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119.010050734400001

영남일보TV

[토요일&] ‘내부 고발’ 공익신고자 현실

2019-01-19

“잘못 바로잡으려다가 되레 배신자 낙인…국가가 보호해야”

20190119

최근 두 사람의 내부고발이 대한민국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특별감찰반원으로 일했던 김태우 수사관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그 당사자다.

김 전 수사관은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비리와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을 폭로했고,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KT&G 사장 교체에 관여했고, 적자 국채를 발행하라고 압력을 행사했으며, 기재부가 결정한 바이백(Buy Back·국채 만기 전 되사는 것)을 취소하도록 강압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해당 사안을 수사 중이어서 재판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제기한 의혹의 진실 여부가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차는 극명히 엇갈린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권은 이들을 공익제보자라고 규정한 반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들의 폭로를 ‘개인 일탈’과 ‘좁은 시야’에서 비롯된 논란으로 치부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같은 논란 속에 한편에선 ‘내부고발’ ‘공익신고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에 공익신고자가 처한 현실과 공익신고자 보호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공익신고자 처벌받는 현실

“두 아이에게 당당하게 ‘아빠는 비겁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15년 넘게 효성그룹 영업사원으로 근무했지만, 공익제보 이후 회사에서 쫓겨난 김민규씨 얘기다.

그는 2017년 효성과 LS산전 등 대기업이 발전소 설비를 입찰하면서 나눠먹기식 담합을 벌인 사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인물이다.

김씨는 처음에는 회사 감사팀에 “우리 팀이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 같다”는 내용으로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해결은커녕 인사조치만 당했다.

‘안되겠다’ 싶어 입찰을 주관한 한수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 비리를 얘기했지만, “차라리 좀 숙이고 모르는 척 하는 게 현명한 대처 방법이 아닐까. 가족도 있잖아”라는 한수원 관계자의 대답만 돌아왔다.

김씨는 결국 제보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면서 해고당했다.


비리 제보 후 파면·고발 등 고통
용기있는 행동해도 가혹한 대가
가정파탄에 보복 두려움도 지속

바른당 공익신고 보호방안 모색
제보자 범법행위 사후 밝혀져도
보호측면 면죄까지도 고려해야



마지막으로 공정위를 찾아가 신고했고 공소시효를 하루 남기고 검찰이 극적으로 피의자들을 기소했다. 하지만 이내 김씨는 공범으로 몰렸다.

해당 사건을 맡은 검사는 “미안하지만 입찰 담합 당시 실무자여서 불가피하게 기소해야 한다”며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신고자 감형 또는 면제를 규정하고 있지만 당신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실무자가 아니면 어떻게 증거를 모으고 제보를 할 수 있겠냐.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재홍 변호사는 “(공익신고자의 경우) 민사 책임에 대해서는 면제가 가능한데 형사 책임에 대해서는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며 “판사 개인의 재량이 너무 포괄적으로 부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최근 김씨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효성 측에 내려진 벌금은 7천만원이었다.

김씨는 “자산 20조원짜리 회사에 매긴 7천만원 벌금과 공익제보 후 직장까지 잃은 제가 받은 벌금 300만원 중 누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은 거라 생각하나”라고 반문했다.

담합한 회사들은 항소를 포기했고 김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에서 쫓겨난 지 3년이 됐지만 아직 대법원에서는 해고 무효 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김씨는 자신이 한 고발 때문에 본인이 처벌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김씨는 “이런 상황이면 누가 용기를 내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려 하겠냐”라면서 “10년 넘게 써 온 업무일지에는 여전히 감춰진 비리가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비리를 들출수록 저만 더 다치게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회, 정부 법률 강화해야

공익신고자에 대한 여러 인터뷰를 분석해보면 조직의 보복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경제적인 어려움 등은 이들이 겪는 아픔의 일부에 불과하다.

공익신고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비리의 실체를 세상에 공개하지만, 진실을 향한 그들의 외침에 대한 사회의 지지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그 이상의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용기있는 결단과 행동에 찬사를 보낸다”며 정의를 향한 호루라기를 든 공익신고자에 대한 찬사는 순간이다. 그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몸을 담았던 조직으로부터 끝없는 유무형의 불이익이 기다린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의 감사비리를 신고한 현준희씨는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현씨는 1996년 효산그룹의 콘도 사업 허가 과정에서 청와대 압력으로 감사가 중단됐다고 밝혔다가 결국 파면됐고, 감사 중단을 지시했다고 지목한 간부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송사에 시달리기도 했다.

1990년 보안사령부가 당시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영삼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고(故) 김수환 추기경 등 민간인 1천300명을 불법사찰했다고 폭로한 윤석양 이병은 소위 탈영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당시 국방부는 폭로 후 윤 이병의 2년간 도피생활을 문제삼았다.

공익신고자가 받은 고통은 단계별로 다양하다. 신고를 결심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은 물론 신고 이후에는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해고는 당연시되고, 아예 해당 업계에서 퇴출당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평생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이런 고통이 장기간 지속되면 가족 관계가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 대인 관계를 기피하게 되고, 지루한 법정 공방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과정에서 자살 충동을 느껴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로는 일부 네티즌의 ‘마녀사냥’으로 신분이 노출돼 협박을 당하기도 하고 물리적인 공격을 받기도 한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장기간 지속된다.

이 때문에 ‘의로운 행위’가 ‘외롭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관련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때 맞춰 바른미래당은 김 수사관과 신 전 사무관 폭로를 계기로 공익신고자 보호 방안 모색에 나섰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최근 당의 정책위원회에서 주최한 ‘공익신고자 보호 강화 방안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촛불 혁명도 어떻게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거부의식을 가진 내부고발자의 제보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 “사적인 문제나 ‘사람이 어떠냐’ 등의 이야기는 나올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국가기관에서 있던 일을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진정성’ 여부가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공익신고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공익신고자가 범죄행위에 가담한 것이 사후에 밝혀진다 해도 현재 ‘감경할 수 있다’라고 돼 있는 것을 ‘당연 감면’으로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며 “공익신고자 보호 측면에서는 면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익신고자가 최종적으로 범죄행위로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조직 내부의 비리를 용기있게 말하지 못하는 점을 방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법적 보호의 방패가 커진다 해도 존재 여부도 모르거나 조직 내부에서 몸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면 소용 없는 일”이라며 “제보과정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수칙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들이 조언하는 단계별 행동수칙은 △외부신고시 조직 차원의 부정 여부 판단 △보복성 징계 빌미 차단 △비망록을 포함한 입증을 위한 자료 확보 △변호사·내부고발지원단체(호루라기 재단, 내부제보 실천운동 등) 법률 상담 △신고방법 숙지 등이다.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지문 이사장은 “현행법은 공익신고 대상을 법률에 명시된 법률위반 행위만을 인정하는 ‘열거주의’ 방식이어서, 새로운 공익침해 행위가 생길 때마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공익침해행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포괄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제보자가 위법 행위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심해 신고했다면 조사 과정에서 피제보자가 무혐의가 되더라도 제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현기자 shkim@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김상현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