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1(토)

[토요단상] 자유한국당의 급선무

| 2019-08-17 08:36:22

최병묵 정치평론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국내에서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은 조선일보를 공격했다. 조선일보 자매지 주간조선이 실었던 자신 관련 기사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오랜 협상 끝에 양측은 종전(終戰)에 합의했다. 노 후보는 그러나 조선일보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누구도 권위 있는 설명을 내놓을 순 없다. 선거 전략이 아니었을까 보고 있다. 그는 정치감각이 뛰어나다. 직관력이 특히 강하다. ‘있는 그대로’ 선거를 치를 경우 승산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거친 화법, 정책의 빈곤, 허약한 참모진,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소외감, 반미성향의 즉흥적 언행. 그의 정치적 주변 자산은 맞상대인 이회창 후보에 비교할 바 아니었다. 김대중정부에 의해 사주(社主)가 구속되는 상황까지 맞이한 조선, 동아일보로서는 이런 후보에 우호적일 리가 없다. 이를 간파한 노 후보가 택한 전략이 ‘언론 편가르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이 주도하는 ‘여론의 광장’에서 노 후보가 차지할 자유 영역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노 후보가 ‘조중동’ 프레임을 만들어내자 많은 다른 매체들은 반대편 입장에 섰다. 노 후보 입장에서 본다면 조중동 외에 많은 매체를 우군 또는 중립으로 확보한 셈이 됐다. 조중동의 노 후보 비판은 곧 ‘언론의 기득권 지키기’가 됐다.

필자는 1986년 신문사에 입사했다. 1988년에 한겨레신문이 창간했지만 현장 기자 사이의 갈등이란 찾아보기 어려웠다. 회사는 달라도 선배, 후배 대접하면서 어울렸다. 동아투위, 조선투위 멤버들이 주축이었지만 ‘훈련된 기자’로서의 공통점은 ‘투쟁성의 차이’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친여(親與) 매체냐 아니냐는 논쟁을 불러온 적도 별로 없었다.

이런 언론 환경은 노 후보의 등장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어찌됐건 노 후보가 당선됐다. 언론이 편이 갈려 으르렁거린 것도 그의 당선에 일조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언론이 본연의 사명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렸다면 그의 언행은 비판받을 대목이 적지 않았다. 이게 객관적인 평가다.

노 후보 사례를 꺼내든 이유는 현 자유한국당을 둘러싼 언론 환경이 ‘2002년보다 더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장 기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피부에 와닿는다. 그들은 대부분 20~30대다. 한국당의 메시지를 ‘훈장의 가르침’쯤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랜 공안검사 생활을 한 황교안 대표가 특히 그렇다. 한국당을 주로 취재하는 기자들조차 한국당에 대한 공감도, 이해도가 낮다. 그러니 사소한 농담성 대화가 막말로 둔갑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그냥 넘어갈 일도 한국당에선 문제가 된다. 이중잣대는 기자들이 피해야 할 제1의 덕목인데도 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방송의 편향성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주인 없는 방송들은 사실상 노조의 영향권에 편입됐다. 이 정부가 친노조인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여기에다 친민주당인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민언련→방송심의위로 이어지는 규제는 방송을 스스로 위축되게 만들고 있다.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당은 언론 환경의 구조적 불리를 극복하는 데서부터 ‘공정한 운동장’ 만들기를 시도해야 한다. 기자들과의 공감대 확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과제다. 전신인 신한국당, 한나라당 때까지만 해도 이 부분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런 노력이 사라졌다. 이명박, 박근혜정부의 연이은 집권이 나태, 오만을 불러온 것은 아닌지 샅샅이 점검할 일이다.

방송의 편파성은 제도적 접근도 필요한 부분이다. 방송은 정부로부터 주기적으로 재허가를 받아야 한다. 방송이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이 제도가 방송의 공정성을 높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수십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미 입증됐다. 실효성 없는 재허가 제도보다는 경제적 제재 등의 대안을 모색할 때다. 아예 정부 개입 소지를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가 공정성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 기울어진 채로 게임을 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은 없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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