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공무원 정치 기본권 보장, 겨울이 오기 전에
임성무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입 상임대표·대구 화동초등 교사
"교원은 단순한 교육자를 넘어 우리 사회의 기본인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주춧돌", "교원이 국민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OECD 국가에서 교원의 정치권이 봉쇄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법과 정치,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교원들에게 정당 가입과 후원, 선거 참여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후진적 현실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여당 최고위원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교사와 공무원 정치 활동을 금지한 것은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부터이니 무려 65년 동안 교사 공무원을 정치적 금치산자로 만들었다. 모든 교원단체와 공무원노조는 꾸준하게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이에 유엔(UN)과 국제노동기구(ILO)가 정치적 자유를 허가하라고 촉구했고, 2019년 국가인권위원도 관련 법령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나는 교직 40년간 정치 기본권을 누리지 못 해왔다. 그러니 나는 평생 대학생 시절 딱 4년간 정치 기본권을 누려본 셈이다. 교사가 된 이후 정치 기본권과 관련한 피해 기억이 있다. 신규 교사 시절 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아 출퇴근이 가장 불편한 학교로 좌천돼 있었다. 그해 존경할 게 너무 많았던 옆 반 대선배는 버스에서 뉴스를 듣다가 전두환 욕을 했다고 버스 기사가 버스를 몰고 바로 경찰서로 갔고, 이 일로 징계를 받으셨던 분이었다. 교사 공무원들도 정치후원금을 내는 게 합법적이었던 때가 딱 한 번 있었다. 아주 잠깐이어서 다시 법이 바뀌어 금지된 것도 모르고 작은 정당에 10만원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기소돼 전국 많은 교사가 법원 판결로 몇 배의 벌금을 내고 징계를 받았다. 한 번은 대구교육감 선거 때 후보로 나온 선배의 저서를 아는 분들에게 주었다는 이유로 또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을 내고 징계를 받았다. 이 일을 겪은 뒤엔 친한 분이 선거에 출마해도 격려하는 것조차 피하며 조심 했다. 지난 교육감 선거 때는 전교조 사무실 위층에 후보의 선거사무실이 있어도 혹시라도 선거법 위반이 될까 봐 겁이 나서 조심조심했다. 선거 때만 되면 혹시라도 휴대전화에 선거와 관련된 어떤 글이라도 쓰거나 공유했을까 싶어서 휴대전화를 수시로 점검했다. 이런 걸 잘 아는 아내는 선거 때만 되면 미리미리 나를 단속했다. 나는 그렇게 40년을 살았다. 지난 10월 경기도의 한 고등학생이 교사가 수업 중 윤석열 전 대통령 비하 발언했다며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정치적 기본권도 없는 자기검열이 습관화돼 있을 교사들이 학생의 민원처럼 수업했을 리가 없다. 설사 했다고 하더라도 관련 수업 중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 인용했을 것이다. 경기도가 이 정도이니 대구 교사들은 아예 윤 자도 꺼내면 안 된다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 기본권 없이 긴 세월을 살면서 교사들은 잔뜩 겁을 먹고 지내왔고, 정치적 비판 능력은 이미 DNA에서조차 거세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교원의 정치적 권리는 개인의 권리를 넘어 민주시민의 교육 본질을 지키는 길이다. 교원이 자신의 목소리로 사회에 참여하고 아이들에게 올바른 민주주의를 보여줄 때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라는 여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교사나 공무원들의 정치적 기본권이 왜 보장돼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정치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어느 교사도 수업이나 학교 행사에서 정치적 행위를 보장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교육에서의 정치적 중립은 보이텔스바흐 협약으로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강제하면 될 일이다.
교육의 자리가 아닌 일과시간 이후 최소한의 정치 활동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적 합의가 돼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시기 공무원·교사의 정치 활동 보장을 약속했고, 국정과제에도 이를 포함했다. 여당 대표, 국회의장도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교사들의 양식을 믿어도 된다. 여러 국회의원이 벌써 제출한 교사와 공무원들의 정치 활동을 옥죄는 공직선거법, 국가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을 개선하는 '교사 공무원 정치 기본권 보장 4법 개정안'을 더는 미루지 말고 이번 정기 국회 때 통과시키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치 기본권 없이 보낸 40년이 이제 100여일 남았다. 2월 정년 퇴임으로 저절로 정치 기본권을 갖겠지만, 그 전에 단 며칠이라도 현직 교사로 정치 기본권을 마음껏 누려보고, 내 안에 사라진 정치 DNA를 회복시키고 퇴직하고 싶다. 그리고 후배 교사들은 더 이상 자기검열을 하느라 교육력을 낭비하지 말고 살도록 겨울이 오기 전에 정치 기본권의 날개를 달아 주기를 바란다.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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