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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변이의 축제… "동성애와 성전환은 인류의 진화 이끄는 축"

2021-07-23

다윈의 이분법적 성별해석 오류 지적
성다양성은 유전적 자산임을 증명
젠더는 몸 내외부 협상의 결과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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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퀴어축제조직위 주최로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부근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도심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성애와 젠더 트랜지션은 정말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일까. 이 책은 '수줍은 암컷'과 '매력적이고 문란한 수컷'을 완벽한 짝으로 상정하는 성별이분법적 해석으로 진화를 설명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의 오류를 지적한다. 그리고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나쁜 돌연변이'가 아니라 오히려 진화를 이끄는 하나의 축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종은 변화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다양한 유전자 풀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 즉 다양성은 곧 그 종이 가진 유전적 자산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일반적으로 진화는 생산성 높은 개체들이 생존하는 경향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생식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는 진화를 방해하는 해로운 돌연변이일까? 그렇다면 왜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까?

저자는 자연을 우월한 개체와 뒤처지는 개체들의 위계 속 피 튀기는 경쟁과 다툼의 현장으로 묘사한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의 오류를 지적하며 논의를 연다. 자연은 우리 인식보다 훨씬 평화롭고 사회성이 발달되어 있으며 모든 개체가 번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유성생식 종은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관점에서 '경쟁'과 '위계'로 개체를 줄 세우는 자연선택·성선택 이론은 모순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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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러프가든 지음/노태복 옮김/갈라파고스/684쪽/3만5천원

1부 '동물의 무지개'에서는 어류와 조류, 파충류와 양서류, 포유류를 망라한 동물의 사례를 소개하며 인간의 렌즈 밖에서 성과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이 얼마나 흔하고 일상적인지를 밝힌다. 평생 성을 바꿔가며 사는 망둥이, 일곱 가지 젠더를 가진 돼지, 새끼를 낳는 수컷 불곰, 음경을 가진 암컷 하이에나, 동성 짝짓기를 통해서 생존을 보장받는 암컷 보노보, 최상의 유전자를 지닌 수컷보다는 집안일에 협조적인 수컷을 선호하는 흰목참새, 동성 파트너와 백년해로하는 회색기러기 등의 넘쳐나는 사례는 성별 이분법적·이성애 중심주의적인 성 선택 이론의 틀로는 진화를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동성애와 젠더 트랜지션을 배제한 '자연의 질서'는 상상하기 어려움을 깨닫게 한다.

2부 '인간의 무지개'에서는 왜 어떤 이는 동성애자나 이성애자가, 또 어떤 이는 트랜스젠더나 시스젠더(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가 되는지, 오랜 믿음처럼 동성애 유전자 같은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인간의 유전자와 호르몬, 뇌를 각각 살피며 알아본다. 성과 젠더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나 호르몬 등의 단일 요소가 아니라 몸 내외부의 협상 과정이자 결과라는 것,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나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의 차이는 임의의 두 사람이 보이는 차이보다 더 유의미하게 다뤄져야 할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어 저자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환자로 간주하고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표현을 병리화하는 관행이 얼마나 비과학적인 것인지 함께 논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의학이 '정상'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 정의를 마련하는 대신 사회적 가치가 과학을 위장해 의학에 반영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한때 단지 여자인 것이 질병 상황에 해당됐듯이 존재 자체를 질병으로 다루는 심각한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3부 '문화의 무지개'에서는 생물학을 넘어 인류학, 사회학, 신학 문헌을 통해 인류사 안에서 젠더·섹슈얼리티 다양성을 탐구한다. 성 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두 개의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고 부족사회 차원에서 존중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례, 동성 섹슈얼리티를 자연스럽고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인 고대 그리스의 사례 등을 통해 우리는 인간 진화사의 특정한 부분에서 성 소수자들이 진화상의 이익을 경험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이 책은 한국에서 2010년 출간 후 절판된 '진화의 무지개: 자연과 인간의 다양성, 젠더와 섹슈얼리티'(원서는 2003년 출간)의 10주년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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