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투성이 신차 왜 안바꿔주나
대구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작년 여름 독일 최고급 브랜드의 세단을 샀다. 구매가격만 1억원 이상 하는 고급 차량. 하지만 새 차를 뽑고 난 뒤부터 장거리 운전만 하면 차에서 나오는 매캐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 운전을 할 수 없었다. AS센터를 찾아 수차례 수리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20일 정도 시간을 달라는 업체 측의 부탁에 그 기간 렌터카를 이용하는 불편을 겪었다. 수리가 마무리됐다고 해서 다시 차를 받았지만, 여전히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다른 차로 교환을 요구했지만 수리가 가능한 부분이라며 거부했고, 당연히 환불도 안 됐다. 문제가 있는 차량을 중고로 팔 수도 없어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만 쓴다”면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차량을 한 대 더 사서 쓰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새 차를 산 뒤 하자가 발견돼도 좀처럼 새로운 차량으로 교환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국내와 외국의 차량 교환 기준이 달라 국내소비자가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중대결함 2회 이상
동일 하자 4회 이상 발생때 교환
운전자 생명 담보로
결함 반복때까지 운전해야 하는 꼴
車업체 비용 부담 커 교환 꺼려
美·EU와 달리 강제성도 없어
국내서도 법 개정 움직임
중대결함 기준부터 명확히 해야
◆ 사자마자 고장, 교환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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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소비자문제 연구소인 컨슈머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4월 중형 승용차를 구매한 이모씨(44)는 운행을 시작하자마자 가속페달에서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힘껏 밟아도 속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았던 것. 신호변경 시 가속페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울컥거려 하마터면 뒤차와 접촉사고를 낼 뻔한 적도 있다. 공식 정비업체에서 수리를 받았지만, 수리 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이에 이씨는 회사 측에 차량 교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업체 측은 “부품만 교체하면 되는 미세한 결함으로 교환은 힘들다”며 거절했다.
이씨는 “신차를 산 뒤 일주일도 안 돼 문제가 생기고, 수리 이후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새로운 차로 교환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작년 12월 대형 승용차를 구매한 또 다른 이모씨(49)는 새 차를 받은 다음 날부터 차량 이상 증상에 시달렸다. 차량 제어장치들이 오작동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고속도로 주행 중 전조등은 물론 계기판이 꺼지는 등 급작스러운 상황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겨우 휴게소에 들러 차량을 점검 후 시동을 걸자 이번에는 RPM이 2천500 이상 치솟고 심한 소음이 발생했다. 줄 이은 이상 증상에 불안감을 느낀 이씨는 수리를 다섯 번씩이나 받았지만, 증상이 개선되지 않아 차량 교환을 요구했다. 이에 제조사 측은 “수리는 가능하지만 교환은 안 된다”고 밝혔다.
작년 3월 수입 SUV 차량을 구매한 박모씨(41)는 새 차를 받고 2개월 후부터 엔진경고등이 지속해서 점등되는 이상 증상으로 불안했다.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일부 부품을 교환하는 등 무상 수리를 받고 차를 그대로 운행했다.
그러던 중 5개월이 지난 8월 중순쯤 여름휴가를 떠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다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 엔진 작동이 멈추면서 달리던 차가 갑자기 서 버린 것. 이후 차량을 수리하는 데만 54일이 소요됐다. 박씨는 “중대결함으로 인한 차량수리기간 30일이 초과한 만큼 환불이나 교환을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제조사 측은 “동일 하자로 3회 이상 수리한 경우만 교환이 가능하다”며 거절했다.
이처럼 신차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차량 하자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교환이나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년 한 해 소비자고발센터 등에 접수된 자동차 관련 피해 건수는 1천252건으로 그중 구매 후 1년이 안 된 신차 관련 불만은 131건, 전체의 10.4%에 달했다.
주된 불만은 △도로 주행 중 시동이 꺼지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경우 △주행 중 핸들 잠김 △불안하게 치솟는 RPM이나 이상 소음 등으로 인해 운행 시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이 밖에도 △심한 차체 떨림 △ARS 등 제어장치 이상 △배터리와 타이어 등 차량 부품 하자 등도 있었다.
하지만 불만 처리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작년 자동차 품목 피해구제 사건 중 교환이나 환급을 받은 것은 5.5%, 2011년에도 5% 수준에 그쳤다. 중대결함이 있는 새 차를 받은 것도 화가 나는데, 교환이나 환불마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 신차 교환이 하늘의 별 따기인 이유는
컨슈머리서치에 의하면 현행 불량 신차 교환과 환불기준은 다른 공산품과 동일하게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을 따른다.
차량 인도일로부터 1개월 이내 주행 및 안전도 등과 관련한 중대 결함이 2회 이상 발생 △12개월 이내 주행 및 안전도 관련 중대결함에 대해 동일 하자 4회 이상 △수리가 30일 이상 지속될 경우 교환 및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자동차는 작은 결함에도 운전자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는데 휴대폰이나 TV 같은 일반 공산품(1년 이내에 동일 하자에 대해 2회 이상, 여러 부위에 대해 4회까지 수리 후 재발 시)과 같은 하자 보상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중대결함으로 큰 사고가 났다고 해도 교환이나 환불을 받으려면 또다시 목숨을 걸고 증상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더욱이 현재 소비자분쟁해결기준마저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어 동일 하자가 반복됐다고 해도 교환과 환불 여부는 제조사에 의해 결정되는 등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고 컨슈머리서치 측은 설명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결함 신차에 대한 교환이나 환불을 주저하는 이유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교환이나 환불해주면 차 값 외에 등록세 등 다른 비용도 자동차 제조사가 부담해야 한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신차 결함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자동차업체들은 ‘증상이 개선될 때까지 수리해주겠다’면서 버티다 ‘무상보증기간’이 끝나면 소비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상황까지 생기고 있다”면서 “자동차 결함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국내소비자만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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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이 없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기댄 국내와 달리 미국, 유럽연합(EU) 등 다수의 선진국에선 자동차 결함에 의한 교환 및 환불에 대해 법적으로 강제성을 갖고 운전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75년 제정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몬법(맥너슨-모스법)’.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산 소비자를 불량품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만든 법이다. 자동차와 관련해 △신차결함 발생 시 약 2만9천㎞나 18개월이 되기 전에 운행 시 사망이나 중상해를 초래할 수 있는 하자가 2회 이상 발생 △일반 고장으로 4번 이상 수리를 받았지만, 다시 문제가 발생한 경우 △수리기간이 30일을 넘을 때는 차량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처럼 단순 권고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제 사항이다.
이때 구매 시 차량 가격에다 세금 등 기타 비용까지 반영해 교환 받을 수 있고, 환불 시에는 수리비용 등 부대비용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또 주마다 다르지만, 구매가의 2배를 보상하는 것과 더불어 법정소송비까지 물게 하는 곳도 있다.
실제로 2010년말 메르세데스-벤츠는 거액의 손해배상금 지불 판결을 받았다. 2005년 벤츠 E320 신형을 5만6천달러에 산 미국의 한 소비자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이상 증상이 반복적인 수리에도 개선되지 않자 환불을 요청했고, 배상이 지연되자 벤츠사를 레몬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법정공방 결과 판사는 구매가의 2배에 이자를 합친 16만8천달러와 소송비용을 포함한 총 48만2천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소비자 분쟁해결기준은 신차의 중대 결함 시 교환 및 환불을 해주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중대결함’에 대한 기준조차 명시하지 않아 실질적인 보상으로 연결되지 않다는 점도 개선되어야 부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정우택 국회의원은 지난달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구매한 차량에 중대한 결함 발생 시 신차 교환과 환불 등이 보다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주요 장치나 부품, 주행 및 안전도 등 관련 고장이 발생해 3회 이상 수리한 후 또다시 재발하는 경우 등 중대 하자가 발생하면 소유자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 요청을 받은 장관은 전문기관에 성능시험대행자(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게 자동차와 차량부품의 중대하자에 대해 조사하도록 해 회사 측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중대하자가 인정되면 교환·환불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차량의 안전과 하자 등에 관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차량의 제작·조립·수입 및 판매 중지 명령과 제작 결함 시정 명령, 제작결함 조사 사항, 자동차 소유자에 대한 보상, 안전도 평가 등 안전관련 사항 등을 심의하도록 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이미 이런 내용을 강제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관련법이 강화돼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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