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7(월)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남 광양 옥룡사지 동백숲

| 2019-03-15 07:43:22

온몸에 들러 붙은 먼지 씻어내는 만 그루 동백터널

옥룡사지 초입.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다랑이 논에는 어린 동백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사적 제407호 옥룡사지. 도선은 863년 이곳에 옥룡사를 짓고 입적할 때까지 35년을 머물렀다. 절은 1878년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
탑비전지. 2002년에 복원한 도선국사의 증성혜등탑과 통진대사의 보운탑.
운암사의 거대한 약사여래불이 동백나무 위로 솟아 있다.
동백숲 터널. 신라 말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지으면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진득한 먼지가 물엿처럼 흘러내리던 날이었다. 그 커다란 지리산마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꼼짝 않고 있었다. 그래도 남도의 봄꽃은 어김없이 피어나 있었고, 빛 많은 광양 땅에는 산자락마다, 모퉁이마다, 눈 닿는 곳마다 매화였다. 동백꽃은 피었을까. 동백나무 수천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는 옛 절터를 찾아 가는 길. 주차장 뒤편의 언덕에서, 마을의 밭에서 매화가 먼저 흰 얼굴들을 내밀고 있었다.

도선국사가 입적까지 35년간 머문 옥룡사
땅기운 보강위해 사찰 주변 심은 동백나무
노무현 前 대통령이 마셨다는 ‘소망의 샘’
절터 분청사기·순백자 등 많은 유물 출토

숲에 둘러싸여진 작고 포근한 ‘탑비전지’
94년 건물터·비석조각·도선 유골·관 발견
동백나무 위로 황금빛의 거대 약사여래불


◆만 그루 동백나무의 숲

광양 백운산(白雲山)의 지맥인 백계산(白鷄山) 남쪽에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말년을 보냈다는 옥룡사(玉龍寺) 터가 있다. 그는 절을 짓고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주변에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옥룡사 터까지는 700여m. 자그마한 마을 입구에 마련된 커다란 주차장에서부터 산으로 오른다. 비탈은 다랑이 논, 매화나무 밭이다. 나무들은 모두 고사된 듯하고, 밭을 내다보는 서너 채의 집들은 비워진 듯하다. 죽은 듯한 검은 매화나무 한 그루에 새 가지가 돋아나 꽃이 피어있고 근처에는 개발 예정지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바람이 많은 길이다.

조금 오르자 동백꽃 위에 앉아 책을 읽는 소년의 조형물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선의 길’이 언덕을 오르고 왼쪽으로는 조성 중인 듯한 산책로가 목책을 따라 멀어진다. 이제 다랑이 논에는 어린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먼 정면으로부터 짙은 초록의 숲이 천군만마처럼 육박해 온다. 7천, 혹은 만여 그루의 동백나무 숲. 이상하다. 바람이 사라졌다.

동백의 터널에 든다. 온 몸에 들러붙은 바람과 먼지가 씻긴다. 이곳의 동백은 3월 말에야 꽃이 피는 춘백(春栢)이다. 오늘 개화는 3할 정도다. 드물지만 충분하고 드물어 더욱 귀하다.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꽃말을 처음 지은이는 누구였을까. 길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숲의 우듬지가 펼쳐진다. 반짝이는 커다란 숲. 태양과 가까운 꽃들은 활짝 피어 그 빛에 묻혔다. 눈은 빛을 뚫고 그 붉은 것들을 보지만, 카메라는 태양을 이기지 못한다. 동백숲에 걸쳐진 절터의 축대가 보인다. 연둣빛 잔디가 송송 오르고 있다. 그 아래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셨다는 ‘소망의 샘’이 졸졸 소리를 낸다.

◆옥룡사지

도선국사는 신라 말의 선승으로 문성왕 3년인 841년 15세의 나이로 출가해 스님이 되었다. 스무살이 되던 해 곡성 동리산의 혜철스님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로부터 ‘말 없는 말(無說說)’ ‘법 없는 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37세 되던 863년에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용 9마리를 쫓아낸 후 연못을 메우고 옥룡사를 세웠다고 한다. 옥룡사는 고종 때인 1878년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

너른 땅은 휑하지만 더 없이 아늑하다. 몇 개의 초석이 드러나 있고 한쪽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기와 파편이 봉분처럼 쌓여 있다. 발굴조사에서 ‘옥룡사’ ‘성화십이년병신(成化十二年丙申)’ ‘만력십칠년기축(萬曆十七年己丑)’ ‘송치(松峙)’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고 분청사기, 순백자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절터는 위층만 조사되었기 때문에 대체로 조선시대의 건물터만 확인되었다. 17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각각의 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누군가 동백 꽃잎으로 하트를 만들어 놓았다. 가운데 놓인 꽃술 속에서 벌이 꼼지락거린다.

옥룡사지는 조롱박 형상이라 한다. 입구인 수구(水口)는 좁고 길은 뱀이 기어가는 듯한 사행로(蛇行路)라 생기가 빠져나가지 않는단다. 주산과 좌우 능선에는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병풍처럼 터를 감싸고 정면의 안산은 갑갑하지 않은 높이로 겹겹이 유정하다. 외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다. 도선은 승려로서보다는 음양풍수설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헌강왕 1년인 875년에 고려 태조 왕건의 출현을 예언했다.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이후 고려가 건국되고 그는 신격화 되었다. 도선은 이곳에서 산문을 나가지 않고 35년간을 머물렀고 효공왕 2년인 898년에 72세 나이로 입적했다. 그 뒤 통진대사(洞眞大師), 경보(慶甫), 지문(志文) 등이 머물면서 법맥을 이었다.

◆탑비전지와 운암사

옥룡사지에서 동쪽 능선을 넘는다. 동백숲에 둘러싸인 낮은 마루에 평상이 깔려 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늦은 점심을 즐기고 있다. 동백의 터널 길을 조금 내려가면 ‘탑비전지(塔碑殿址)’가 열린다. 동백나무에 둘러싸인 작고 포근한 공간, 도선국사의 ‘증성혜등탑(證聖蕙燈塔)’과 그의 수제자인 통진대사의 ‘보운탑(寶雲塔)’이 있는 곳이다. 탑비전은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 1994년부터 실시된 발굴조사에서 건물터와 비석 조각을 찾아냈고, 도선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관이 발견되었다. 도선의 업적을 기록한 탑비는 흔적조차 없었다고 한다. 현재의 부도와 비석은 2002년에 복원한 것이다. 탑비전 아래로 동백숲길이 이어진다. 동백나무 위로 황금빛의 거대한 약사여래불이 솟아 있다. 운암사다.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1150년경에 있었던 절집이라 한다. 현재의 운암사는 1993년 즈음에 지어졌다. 거대한 황금불상, 코끼리를 탄 부처님, 양식장 같은 연못과 그 가운데 앉아 있는 청동빛의 용왕신, 끊임없이 들려오는 목탁소리. 다시 동백 숲에 든다. 몇몇 사람들의 맑은 얼굴을 스친다. “이야! 멋진데!” “우리 남도에서 제일 크대!” 감흥은 세상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 방향으로 가다 칠원 분기점에서 10번 남해고속도로 진주 방향으로 간다. 광양IC에서 내려 우회전해 백운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가면 된다. 옥룡사지 입구에 큰 주차장과 안내소가 있다. 입장료, 주차료 모두 무료다. 동백꽃의 만개는 4월 초로 예상되며 2019년 4월6일부터 7일까지 옥룡사지 동백숲 일원에서 문화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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