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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천일영화] 밀실과 관음의 공포, '히든 페이스'

2024-11-22

이별 통보와 실종의 비밀
공포심 건드린 점 흥미로워
관객들 밀실공포 대리체험
각색부터 공포심 자극까지
우리사회 이슈 반영한 작품

[윤성은의 천일영화] 밀실과 관음의 공포, 히든 페이스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연'(조여정)은 약혼자, 아니 약혼자였던 '성진'(송승헌)에게 노트북 속 영상으로 이별을 고한다. 그들이 만났던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중이란다. 자신에게 결혼은 아무래도 맞지 않는 것 같다면서. 이 범상치 않은 이별통보 후, 수연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얼마 전 집들이도 마치고 신혼여행지까지 결정했는데, 수연에게는 대체 왜 심경의 변화가 생겼던 걸까. 황당할 법도 하지만 성진에게는 당장 실연의 슬픔보다 그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던 수연의 빈자리가 더 신경 쓰인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단장인 수연의 엄마(박지영)는 계속 그를 주시하고 있다. 며칠이 지나도 수연이 다시 나타나지 않자 단장은 성진에게 수연이 후임으로 추천한 사람이라며 '미주'(박지현)의 연락처를 준다. 성진은 수연의 후배라는 미주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고 만다.

'히든 페이스'를 교향곡에 비유하자면, 1악장은 수연이 부재 중인 가운데 성진과 미주가 만나서 어떻게 금기된 선을 넘게 되는지 보여주는 에로틱 드라마다. 성진과 미주의 죄책감이 결국 욕망에 패배하고 마는 베드신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된다. 김대우 감독은 '방자전' '인간중독' 등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남녀의 감정과 육체가 동시에 섞여드는 장면을 탁월하게 연출해냈다. 2악장부터는 결이 완전히 달라진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3개월 전, 그리고 3악장에서 다시 6개월 전의 과거로 돌아가 수연이 미주와 어떤 관계였으며 왜 성진에게 이별을 통보했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여준다. 처음에 수연은 이제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성진을 골려주기 위해 집 안의 비밀 창고에 숨기로 한다. 이 창고에서 수연은 침실과 욕실의 거울을 통해 일방적으로 집안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어떤 이유로 해서 수연이 창고에 갇혀버리는 2악장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영화의 장르가 미스터리 스릴러로 바뀌고 3악장부터는 수연과 미주의 전복된 관계가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수연이 어떻게 이 창고를 빠져나오게 되는지, 그리고 두 사람에게 어떤 복수를 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이 영화에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다.

무엇보다 '히든 페이스'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다. 2악장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장면은 창고에 갇힌 수연이 자신을 꺼내달라고 발버둥치는 장면이다. 관객들에게 이 암담한 밀실 공포를 대리체험하게 하는 상황에서 수연은 곧 미주와 성진의 농도 짙은 애정행각까지 지켜보게 된다. 이 장면의 엿보기(관음)는 쾌락이 아니라 공포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정서적으로 충격에 빠진 수연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멈추게 하기 위해 고함을 치고 유리를 두드리느라 계속 그들의 섹스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을 고문하는데 사용되었다는 이 창고는 수연에게 알고 싶지 않은 진실까지 전달하는, 말 그대로 팩트 폭력의 공간이 되어 버린다.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한 동명의 원작(2011)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려 놓은 부분도 이 창고의 콘셉트이다. 몇몇 헐거운 지점들 때문에 4악장에서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하지만, 동시대 우리 사회의 이슈를 잘 반영한 각색부터 다양한 공포심의 자극까지 할 얘기가 많은 작품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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