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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의 제3의 눈] 대통령과 신발

2020-07-31

文대통령에 시민 신발 투척
정치인 향한 항의라는 권리
책임질 각오라면 선택 자유
그새 끼어든 국회의원 참견
질 낮은 우리 정치판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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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전문기자

"이건 이라크 사람들의 작별 키스다. 개 같은 당신을 향한." 신발 한 짝이 날아갔다. "이건 이라크에서 살해당한 사람들, 미망인, 고아들로부터." 나머지 한 짝이 또 날아갔다.

2008년 12월, 이라크 총리실 기자회견에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를 향해 언론인 문타다르 알 자이디가 던진 신발이었다. 이슬람 사회에서 신발은 모욕의 상징이다. 특히 이라크에서 미국 정치인들은 그 신발로 숱한 수모를 겪었다. 1991년 제1차 이라크 침공을 이끈 조지 부시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한동안 신발에 밟혀 살았다. 바그다드의 라쉬드호텔 들머리 바닥에 모자이크한 부시 얼굴을 사람들이 밟고 다녔으니. 하기야 이라크를 취재할 때마다 외신기자 소굴인 라쉬드호텔에 묵었던 나도 부시를 밟고 다닌 이들 가운데 하나다. 그 모자이크는 2003년 아들 부시의 제2차 이라크 침공 뒤에야 사라졌다. 그런가 하면 조지 부시의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아예 "쿤다라(신발) 라이스"로 불렸고.

지난 16일, 국회 개원 연설을 마치고 나오던 대통령 문재인을 향해 한 시민이 신발을 던졌다는 서울발 뉴스를 보면서 떠오른 기억이다. 그러고 보니 정치인과 신발의 악연은 꽤 긴 역사를 지녔다. 이미 기원전 1천년 히브리어 시편 60장과 108장에 "에돔에게 신발을 던지리라" 같은 문구가 나오고, 359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우스 2세가 리미간테스 사람한테 신발을 맞은 기록도 있는 걸 보면.

정치인한테 신발을 던지는 건 해묵은 전통인 셈이다. 최근 10년만 따져도 미국 전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중국 총리 원자바오, 이란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존 하워드, 파키스탄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 타이완 총통 마잉주가 신발을 맞았다.

정치인을 향한 시민의 항의는 권리다. 청원이니 주민소환이니 선거 같은 합법적인 방법도 있지만, 얼굴을 맞댄 삿대질이나 달걀이나 신발일 수도 있다. 다만, 대면 항의는 그 속내와 상관없이 법적 책임이 따른다. 스스로 책임질 각오라면 그 선택은 자유다.

부시와 문재인, 두 대통령을 향했던 신발을 견줘보자. 자이디의 외침은 50만 시민을 살해한 미국의 제2차 이라크 침공에 대한 항의였다. 3년형을 받고 9개월 뒤 가석방된 자이디는 아랍시민사회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빨갱이 문재인 자유 대한민국을 당장 떠나라"고 외쳤던 정아무개는 경찰에 체포당했으나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앞으로 판결은 법원 몫이다. 그리고 정아무개를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는 시민사회 몫이다. 그 둘은 항의라는 권리를 행사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면 그만이다. 그게 다다.

근데, 여기 또 속 시끄러운 정치가 끼어들었다. 미래통합당 의원 하태경은 "(자이디)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던 부시를 들이대며 "문 대통령은 포용한 부시한테 배워라"고 떠들어댔다. 군자 흉내 내며 훈수 둘 게 있고, 본보기 삼을 게 따로 있다.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숨겼다며 이라크를 침공해 시민 50만을 살해하고 돌이킬 수 없는 폐허로 만들어버린 전범 부시한테 배우라고? 뒤늦게 엉터리 정보였다는 자백만 했을 뿐 사과 한마디 한 적 없는 부시한테 어떤 포용을? 미군 폭격을 맞아 숨 넘어가는 피투성이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이라크 어머니들을 본 적이 있는가? 시민의 권리와 책임 사이에 난데없이 끼어드는 정치인의 쓸데없는 참견, 이념이랍시고 침공과 학살마저 떠받드는 정치인의 역사관 부재, 이 모두는 시민사회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는 질 낮은 대한민국 정치판의 민낯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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