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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금요광장] 네가 먼저 판단한 죄!

20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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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변호사

명장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1991년 영화 '케이프 피어(Cape Fear)'는 한 변호사의 수난을 다루고 있다. 이 변호사는 한 미성년 소녀를 성폭행한 남자의 국선 변호를 맡게 되는데, 사건 기록을 검토하다가 이 성폭행범의 잔인함에 오히려 분노하게 되어 피해자인 소녀의 성적인 방탕함을 나타내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를 일부러 법원에 제출하지 않아 범인은 14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게 된다.

복역하던 중에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출소한 후에 이 변호사와 가족 주위를 맴돌면서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이들을 괴롭히는데,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는 폭풍우가 치는 케이프 피어라는 강 위에서 변호사를 폭력으로 제압한 후 그의 잘못에 대한 재판을 벌이고는 이렇게 선고한다.

"당신은 유죄야. 친구를 배신한 죄, 나라를 배신한 죄, 서약을 배신한 죄,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먼저 판단한 죄!"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과거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에 교제하던 여성을 살해한 조카를 변론한 것을 상대 진영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영화가 떠올랐다. 여성 피해자 인권을 옹호해 온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상대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가세하면서 이 후보의 이러한 행적을 그 처신의 핑계로 삼았다. 특히 조카가 범행 당시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주장을 한 것을 마치 변호사로서 파렴치한 행동을 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냥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탄원서나 모아서 내며 선처를 바라는 방법으로 변론해야 했었다는 말은 근대 이후 인권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변호사가 사회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킨 흉악범을 변론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부담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변호가 더 필요하고 또한 법으로도 범죄가 중할 경우에는 변호인 없이는 재판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므로 변호인이 없을 수는 없다. 우리 '변호사윤리장전'에서는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로 수임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변호사의 변론활동을 마치 변호를 받는 범죄자의 범행에 동조하거나 옹호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비난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막는 일이다. 변호사 윤리에 관한 논의가 발달한 미국의 변호사 모범규칙에는 변호사의 대리행위는 의뢰인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또는 윤리적 관점이나 행위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고 있다.

이수정씨의 주장을 보면 변호사는 그러한 사건을 수임하더라도 미리 도덕적 판단을 해 사회윤리에 어긋나는 변론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같다. 그러나 변호인은 판단을 하는 자가 아니며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자다. 과거에 벌어진 일을 법정에서 완전하게 복원하는 일은 어렵고 또 확정된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변호사 모범규칙에도 변호사는 의뢰인을 '열성적으로' 대리해야 하며, 종국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계없이 의뢰인에게 유리한 법해석을 주장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나 변호사의 변론권은 근대 이후 인권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것이며, 긴 투쟁을 통해 얻은 기본권이다. 일시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가볍게 논쟁의 대상으로 삼거나 자신의 정치적 처신의 핑계로 삼을 일이 아닌 것이다.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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