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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사라져 버린 문화예술비평

2018-10-26
[문화산책] 사라져 버린 문화예술비평
김종백<교육연극연구소 메탁시스 대표>

며칠 전 얘기 중에 한 지인이 “대구는 왜 비평과 평론이 없냐”고 묻자 모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글 한번 잘못 쓰면 평생 욕먹고 원수 되는데 누가 비평하겠냐.”

지역 문화예술계에 비평이 없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렇다면 비평이 왜 필요한 것일까. 지역 문화예술계의 모 인사는 “비평이 사라짐으로써 건강한 예술문화가 위협받고, 대중에 영합하는 지나친 상업주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모든 문화예술계에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2012년 올바른 비평문화 정착을 위해 대구문화재단에서 예술 담론 계간지 ‘대문’을 펴냈다. 그러나 그 역할을 ‘대문’이 제대로 해 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비평가는 현장 예술인들과 항상 긴장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니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로워지더라도 누군가는 비평을 해야 한다. 이안 허버트는 “비평가는 타성적 관람 태도를 버리고 공연의 제 요소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사유의 탐험을 해야 한다. 텍스트에 적혀 있는 동어반복적 전달내용이나 단순한 공연 상황을 묘사하는 보고서 같은 비평은 존재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존 듀이는 권위나 규칙이나 선례에 의해 최종적인 판단을 하는 ‘재단적 비평’이 비평의 개념을 오염시켜왔으며 한 예술가가 위대하다고 알려지면 그의 허접스러운 작품들까지도 모두 칭송하는 비평으로 인해 예술의 위선이 발생된다고 했다. 비평은 평가하거나 ‘사법적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듀이의 주장대로 눈여겨 볼 만한 역사적 사건이 있다. 평론가 로제 드 필은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아마추어였다. 그렇지만 아카데미 화가들과 논쟁을 통해 “회화에서는 윤곽보다 색채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그 주장을 받아들인 프랑스 미술은 이탈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유한 민족적 양식인 로코코를 확립했다. 아울러 이 새로운 비평문화는 그 뒤 프랑스를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구 비평문화도 예술 작품의 질이나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예술 작품에 대한 지각과 인식을 새롭게 하는 일종의 탐구 행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서로 토론할 수 있는 비평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대구문화재단도 이런 건전한 비평 문화가 형성되도록 닫혀 있는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 ‘외로운 손님’들을 초대했으면 좋겠다.김종백<교육연극연구소 메탁시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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