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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칼럼] 카카오의 탈(脫)권위

2024-04-29

신(新)기업문화, 영어 이름
직장과 일의 유쾌함으로
수평조직 카카오의 변신
별칭 폐지, 조직 기강 선택?
권위·자율의 접점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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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논설실장

오랜만에 만난 아들한테 다니는 회사 분위기를 전해 듣다 웃었다. 대표이사 사장을 칭할 때 별칭 '구찌'로 통한다나. 기업문화를 혁신한다는 소리를 귀따갑게 듣긴 했지만, 이처럼 난감한 상황을 체감하지는 못했다. 아들 회사처럼 서울 테헤란로 벤처기업들은 외국어 별칭을 쓰는 것이 유행처럼 됐단다. 이유는 쉽게 추정된다. 한국 사회 특유의 장유유서(長幼有序)와 상하 직급에 따른 권위적 수직 명령체계가 창의적 기업문화에 역행한다는 판단이다. 이른바 수평적 문화를 구축하자는 의도다. 상사를 대할 때 딱딱한 직책을 붙이는 순간, 자율적 소통이 힘드니 별칭으로 동등하게 불러보자는 취지다. 직장과 일의 유쾌함을 더한다나.

그러고 보니 히딩크의 전략이 생각난다. 히딩크 말마따나 "OO 형님, 이리 패스해 주십시오"라고 한다면 그게 격렬한 경기장에서 유용한 방식이 될까. 히딩크식 의사소통 개혁을 세세하게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지나친 서열 문화를 의아하게 여기고 이를 타개하려 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김대중 대통령도 비슷한 호칭 개혁을 한 인물이다. 기자들이 대통령을 어떻게 부르면 좋겠냐고 하니 한글 고유의 '님'을 붙여 '대통령님' 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이전까지는 대통령 각하( 閣下)란 극존칭이 통용됐다.

대한민국 네트워크 플랫폼의 대명사인 카카오는 조직 내 서양식 별칭 사용으로 유명하다. 창업자인 김범수는 '브라이언', 카카오 대표 정신아는 '시나'로, 카카오게임 한상우 대표는 '마이클'로 통한다. 물론 대외적으론 한글 이름으로 대변되지만, 사내에선 별칭이 대세란다. 이런 카카오가 결단을 내린 모양이다. '마이클' 한 대표가 최근 외국 이름 소통을 폐지하고, 한글 이름에 '님'을 붙이자고 했다. 앞서 김범수 창업자도 별칭 사용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카카오의 변신은 내부 조직이 어수선한 것과 연관돼 있어 보인다. 창업자가 계열사 주가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고, 카카오 전 대표는 성과급을 놓고 600억원대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런저런 연유의 내부 폭로도 터져 나왔다. 기업 기강이 허물어진 시발중 하나로 외국어 별칭을 지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모든 조직은 일정 수준의 권위(Authority)를 먹고 존재한다. 권위는 기강을 세운다. 군대 같은 극도의 위계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 못해 중구난방 계모임도 총무의 권위가 있어야 굴러간다. 없다면 곗돈조차 걷힐 리가 없다. 문제는 권위를 넘어 '권위주의' '장유유서'가 팽배한 한국사회의 관습이다. 예를 들면 검사 판사들의 기수문화는 특이하다. 회사도 몇 개월이라도 먼저 들어온 사람이 수십 년 뒤 퇴직할 때까지 앞서 직급을 단다. 능력과 창의는 승진의 변수에서 멀어져 왔다. '꼰대문화'를 지적하며 권위의 해체를 외치는 시도들이 끊임 없이 나온 배경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인자하고 착한 군주보다 무서운 군주가 낫다. 백성이 더 따를 것이다." 카카오가 무서운 내부 조직으로 변신하자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모든 게 지나치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자성일 게다. 조직의 기강과 위계질서, 그리고 자율·창의적 소통의 접점은 어딜까. 그건 결국 지도자, CEO의 태도와 통찰에 달려 있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건 현직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사안일 거란 상념으로 뻗어나간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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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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