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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조현준 교수의 '북한 이야기' .2] 도로 메운 폴크스바겐 택시

2020-10-30

김정은 불평하는 종업원과 교회의 존재…내 귀를 의심했다
첫 행선지는 둘째로 잘 산다는 라선
그러나 식당선 고기 찾아볼 수 없고
여관 수준 시내 호텔엔 온수도 끊겨
"딸이 평양에서 공부할 수 있었는데…"
새 일터 포기한 아버지는 땅 치며 후회

아이들_공연1
라선시의 한 학교 강당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재기발랄하게 기타 공연을 하고 있다.

나는 함경북도 세관에서의 첫 촬영을 무사히 마친 후 라선 시내로 향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프로파간다 현수막들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시내로 들어서서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라선시에 있는 한 광장이었다. 김일성 초상화와 함께 김씨 부자들을 찬양하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곳이었다. 초상화 앞에 서 있던 아이 한 명은 어디서 구했는지 벤츠 엠블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후 북한에서의 첫 식사를 하러 가기 위하여 시내에 있는 한 식당에 도착하였다. 구운 생선을 포함하여 온갖 나물이 식탁에 차려져 있었는데 북한에 있는 동안 고기는 먹어보지 못하였다. 식사를 마친 후 차량에 바로 탑승한 채 첫 숙소로 향했다. 호텔 앞에는 한국이었으면 주차장으로 쓰고도 남을 만한 매우 넓은 텅 빈 공간이 있었다. 밤이 되면 이 공간은 김정은 위원장을 찬양하는 대형스크린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광장1
라선 시내의 광장 모습(왼쪽)과 광장에서 벤츠 엠블럼을 손에 들고 있는 아이.
닭싸움
라선시의 한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닭싸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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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시의 한 호텔 앞에서 북한 주민들이 선전용 TV를 시청하고 있다.


로비는 한국의 호텔과 같이 프런트 데스크가 있었고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소파가 군데군데 있었다. 방에 들어서니 한국의 여관방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침대에는 전기장판이 있어서 춥지 않게 잘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화장실에는 욕조는 있었지만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로비에 내려가서 물어보니 그럴 리가 없다는 식의 답변을 주었다. 그러나 온수는 체크아웃할 때까지 며칠 동안 나오지 않았다. 호텔 방에 있던 창문을 여니 라선 시내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고 폴크스바겐 택시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었다.

라선시는 경제특구지역으로서 평양 다음으로 부유층이 사는 지역이지만 라선 주민들에게는 평양에서 살아보는 것이 마지막 목표이자 희망이라고 얘기를 하곤 한다. 라선 시내 도로에 다니는 자동차 중에는 폴크스바겐 택시가 가장 많은 듯했다. 아쉽게도 택시를 타보지는 못 했지만 택시비는 1㎞당 중국돈 4위안(약 680원)이라고 했다. 2013년 당시 서울 택시요금인 2㎞당 3천원에 비하면 라선 택시가 반값 수준으로 저렴하지만 북한의 국민소득을 고려한다면 일반 주민에게는 매우 비싼 교통수단이다. 폴크스바겐 택시 외에도 호텔 밖의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바깥 모습을 제대로 촬영하기 위하여 창문에 있던 방충망을 떼어냈다. 촬영 후에 방충망을 창문틀에 다시 장착하려 했지만 실패해 외출한 사이에 '호텔 직원이 방충망 없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살짝 겁을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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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시 길거리에서 유일하게 운행 중인 폴크스바겐 택시.


우리 일행은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라선시에 있는 한 중학교를 방문하기 위하여 로비에서 다시 만났고 이때 우리 담당 운전기사의 지인이었던 김모씨를 만나게 되었다. 전직교사로 본인을 소개한 42세의 이 남성은 외국인 일행들에게 영어로 본인의 나이를 24세로 소개하기도 했다. 물론 언어적 실수였다. 미스터 김이 결코 24세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웃음바다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함경북도 라선시가 고향인 미스터 김은 교사로 일하다가 평양의 한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고향에 남고 싶은 마음에 포기를 했는데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본인의 딸이 평양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 아버지로서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남조선에서 온 사람을 만나본 적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하며 나를 동포라고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이분과 얘기를 잠깐 나눠보자 내의 질문에 큰 거리낌 없이 대답을 해주었고 이후 나의 다큐멘터리 '삐라'의 주인공으로서 값진 인물이 되었다. 북한을 여행하는 동안 우리 둘은 따로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첫 대화에서 그는 북한에도 교회가 있고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해주었다. 북한에서 교회를 가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알고 있던 북한과는 정반대의 얘기였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했지만 기독교가 북한에 존재한다니…. 흥미로운 인터뷰를 기대하게 하는 말이었다. 물론 미스터 김과의 인터뷰를 포함한 모든 북한 주민과의 인터뷰는 몰래카메라로 촬영하였다.

중학교에 들어선 순간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이 닭싸움을 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도 아이들이 닭싸움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학교에 들어서자 남한에 있는 아이들과 같이 서로 장난을 치며 밝은 모습이었다. 어느 한 교사가 2학년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테스트해달라고 하였다. 우리 일행은 그룹별로 3명 정도의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였다. 내가 대화를 나눈 북한 남학생 3명의 영어실력은 한국에 있는 중학생들 못지않게 영어를 학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남한 학생들보다는 문법 실수를 하는 것에 대한 의식을 하지 않은 채 거침없이 영어 구사를 하였는데 자신감 있게 말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물론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으로 우리를 데려갔을 것이다. 담당교사의 눈을 피해 남조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자 대답을 회피하였다. 영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해서 '조선말'로 다시 한번 물었으나 알아듣지 못하는 척 하며 회피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북한에 있는 동안 주민 중 일부는 본인들이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받으면 비슷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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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같은 날 중학교에 이어 유치원에도 갔다. 대여섯 살 정도로 돼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가야금을 비롯하여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를 바탕으로 한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입이 벌어질 정도의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재능에 감탄하면서도 얼마나 고된 훈련을 거쳤을지 상상을 하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유치원의 한 벽면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리명박'이라고 쓰인 못되게 생긴 눈사람에 한 아이가 총을 겨누고 있는 그림에 시선이 갔다. 유치원에서 나와 김정은 위원장을 찬양하는 그림으로 가득한 가게를 방문했다. 다큐멘터리 '삐라'는 탈북민 단체들이 날리는 대북전단 풍선 외에도 남북관계를 둘러싼 다른 정치적인 쟁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데 이 가게의 여성 종업원 한 분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것을 듣고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종업원의 말이 잘 들리게끔 촬영이 되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한 마음과 함께 북한에서의 첫 하루가 금세 저물고 있었다.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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