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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월곡역사박물관 왼편에 월곡 우배선의 동상이 있다. 오른손에 책을 들고 앉아 있는데, 의자 왼쪽에 두 자루의 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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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 동구 효목동 망우당공원 안에 임란호국영남충의단이 있다. 2011년 이후 매년 6월1일 '의병의 날'을 맞아 이곳에서 제례를 올린다. |
◆임진왜란
지난 23일은 임진왜란(1592~1598) 발발 421주년이었다.
조선을 침략한 20여만명의 왜군은 서양에서 들여온 조총이라는, 당대 그야말로 최첨단 무기와 전국통일 과정에서 축적된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20일 만에 조선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키고 두 달 만에 평안도와 함경도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왜군은 이순신 함대와 전국 각처에서 궐기한 의병에 의해 저지됐다. 여기에다 명나라 군대가 참전함으로써 전세는 역전됐다. 하지만 명군이 고양의 벽제관에서 왜군에 패함으로써 전황은 4년여간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명군은 조선을 배제한 채 왜군과 강화를 시도했다. 왜군은 조선 8도 가운데 4도를 할양할 것 등을 요구하면서 명과 회담을 벌이다 결렬되자 1597년 14만명의 대군으로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일각에선 국제적인 시각으로 임진왜란을 ‘7년전쟁’ ‘조·일전쟁’ ‘임진전쟁’ ‘동아시아대전’이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 이후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재편됐다. 중국에선 명 왕조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한편 일본에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幕府)’를 열었다. 조선에선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됐다.
◆의병활동의 중심 영남
임진왜란의 승패를 가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의병은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군(民軍)이었다. 당시 의병장은 대개 전직 문무관료나 선비출신이 맡았으나 의병 구성원의 신분은 양반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전쟁 초기 의병의 수는 관군의 25%에 육박했으며, 전과도 관군보다 높았다.
영남지역은 의병활동의 중심지였다. 1593년(계사) 1월 전국의 의병 수는 약 2만2천명이었는데, 경상좌·우도의 의병이 1만2천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사상적으로는 영남의 두 거유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충의(忠義)정신에 영향을 받은 문하생들이 주로 거병했다. 임진전쟁을 진두지휘했던 류성룡, 김성일 등은 퇴계학맥이었으며, 영남 3대 의병장으로 알려진 곽재우, 김면, 정인홍은 남명학맥이었다. 대구를 비롯한 경주, 상주, 영천, 의성, 안동, 영덕 등 경북지역에서도 걸출한 의병장이 등장해 게릴라전술로 침략군을 괴롭혔다.
◆대구의 기라성 같은 의병
왜군의 진군로 가운데 중로(中路)에 위치한 대구는 팔공산과 낙동강, 금호강 일대가 전투의 중심이 됐다. 팔공산을 비롯해 현재 대구의 동구, 북구, 수성구, 가창 일대는 영천 신녕출신 의병장 권응수 장군과 유기적으로 협력했으며, 대구의 서남쪽인 달서구와 화원, 비슬산, 낙동강 일대는 곽재우 장군과 전략적으로 연계됐다.
정유재란 때 대부분의 대구출신 의병장은 곽재우가 이끄는 화왕산전투에 참전했다. 임진왜란 당시 대구는 대구읍내와 수성현, 해안현, 하빈현을 속현으로 두고 있었지만 경주, 안동, 상주보다 작은 고을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대구는 경상감영이 들어서는 등 경상도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됐다. 조선의 조정이 대구의 지리적·전략적 가치를 인정한 결과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전 대구는 성리학이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였지만 전쟁의 참화로 문명은 짓밟히고 민생은 잿더미가 됐다. 당시 대구의 지도층이었던 유림은 퇴계학맥을 계승한 문하생이 많았다. 그들 역시 붓을 던지고 활과 창, 검을 들어 창의(倡義)의 깃발을 올렸다.
구본욱 위클리포유 대구지오(GEO) 자문위원은 “팔공산 부인사나 집단시설지구 일대에 ‘임란호국 대구의병 창의비’나 ‘임란호국 팔공의병 창의비’를 세워 대구에서도 의병활동이 있었음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호 위클리포유는 공산에서 화왕산, 서생포까지 참전한 기라성 같은 대구의 의병인물과 의병활동에 관해 샅샅이 취재했다. W2∼3면에 관련기사
대구시 동구 효목동 망우당공원 안에 임란호국영남충의단이 있다. 2011년 이후 매년 6월1일 ‘의병의 날’을 맞아 이곳에서 제례를 올린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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