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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3040칼럼] 어느 작은 ‘장터’ 이야기

2017-10-24

고맙고 따뜻한 여러분들의
정성과 사랑이 모여
환하게 꽃피운 가을날 하루
이웃 위한다며 준비한 장터
우리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3040칼럼] 어느 작은 ‘장터’ 이야기

회사 동료들이 뜻을 모아서 플리마켓을 열었습니다. 어느 장애인 단체를 위해 마련한 주말 자선 장터였습니다. 저마다 정성껏 차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기획회의를 거쳐 역할분담을 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노트, 엽서 등 소품 디자인에 들어갔습니다. 평소 글만 쓰던 카피라이터도 솜씨를 발휘하여 철사와 색실 등으로 갖가지 제품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위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우리도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어느 중학교 선생님들은 손수 만든 방향제를, 음악학원 원장님은 솜씨가 돋보이는 자수 소품들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노트, 엽서 등의 디자인이 마무리되면 무료로 제작해주겠다는 업체도 있었습니다. 행사장을 꾸미는 크고 작은 현수막을 모두 만들어서 걸어주겠다는 분도 함께했습니다. 어느 화훼단지에선 꽃 소품을, 가구점에선 매장 장식품으로 사용하던 서양화·도자기·실내분수 등을 보탰습니다. 웨딩전문업체서 보내온 미니액자, 어느 화가는 작품을, 회사 인근 카페에서는 카페 상품권과 예쁜 머그잔을 들고 왔습니다. 특히 행사 하루 전날, 주부 한 분은 “예약된 일정 때문에 행사에 참여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맑은 유리꽃병을 안고 찾아왔습니다. 정말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두들 “참 뜻 깊은 행사”라며 기쁜 마음으로 동참했습니다. 평소 회사업무에 부대끼며 무심하게 지내왔는데, 우리 주위의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들은 이렇듯 앞 다투며 찾아와서 그 온도를 높였습니다.

이렇게 마련된 작은 장터는 하루 종일 붐볐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물론 멀리서도 찾아왔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놀이터처럼 돌아다니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이처럼 고맙고 따뜻한 분들의 정성과 사랑이 모여서 환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니 휴일을 반납한 채 하루 종일 먼지바람 맞으며 판매원으로 변신한 디자이너와 기획자들도 연신 싱글벙글거리며 신났습니다. 사실 이 행사는 처음부터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내어 큰돈을 전달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그 마음들이 얼마나 많이 함께할 것인가’에 기대를 걸면서 ‘사랑의 장터’를 이루길 바랐던 것입니다.

동료들은 이런 마음으로 퇴근을 미룬 채 삼삼오오 둘러앉았습니다. 업무시간보다는 아무래도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였지요. 편하게 상상하면서 그림 그리고 소품을 만들었습니다. 때론 서로 의견이 조금씩 다르기도 했지요. 하지만 차분하게 토론하고 저마다의 끼를 발휘해가며 흥미롭게 준비했습니다. 그 속에서 평소 느끼지 못하던 동료애와 숨어있던 장점을 서로 배우기도 했습니다. 섬세하게 배려해주는 그 마음 씀씀이에 서로 놀라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뜻밖의 큰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모두들 자기탐구이자 성찰과 분석의 시간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행사장 입구에선 이색 장면도 만났습니다. 초등생으로 보이는 딸아이를 행사장을 배경으로 세운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모두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음을 나누는 참 고마운 분들이야. 이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두면 너도 나중에 이분들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게 될 거야. 자 예쁘게 웃어봐”라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역시 매출을 올리는 것만이 성과가 아니었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엔 “그날 못가서 미안해요. 그 행사 오늘 알았어. 다음엔 미리 좀 알려줘요. 우리도 꼭 가봐야 했는데…”라는 전화도 여러 통 받았습니다.

‘이웃을 위해서’라며 준비한 소란했던 장터에서, 뜻밖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일깨운’ 고요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잊지 못할 계절, 이 가을이 아름답게 깊어갑니다. 이현경 (밝은사람들 기획제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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