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불봉 넘어 해맞이공원까지 부드러운 오솔길 내내 동해를 끼고 간다

남서쪽 삿갓봉에서 북서쪽 달봉산으로 이어지는 구릉진 산등성이, 창포리 바닷가의 고지에 조성된 영덕 풍력발전단지. 높이 80m, 건물 30층에 달하는 풍력발전기. 풍력발전을 위해선 초속 5m 이상의 풍속이 필요하다.
윤선도가 극찬한 고불봉에 서면
북쪽엔 풍력발전기 이국적 정취
서쪽으론 오십천 한눈에 들어와
지난 3월 대형 산불의 피해 지역
별파랑 공원선 착한여행 캠페인
1만원이면 진달래 15주 식재 가능
창포말 등대 전망대 아래 바닷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
한적하고 유유한 푸른 산길이다. 숲속 보드라운 오솔길 내내 동해 바다의 허리를 꽉 껴안고 함께 걷는다. 숲속 경쾌한 운율의 오르내림 내내 태백산에서 다대포로 힘차게 달려가는 낙동정맥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길은 영덕 블루로드 3코스 '바람의 언덕'이다.
봉화산 해맞이 등산로를 따라 영덕의 진산인 고불봉을 밟고 창포리의 풍력발전단지를 거쳐 영덕 해맞이공원의 창포말 등대에 이르는 17.6km의 길이다. 이 길은 블루로드 A코스 '빛과 바람의 길'이기도 하다.
◆영덕의 진산 고불봉을 향해
강구대게마을에서 블루로드 이정표를 따라 언덕길을 잠시 오른다. 약간 급경사다. 문득 뒤돌아보면 강구항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조금 멀리에는 삼사해상공원이 동그마니 앉아 있다. 조금 올랐을 뿐인데 발밑 풍경이 멋지다. 그렇게 10여분을 오르면 해맞이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키 큰 소나무와 떡갈나무 등이 어우러진 호젓한 숲길로 들어선다. 비교적 평탄하고 보드라운 오솔길이 이어지고 쉼터와 운동시설도 후하다. 인근 주민들이 무시로 오르내리는 숲인 듯하다. 가파른 오르막도 급한 내리막도 없는 순한 길을 설렁설렁 걷는다.

영덕 블루로드 산길을 이어나가기 위해 놓은 금진구름다리. 다리를 건너 고불봉으로 향하다보면 풍력발전단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금진구름다리를 건넌다. 블루로드 산길을 이어나가기 위해 놓은 다리라 한다. 다리 아래는 봉화산 허리를 가르는 자동차 길로 영덕읍 금호리와 강구면 금진리를 잇는다. 하늘을 가로질러 고불봉으로 향한다. 작은 봉우리를 연달아 정복하는 듯 제법 율동적인 산길이 4.2㎞ 이어진다. 수목의 가슴과 가슴에 바다가 걸려 있다. 먼 윤슬은 눈부시고 바다를 마당삼은 작은 집들이 그림 같다. 저 멀리 풍력발전단지의 바람개비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개비는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며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어 준다. 잘 정돈된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길을 터주고, 그 끝에 작은 정자의 지붕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고불봉(高不峰 또는 高佛峯)은 영덕의 진산이다. 망월봉(望月峰)으로도 불린다. 고려시대 청백리인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이 올랐다 해 '고불'이라 했다고 전한다. 그가 언제 이 봉우리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고불봉을 찬탄하는 글을 지어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그 중 한 사람이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다.
선생은 1638년 영덕에 유배됐는데 고불봉 아래에 유배소를 정하고 약 8개월 동안 머물면서 20여 수의 시를 남겼다. 정자 앞에 그의 시비가 있다. '고불이란 봉우리 이름이 이상하다 하지만/ 여러 봉우리 중 최고로 뛰어난 봉우리이네/ 어디에 쓰이려고 구름, 달 사이로 높이 솟았나/ 때가 되면, 홀로 하늘 받들 기둥이 될 것이네.' 고불봉은 해발 235m다. 아주 높지는 않지만, 아주 높게 느껴진다. 새벽 구름에 싸여 있는 고불봉의 모습을 불봉조운(佛峰朝雲)이라 하는데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영덕 8경 가운데 하나다.
고산이 극찬한 봉우리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동쪽으로는 잔물결 같은 산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바다가 아득하다. 남쪽으로는 지나온 숲이 짙고 푸른 정수리를 주억이며 따라오고, 북쪽으로는 산 능선을 따라 우뚝 솟은 수십 개의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서쪽으로는 영덕 읍내와 마을을 에두르며 흐르는 오십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읍내 뒤편으로 산불로 인해 검게 그을린 산자락들이 겹겹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주택가 인근에도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영덕 풍력발전단지 신재생에너지전시관.
◆희망이 피어나는 풍력발전단지
풍력발전단지는 남서쪽의 삿갓봉에서 북서쪽의 달봉산으로 이어지는 구릉진 산등성이, 창포리 바닷가의 고지다. 이곳 일대는 지난 3월 전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경북 대형 산불의 피해지역이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풍력발전단지를 거쳐 해안까지 내려갔다. 산불로 공원 내 소나무 숲의 3분의 1이 피해를 입었고 데크와 파고라 등의 휴게 시설이 소실돼 공원폐쇄조치가 단행됐었다. 고불봉에서 내려와 풍력발전단지로 향하는 길목에는 산불피해로 인한 블루로드 통제 안내문이 설치돼 있었다. 영덕군은 총력을 다 해 복구에 나섰고 현재 풍력발전단지 일대는 거의 정비돼 있다.
그러나 타버린 숲은 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풍력발전기 아래 산자락에 타다 만 나무들이 까맣고 앙상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불의 흔적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어느새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눈앞에 서 있다. 발전기 한 기의 높이는 80m, 건물 30층에 달한다. 풍력발전기를 세우려면 초속 5m 이상의 풍속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곳에는 평균 초속 7m의 바람이 분다.
시간을 거슬러 1997년 2월에도 이곳은 화마를 입었다. 영덕읍 우곡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바람을 타고 하루 만에 이곳까지 옮겨 붙었고 창포리 일대 야산은 까맣게 폐허가 됐다. 이후 2005년에 조성된 것이 풍력발전단지다. 그리고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간에 걸쳐 104㏊ 규모의 산림생태문화체험공원이 조성됐다.
해맞이캠핑장과 정크트릭아트전시관을 지난다. 넓디넓은 공원에 영덕 해맞이 예술관, 창포해맞이축구장, 국립청소년해양센터 등이 들어서 있고 야외 어린이 놀이터와 조각공원, 크고 작은 정원과 전투기 전시장 등이 자리한다.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는 신득청(申得淸)의 '역대전리가'를 읽는다.
고려 충숙왕 시절 창수면 인량리에서 태어나 평산부원군까지 지낸 그는 고려 말 공민왕의 실정을 바로잡고자 우국충정의 간절한 마음으로 '역대전리가'를 지어 올렸다. 그러나 결국 고려는 패망했고, 그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동해바다에 몸을 던졌다. 너른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북쪽, 서쪽, 남쪽으로는 첩첩 산릉선이 끝 모르게 광활하다.

영덕 풍력발전단지 별파랑공원. 경북 대형 산불이 휩쓴 후에 '다시 피어나는 영덕, 함께 만드는 진달래 동산'이 됐다. 이곳에선 착한 여행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달래 묘목 심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풍력발전단지 내 별파랑 공원 일대는 지금 '다시 피어나는 영덕, 함께 만드는 진달래 동산'이다. 영덕문화재단에서는 지난달 17일일부터 '착한 여행 캠페인'의 하나로 진달래 묘목 심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참가비 1만원을 내면 진달래 묘목을 15주까지 심을 수 있고 영덕사랑상품권 1만원권도 받는다. 캠페인은 오는 22일까지 진행되며, 여름이 지나면 재개할 예정이라 한다.
점점이, 무수히 심겨진 진달래 묘목들 너머로 손에 손 잡은 여인들의 '월월이청청' 조형물이 보인다. '월월이청청'은 남해안의 강강술래와 같이 정월 보름날이나 한가위 달밤에 행해지는 부녀자들의 집단 군무다. 발생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백 년 전일 것으로 짐작된다. 영덕사람들은 월월이청청을 놀아야 풍년이 들고 마을에 탈이 없다고 믿었다. 각처에서 찾아와 꽃을 심은 그 손들이 '월월이청청'같다. 기원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진달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차근차근 심겨진 진달래는 내년, 후년, 그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별파랑 공원 일대를 예쁘게 물들일 것이다. 진달래의 꽃말은 '희망'이다.

영덕 해맞이공원의 랜드마크인 창포말등대. 경북 대형 산불의 상처를 안고 있는 주변 솔숲과 대비돼 하얗고 말끔한 등대가 슬퍼 보인다.
◆해맞이 공원과 창포말 등대
풍력발전단지를 벗어나 바다로 향한다. 검게 탄 솔숲 너머로 창포말 등대가 보인다. 망망한 동해를 펼쳐놓고 언덕에 홀로 선 창포말 등대는 영덕해맞이공원의 랜드마크다. 대형 집게발이 붉은 태양을 물고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등대는 그을음 하나 없이 말끔한데 주변 솔숲은 화재의 여파로 슬픈 모습이다. 바다로 내려가는 데크 산책로는 복구 중이어서 창포말 등대 전망대까지만 내려가 볼 수 있었다.

영덕 화강섬록암 해변. 이 해변은 2억 년 전 마그마가 식어 형성된 것으로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저 아래 바닷가에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영덕화강섬록암해변이 있다. 이곳의 화강섬록암은 약 2억 년 전 지하에서 마그마가 식어 형성된 것으로 여러 방향으로 쪼개진 절리, 얼룩무늬의 포유암, 돌개구멍 등이 관찰된다. 특히 '약속바위'는 암석의 절리가 꼭 사람의 손처럼 생긴 바위다.
어지러웠던 구한말 의병을 일으킨 신돌석 장군은 이 바위 앞에서 아내와 약속했다고 한다. 꼭 지켜주겠다고. 장군은 가족을 칠보산에 숨겨 화를 면하게 했다. 이후 장군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이 이 바위 앞에서 약속을 하는 풍습이 생겼다 한다. 전망대에서 약속바위는 가늠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그마한 풀꽃들이 곳곳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 일출의 명소 해맞이공원 표지석은 믿음직한 얼굴이고 바다는 변함없이 찬란하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영덕군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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