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1783년 1월23일 '적과 흑'의 스탕달이 태어났다. 적(赤)은 군복, 흑(黑)은 사제복을 뜻한다. 즉 '적과 흑'은 프랑스 사회에서 평민이 출세하려면 신부가 되는 길뿐이라는 스탕달의 풍자 어린 비판을 담고 있는 제목이다. 스탕달은 자신의 인식을 주인공 줄리앙의 입을 통해 "가장 선하다는 것도, 가장 위대하다는 것도, 모든 것이 위선이다. 아니면 적어도 사기다"라는 말로 드러낸다. 신학교 학생 줄리앙이 출세를 목적으로 상류층 여성들에게 파렴치하게 접근하다가 결국 단두대에서 참수되는 귀결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줄리앙은 우리나라 식으로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 프랑스 식으로는 '나무꾼의 아들'이다. 줄리앙은 어릴 때부터 야심 즉 출세욕에 불타는 성정을 보인다. 줄리앙은 가정교사로 들어간 시장 댁에서 레날 부인을 유혹한다. 그러다가 세상에 사건이 드러날까 두려워 신학교 학생이 된다. 줄리앙은 신학교에서 성직자들의 행태를 통해 위선이 최선의 출세 방법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그는 파리의 후작 댁에 비서로 들어갔다가 그 집 콧대 높은 딸 마틸드를 사로잡는다. 그녀와 결혼이 눈앞에 왔을 때 레날 부인의 폭로 편지가 도착한다. 줄리앙의 야심은 수포로 돌아간다.
줄리앙은 레날 부인에게 총격을 가한다.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레날 부인이 감옥으로 면회를 온다. 그는 자신이 레날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줄리앙은 행복을 느끼면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적과 흑'은 현실에 일어난 사건들의 공판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고 알려진다. 사회소설은 그렇게 창작되는 경우가 많다. 현진건의 '신문지와 철창'도 "나는 어줍잖은 일로 삼남 T경찰서 유치장에서 며칠을 보낸 적이 있었다"로 시작된다.
우리나라 소설에서 실화를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한 대표 사례는 심훈 '상록수'이다. 이 소설의 실제 인물 최용신은 새파란 나이 25세에 타계했다. 최용신은 독립유공자이므로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소개되어 있다. "(19세 때) 조선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는 생각에서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25세이던) 1935년 1월23일 지나친 과로로 사망하였다. 그는 심훈 소설 '상록수'에서 실재화되어 농촌운동의 귀감이 되었다."
1939년 김교신이 최용신 전기 '눈 속에서 잎 피는 나무'를 펴냈다. 1961년과 1978년 신상옥·임권택 두 감독이 각각 '영화 상록수'를 만들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64년 이래 '용신 봉사상'을 수여한다. 혐오 인물로 배척받는 줄리앙과 달리 최용신은 역사의 준거인물로 숭앙받는다. 천국이 있다면 역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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