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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 "봉준호에 기생하려 하지 마라"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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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석권하며 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안겼다. 봉 감독이 대구 출신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 언론은 '대구의 아들'이라고 자랑스러워했고, 대구 시민들도 대구와의 인연에 더 반가워했다.

지역 행정과 정치권도 대구 출신인 봉준호의 '아카데미 효과'에 편승해 봉준호 이슈 잡기에 혈안이 됐다. 대구시는 봉 감독을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남구청의 경우 봉준호 거리와 영상문화 성지 조성 등 다양한 문화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대구지역 총선 예비후보들은 앞다퉈 봉준호 영화박물관 건립, 동상, 기생충 조형물 설치, 생가터 복원 등의 공약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봉 감독의 쾌거에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행정·정치권의 도를 넘어선 '영혼 없는' 봉준호 마케팅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 3학년 때까지 살았다는 것 말고는 대구 영화인들과 끈도 거의 없고, 이후 대구를 방문한 것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인데 봉준호 길을 만들고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 과연 시민들의 자부심을 높이며 공감을 살 만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도 열악한 대구 영화 환경에 대한 고민과 철학,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고 보여주기식 행정과 총선을 앞둔 선거용 공약에 지나지 않아 보여 씁쓸하다.

대구 영화제작의 현재는 반지하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대구시와 정치인들은 화려한 오스카상에만 취해 후광을 누릴 생각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상 대구는 영화 불모지에 다름없다. 전문적인 영화교육을 받을 대학이 한 곳도 없고, 지난해 겨우 영화 아카데미 격인 '대구영화학교'가 설립됐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수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저예산 영화 예산 지원도 전국 최저 수준이다. 도시 규모가 비슷한 인천이 3억원에 육박하는데 비해, 대구는 고작 7천만원에 그친다.

봉준호의 현재에 기생하려 할 것이 아니라, 반지하에 놓인 대구의 영화제작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 2, 제3의 봉준호가 탄생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기는 쉽다. 하지만 힘들더라도 차근차근 밥상을 차려 지역에 제대로 된 영화제작 생태계를 만들어야 제 2, 제3의 봉준호를 기대할 수 있다. 미안하지만, 다 차려진 봉준호는 대구에 미련이 없다.

박주희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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