로 메뉴를 짰지만 서비스만은 풋풋
여기 밥상도 전라도밥상처럼 한상차림이다. 그런데 가격대비 메인과 곁반찬 구성이 아주 탄탄하고 화학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아 착한밥상이 될 구성요건을 거의 갖추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나물류를 봤다. 방풍나물, 밭에서 캐온 참나무, 직접 기르는 부지깽이나물, 머위 등을, 장아찌류는 비비추, 민들레, 샐러드용 치커리, 밭에서 나온 돌나물로 물김치도 만든다. 버섯을 데쳐 초고추장으로 숙회를 만든다. 묵나물로는 울릉도 취나물, 그리고 시금치, 도라지 등이 있다.
1만원짜리 ‘낭산밥상’의 경우 감자옹심이된장찌개가 메인으로 나간다. 1만3천원짜리는 ‘고두반밥상’으로 여기서는 한방약재를 갖고 삶은 삼겹살, 두부, 다시마, 가자미식혜가 둘러앉는다. 식사 전에는 콩물이 애피타이저다. 꼭 전통 냉면집의 온육수 같다. 디저트로는 동아정과, 헛개차, 계피나무 여린가지순에 생강, 대추, 감초, 작약 등을 넣고 끓인 계지탕도 낸다.
여기에 올 때는 미리 예약하고 도자기 체험까지 겸하면 더 효과적이다.
부부의 맘씨가 신라도공 같아 여느 식당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정감도 어린다. 도자기 체험비는 1만5천원이고 최소 5명 이상이 와야 가능하다. 두부도 워낙 재료가 좋아 한 모 가격이 1만원인데 실제 원가만 4천500원이란다.
텃밭이 아주 막강하다. 각종 채소가 자란다. 요즘 ‘뚱딴지‘로 불리는 돼지감자의 새순을 갖고도 나물요리를 한다.
지난해 쌀의 경우 근처 마을에서 80㎏들이 한 가마니를 18만원에 구입했다. 또한 근처 정미소에서 도정한 찹쌀과 흑미를 갖고 온다. 세척제도 안심이 되지 않아 그냥 뜨거운 물로 씻는다. 또 쌀뜨물과 효소세제도 가끔 이용한다.
글·사진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TIP
식당 바로 옆에 기찻길이 있다. 간간이 기차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기찻길 옆에서 사진 한 컷. 동네가 참 호젓하다. 부부의 꽃빛 금실이 담긴 밥상은 맛보다 상당히 치유적이다. 밋밋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소박과 질박함이다. 갤러리 같은 실내에서 앙증맞은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아직 여주인은 요리를 배우고 있다. 그게 더 진솔해 보인다. 다 안다고 폼잡는 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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