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국박물관서 신라유물이 황금빛으로 속삭였다 “내 이야기를 들어봐”

조문국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국보순회전 '황금빛 매혹, 신라 장신구'가 지난 6월 5일 개막했다. 오는 8월 10일까지 67일간 무료로 운영되는 이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주최하는 지역순회전시로 국보 '보문동 합장분 금귀걸이'와 보물 '천마총 관꾸미개'를 포함해 총 54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보순회전 5일 개막
국보 1점·보물 4점 포함 총 54점 전시
아이돌 뮤비 등장해 화제됐던 관꾸미개도
23K 금귀걸이로 신라 제련기술 짐작가능
부부총→합장분 이름 바뀐 봉분도 눈길
고구려 광개토대왕 군대 주둔 흔적 등
조문국박물관에도 지역史 유물 한가득
웅- 휴대전화 진동음과 함께 발신자 표시에 반가운 이름이 떴다.
'내 보물'
서울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다.
"엄마, 대박! 제니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그 의상 있잖아. 모티브가 된 신라 금관. 그게 의성에 있대. 이번 주말에 같이 의성 가자. 내가 내려갈게. 와, 진짜 대박!"학교에 제출할 의상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느라 한동안 대구 내려올 새도 없던 아이가 갑자기 의성이라니.
얼떨떨한 심정으로 이미 예약해뒀던 서울행 기차표를 취소하고, 아이가 일러준 가수 제니의 뮤직비디오 'ZEN'을 찾아봤다. 그리고 노래의 첫 소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유튜브 조회수 약 5천3만 회, 세계인이 열광했다는 바로 그 장면! 신라 화랑의 전신이자 여성 리더인 원화(源花)로 변신한 제니는 과감한 V자형 상의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꽤나 눈에 익은 우리나라 보물, 천마총 관꾸미개였다.
◆의성 조문국에서 만나는 황금빛 국보와 보물

의성 조문국박물관 국보순회전 체험존. 국보순회전 '황금빛 매혹, 신라 장신구'전에는 국보1점, 보물 4점을 포함해 총 54점의 신라 장신구가 조문국박물관에서 선보인다.
"신라시대 장신구 중에서 소위 급이 가장 높은 유물, 명품으로 손꼽히는 보물들이 우리 박물관에 다 온 거예요. 여기 자세히 보시면 이게 금 알갱이를 하나하나 다 납땜해서 붙인 거거든요. '누금기법'이라고 하는데, 0.6㎜밖에 안되는 요 작은 알갱이를 이렇게 거북등 모양으로 만들어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다시 그 안에 작은 꽃 문양을 만들어놨어요. 이것만 봐도 신라인들의 금 세공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죠."
조문국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보순회전에서 선보이는 경주 보문동합장분 금귀걸이 이야기다. 슥 보고 지나칠 때는 몰랐던 정교함이 배기석 학예팀장의 말을 듣고 나니 비로소 보인다.
국보순회전 '황금빛 매혹, 신라 장신구'는 조문국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가 지난 5일 개막했다. 오는 8월 10일까지 67일간 무료로 운영되는 이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주최하는 지역순회전시로 국보 '보문동 합장분 금귀걸이'와 보물 '천마총 관꾸미개'를 포함해 총 54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국립중앙박물관까지 가야 볼 수 있는 국보급 문화재를 지역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조문국박물관은 기꺼이 '재수'를 했다. 전국각지에 박물관은 많은데 국보는 한정돼 있다 보니(2025년 6월 기준 문화재청은 총 366건의 국보를 지정했다) 신청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순회전시 기회를 누리는 건 아니다. 지난해 공모 신청에 탈락한 이후 절차탁마 끝에 두 번째 도전했고 드디어 올해, 8개 공립박물관 중 하나로 국보순회전 여정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국보1점, 보물 4점을 포함해 총 54점의 신라 장신구가 조문국박물관으로 왔다.
"초등학교 3학년 눈높이에 맞추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거든요. 그래서 이번 전시도 이렇게 귀걸이가 얼마나 정교한지 직접 만지며 느껴볼 수 있도록 모형도 설치해뒀고, 또 목걸이를 엮은 가느다란 금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돋보기도 설치해뒀고, 아이들이 직접 스티커를 붙이며 장신구를 꾸며볼 수 있도록 활동 리플릿도 준비했어요."
학예팀장의 설명을 들으며 황금 관꾸미개 앞을 지나치던 순간이었다.
"보셨어요? 방금, 보셨어요?"
대체 무엇을 봤냐는 건지 의아하던 찰나,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흠'하고 작은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46㎝에 달하는 커다란 관꾸미개가 마치 비상을 준비하는 새의 양 날개처럼 미세하게 움직였다. 유리 전시관 그 너머, 금판에 달린 얇고 둥근 장식들이 숨결의 작은 진동에도 일제히 흔들리며 빛을 발했다. 주위가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보지 못했으면 모를까, 일단 그 눈부신 황금빛을 목격했다면 그때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제 내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
유물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의성 조문국박물관 상설전시실. 2층에는 조문국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과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1층 열린 수장고에 들어서면 수많은 출토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마치 고분속으로 걸어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신라 보물이 품고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경주 보문동 돌방무덤 바닥에서 발견된 이 금귀걸이는 황금 순도가 23K 정도 됩니다. 여기 다른 장신구들도 다 비슷해요. 약 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1천500년 전에 이만한 제련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거죠. 로마 유물도 이만큼 순금 비율이 높지 않아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귀걸이가 발견된 봉분의 명칭 변천사다. 1915년 일제강점기, 일본이 경주 보문동에서 무덤을 조사하던 당시 돌방무덤 옆에 또 하나의 돌무지덧널무덤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돌무지덧널무덤을 만든 뒤에 봉분의 일부를 허물어 돌방무덤을 추가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부부의 무덤으로 여겨 '보문리 부부총'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후 국립경주박물관이 2개의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조사하면서 보니 무덤의 주인은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여자와 여자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보통 허리에 큰 칼을 차고 있으면 남성, 크고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있으면 여성으로 보는데 두 무덤의 주인이 모두 금알갱이로 장식된 굵은 고리 귀걸이를 하고 있었던 거죠. 아마도 자매나 모녀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보문리 '부부총'에서 '합장분'으로 이름이 달라졌다는 얘기.

의성 조문국박물관 열린수장고.
비취 색깔의 굽은 옥이 달린 금목걸이의 사연도 흥미롭다.
1933년 경주에 살던 김덕언이라는 사람이 땅을 갈다가 금반지와 금귀걸이를 발견하고 경주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사를 통해 금목걸이의 일부를 포함한 추가 유물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이 금목걸이는 일본으로 넘어가 도쿄국립박물관에 보내졌고 1965년 '한일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이 맺어진 이듬해에야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금목걸이의 나머지 절반은 이미 한국에서 소장품 번호가 붙어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돌아온 절반의 금목걸이에도 새로 번호를 붙여야 했다. 하나의 목걸이에 2개의 번호를 갖게 된 아픈 역사가 이 목걸이에 남아있다.
그 사연을 알고 나니 그저 아름답게만, 화려하게만 보았던 국보와 보물이 사뭇 달라 보인다.
그리고, 조문국박물관에는 아직 그 사연이 밝혀지지 않은 무수한 유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겪으면서 2개의 번호를 가진 황금목걸이. 경주 노서동 215번지에서 발견된 보물이다.

가수 제니의 뮤직비디오 'ZEN'의 의상디자인의 모티브가 된 천마총 관꾸미개. 약 6세기에 제작된 '금 관꾸미개'다. 길이가 무려 46㎝에 달하는 거대한 관 꾸미개로 마치 새의 양쪽 날개가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모습이다.

의성 조문국박물관 국보순회전 금드리개.
◆조문국의 황금빛 보물들
조문국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에는 조문국의 권력자가 남긴 화려한 금관과 장신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한시대 때 의성지역에 존재하다 신라에 병합된 고대국가 조문국은 신라 북부권 단일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수의 고분을 보유하고 있고, 그 수가 많다보니 당연히 출토되는 유물도 많다.
"앞에 보이는 인골은 조문국 사적지, 그러니까 금성면 고분군 중에서도 대리리 고분군에서 발굴된 인골로 발굴 당시 머리에 금동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면 아시겠지만 조문국에서 발견된 금관은 신라와는 조금 다르죠? 신라보다는 고구려 접경지역에서 이런 양식의 금동관이 많이 발굴됩니다."
조문국의 왕관은 새 깃털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형태는 조문국의 지배층이 신라나 다른 고대국가와 달리 고구려나 중국왕조 같은 이질적인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2층 상설전시실에서 만난 구진형 해설사는 한손 가득 자료뭉치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수장고에 있는 유물을 공부한다고 했다.
"당시 조문국의 지배자는 신라 등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당시 고구려의 왕이 광개토대왕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조문국 일대까지 잔당을 격퇴시키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내려왔고 자연스럽게 고구려 군대가 주둔을 하면서 문화적 교류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박또박 진지한 해설을 듣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뭉클해졌다. 한 국가의 흥망성쇠, 그 오래된 이야기가 수백 수천 개의 유물로 수장고와 무덤에 지금도 잠들어 있다. 어쩌면 그 이야기를 발굴하고 들려주는 이 사람들이 또 하나의 보물은 아닐까.
자세히 들여다 봐야, 보물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보물은 그 가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으로 인해 진짜 보물이 된다.
보물은 있는 것이 아니라, 보물이 '되는' 것이다.
의성 조문국에는 금성면 곳곳에서 그런 보물을 만날 수 있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함께 둘러보면 좋을 금성면 보물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조문국박물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국보로 지정됐다. 목조건축양식과 전탑의 조성기법, 석탑의 양식까지 다 엿볼 수 있는 데다 원형도 잘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으로나 미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 탑이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금성(탑리)버스정류장
탑리리 오층석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오래된 버스정류장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긴 나무 의자가 놓여있는 시골정류장 대합실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곳은 버스 승객이 줄어들면서 66년간 이 버스정류소를 운영한 사진작가 '김재도의 사진갤러리'로 변신했다. 이곳 갤러리에서 고분군의 아름다운 사계와 고분군 사적지 조성 당시의 사진을 볼 수 있고, 갤러리 옆 작은 도서관에서는 의성군민들의 옛날 사진과 함께 구순 사진작가가 들려주는 의성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탑리 금성전통시장
김재도 사진갤러리에서 골목 하나 꺾어들면 옛날 손글씨 간판으로 레트로 감성을 살린 금성전통시장이 있다. 1일, 6일이 오일장. 전국의 마늘이 트럭에만 올라가면 '의성마늘'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이곳에선 진짜배기 의성마늘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주말부터 갓수확한 의성마늘을 맛볼 수 있는 기회다.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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