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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하늘을 걷는 남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2015·미국)

2020-11-27

꿈과 현실에 다리를 놓은 공중곡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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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미국, 뉴욕 상공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대형 사건이 발생한다. 한 프랑스 청년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 빌딩 사이에 줄을 걸고 공중곡예를 펼친 것이다. 일명 '범죄예술'이라 불리며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사건은 공중곡예사 필리페 페팃의 치밀한 계획하에 실행되었다.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이룬 페팃은 성공 직후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순식간에 슈퍼스타로 등극하여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이 사건으로 뉴욕 시민들은 흉물이라 여기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즉 쌍둥이 빌딩에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와 '포레스트 검프' 등으로 유명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판타지를 현실로 이룬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영화는 필리페 페팃의 자서전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는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유려한 연출과 시종일관 마음을 졸이게 하는 스토리, 그리고 필리페 페팃 역 조셉 고든 레빗의 매력적인 연기가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2001년 9·11테러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보다 현실이 더 놀랍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이 사건이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사건의 대표일 것이다. 2006년 뉴요커지는 9·11로 사라진, 그라운드 제로 위 허공에 떠있는 필리페 페팃의 모습을 표지로 삼았다. 이 그림은 그 해 베스트 커버 어워드에서 최고의 표지상을 받았다. 필리페 페팃은 끔찍한 테러로 사라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추모하는 대표적 인물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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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 영화를 볼 때, 감동보다 의문이 앞섰던 것을 기억한다. '저런 일을 왜 하는 거지? 목숨 걸고?'라는 거였다. 필리페 페팃을 향한 기자들의 인터뷰 역시 한결같았다. "대체 이런 일을 왜 하는 겁니까?"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느긋했다.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아름다운 곳에 줄을 걸고 싶었을 뿐." 마치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등반가들의 말 같은 선문답이다. 여기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이 있다. 스스로도 혼란스러워하던 필리페에게 연인 애니가 하는 말, "자기 마음이 길을 알려줄 거야." 그 말을 들은 필리페는 묵묵히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최근 영화를 다시 보며 마음에 와닿은 것은 빌딩 꼭대기에서 줄을 타며, 그가 느꼈던 고요함과 평안함이다. 쳐다보기도 아찔한 110층짜리 건물 위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태연하게 줄을 탈 수 있었던 것은 '평상심'을 잃지 않아서 그런 거지 싶다. 신체의 일부인 듯, 늘 자신과 함께 해온 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110층 위를 2,3층이라도 되는 듯 가뿐하게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아찔한 곳에서 고요하고 침착하게, 평정심을 지켰던 이 남자를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산다는 게 어차피 고공 줄타기이고, 우리는 모두 아슬아슬한 줄 위에 서 있는 인생이므로.
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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