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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광장] 북한 원전 건설 보고서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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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 정치평론가

2019년 12월1일 일요일 밤 11시.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직원은 모 국장의 지시를 받고 사무실에 들어가 444개의 문서 파일을 삭제한다. 다음 날 예정된 감사원의 월성원전 1호기 감사를 방해하기 위한 증거인멸이었다. 감사원은 이중 324건의 문서를 복원해 냈다. 그런데 그중에서 월성원전 1호기와 상관이 없는 북한 원전 건설 관련 문건이 10여 건 발견되었다. 문건들에는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 협력 방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업무 경험 전문가 목록' 등의 제목이 붙어 있었다.

문건 작성 시점은 모두 2018년 5월 초·중순이었다. 그해 4월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직후 작성된 것이었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비공개였지만, 문재인정부는 북한전력 지원을 위해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원전을 폐쇄하면서 북한에 원전을 건설해주는 기묘한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정부의 모습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중성이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KEDO 관련 문건이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시작된 북핵 위기는 이듬해 10월 미국과 북한 간의 제네바합의로 일단락되었다. 핵물질인 플루토늄이 많이 나오는 흑연감속형 원자로 2기를 북한이 포기하는 대신, 플루토늄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경수로 2기를 지어준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한미일 3국이 주축이 돼 1996년 3월 만들어진 국제 컨소시엄이 KEDO다. 2001년 함경남도 신포에 2008년 완공 예정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2002년 11월 북한이 또 다른 핵물질인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 개발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미국에 포착되면서 경수로 건설 공사는 중단되었고, 결국 KEDO 프로젝트도 무산되었다. 북한은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을 강행한다.

문재인정부는 이런 사연을 가진 북한 원전 프로젝트의 부활을 꿈꾸었던 것일까. 혹시라도 그랬다면 아연실색할 일이다. 김일성은 생전에 "우리는 핵을 가질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언했었다. 원전 가동 역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일 뿐이지 핵 개발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1994년 제네바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했고, 미국을 향해 핵 감축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정설이 되었다. 문재인정부는 도대체 어떤 상황을 상정해 북한 원전 건설을 검토한 것일까.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전제로 그런 것이었다면, 엄청난 오판이었다. 영변 핵시설 폐기는 트럼프조차도 거부한 매우 불충분한 제안이었다. 이처럼 문 정부는 의미 있는 수준의 북한 비핵화를 향한 강도 높은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철도와 도로 연결, 원전 건설 등 대규모 경협을 구상했다. 대북 원칙론자인 바이든의 당선은 문 정부의 장밋빛 구상을 비현실적 프로젝트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하겠다.


신지호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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