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효과없는 저출산대책
경북도를 비롯해 일선 시·군까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최고 수천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가 하면 각종 인센티브를 쏟아붓고 있지만 아이 울음소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은 전국 기초자치단체 84곳이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로 30년 이내에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경북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도내 2016년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1천481명 줄었다. 23개 시·군 가운데 무려 19곳이 감소한 반면 1명이라도 증가한 시·군은 4곳에 불과하다. 이처럼 나날이 하향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유인책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보다 큰 그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좋은 일자리 창출과 같은 경제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시·군 출산장려 정책 단편적이다
지난해 경북도내 23개 시·군 가운데 출생아 수가 증가한 지자체는 단 4곳뿐이다. 도내에서 출생아 수가 가장 많이 감소한 지역은 포항과 구미로 각각 450명에 육박했다. 울진과 영덕도 적지 않게 감소했으며 대부분이 두자릿수 이상 줄었다. 이처럼 도내 대다수 지자체에서 출생아 수가 감소한 것은 저출산 관련 대책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출산비용 지원 효과는 미미
양육비 부담감에 출산 기피
출산은 경제적 문제와 직결
취업 못하면 결혼자체 꺼려
지난해 가장 많이 신생아 수가 줄어든 포항시의 경우 출산장려를 위해 적잖은 현금을 지급하고 있다. 출생일 현재 부모 중 한 사람이 포항시에 거주하면 출산장려금과 축하금 등을 합쳐 400여만원 가까이 지원한다. 또 둘째 아이부터는 보장성보험 성격의 건강보험료(3년 동안 월 2만원씩)를 지원한다. 이 상품은 10년 보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의 지난해 출생아 수는 4천156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448명 줄었다. 맞벌이 주부 박모씨(39)는 “아이를 낳게 되면 매달 지출되는 비용이 적지 않다. 아이를 낳으면 당장은 장려금을 받을 수 있지만, 옷이나 음식비는 물론 학원비 등 사교육비는 지원금의 몇십배가 든다”면서 “지자체의 일회성 지원금은 큰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포항시 이외에도 대부분의 도내 지자체는 이런저런 형태의 출산장려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현금지원이나 세제 감면이 전부다. 도민들은 이런 정책이 큰 혜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일자리가 없으면 신생아도 없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경제적 이유’로 귀결된다. 즉 아이 한 명을 대학까지 보내는 데 2억5천만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투자되는데, 과연 그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각 시·군의 좋은 일자리가 그 지역의 신생아 출산과 직결된다는 것은 포항시의 최근 경제상황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포항은 그동안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해 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철강경기 불황으로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철강산업단지의 고용인원은 2015년 12월 1만5천369명에서 지난해 10월 1만4천803명으로 566명 줄었다. 포항시 인구도 52만4천634명에서 52만2천30명으로 2천604명 감소했다. 철강경기 부진이 인구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지역 철강업계가 침체하면서 일자리도 줄고 사람들이 포항을 떠나 자연히 출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시에서 다양한 출산 장려시책을 펴고 있지만 아이를 낳을 젊은 층이 포항에서 취업하지 못해 좋은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나면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내에서 울릉군을 제외하면 인구가 가장 적은 영양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영양군 인구는 1만8천여명에 불과하다. 군은 인구절벽을 막기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2004년 신생아 양육비 지원 조례까지 만들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농업만으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빠져나가지만, 이들을 붙잡아 놓을 수 있는 매력이 영양군에는 많지 않다.
반면 김천의 경우 율곡동에 들어선 혁신도시 영향으로 지난해 출생아 수가 전년에 비해 116명 증가해 경북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 김천은 2013년, 2014년 연속 1천명 이하 출생했으나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이 이전한 이후부터는 2015년 1천12명, 2016년 1천128명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1월 800여명에 불과했던 율곡동 인구도 2017년 1월말 현재 1만6천500여명으로 3년 만에 20배나 늘었다. 높은 보수에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많은 공기업의 혁신도시 입주가 김천의 신생아 증가와 관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출산 대책 새로 세워야 한다
경북도내 시·군이 그동안 펼쳐온 보육정책·임산부지원정책 등은 한계에 이르렀다. 지자체의 단기적인 출산비 지원 정책이 젊은 부부의 장기적인 육아비 걱정을 해소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 낳을 때 출산비용은 보전받는다지만, 아이 키우는 데 더 많이 들어가는 돈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4년 1월 전국 20~30대 기혼·미혼 남녀 5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4.3%가 ‘출산 및 육아비 부담’으로 출산을 미루거나 출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미혼자가 이에 대해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이 젊은이의 결혼기피와 초혼 연령 상승이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 두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하지 못하는 백수상태가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결혼 자체를 고려하지 않거나, 늦은 나이에 취업하면서 결혼도 늦어지고 출산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회현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저출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의 사회·경제적 환경은 젊은이가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 집세, 교육비, 생활비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인턴이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는 젊은이들은 결혼을 사치라고까지 여기고 있다. 설사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경향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가 내세우는 둘째·셋째아이에 대한 지원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김혜숙 계명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젊은이에게 둘째, 셋째 아이에 대한 지원정책이 먹혀들지 의문스럽다”면서 “저출산고령화사회가 트렌드화된 현재 상황에 적절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장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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