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40317010002153

영남일보TV

박재율 전 경북의대 동창회장 "경북의대 인력 우수해…정책 지원 더하면 옛 명성 되찾을 것"

2024-03-19
1박재율.jpg
박재율 전 경북의대 동창회장이 지난 4년간 희로애락을 털어 놓으며, 앞날의 발전을 기원했다.경북의대 동창회 제공
경북의대는 단순히 대구·경북 지역 의대가 아니라 한국 의료의 큰 산맥이다. 처음 대구의학강습소로 시작해 대구의학전문학교·대구의대를 거쳐 현 경북의대로 바뀌었다. 이러한 교명의 변천사가 말해주듯 경북의대는 한국의 굴곡진 역사만큼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했다. 시작은 미미할지 모르나 이젠 선진국 의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면모를 갖췄다.

2020년 취임해 4년간 경북의대 동창회장을 지낸 박재율 중앙이비인후과의원 원장은 지난해 10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특히 그는 애초 계획했던 △역사적 성취와 전통 경축 △한 세기 학문적 발전과 연구 업적 기리기 △지역사회와 국가적 의료 분야에 미친 영향 강조 △미래 지향적 비전을 제시하고 학교의 발전을 위한 계획 수립 등을 완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기 4년 마친 소회는.

"처음 2020년 취임할 때는 코로나 사태가 막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이 신종 전염병에 대한 막연하고 엄청난 두려움이 퍼지던 시기였다. 가장 먼저 공포에 주눅 들지 말자는 글로 시민을 위로했고, 마침 많은 분이 큰 위안이 돼 고맙단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로도 지속되는 코로나로 대면 활동이 불가능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유튜브 활동과 화상 회의 등을 통해 동문과 교류했다. 2022년부터 조금씩 대면 활동이 허용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개교 100주년 행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100주년 행사를 처음 준비할 때 솔직히 걱정이 많았다. 큰 행사는 처음이다. 그래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과연 최종 목표를 무엇으로 삼아야 할지 막막했다. 앞 사람 발자취가 없는 눈 덮인 산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면 정상으로 이르는지, 행여 이 길이 낭떠러지로 향하는 길은 아닌지 솔직히 두려움도 많았다. 100년이란 단어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보니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기대보다 훨씬 많은 성금과 후원이 이어졌다. 모금은 처음 목표치 2배 이상인 50억원 가까이 모였다. 제일 먼저 원로 선배님들이 선제적으로 기금을 모아주셨고, 북미주 선배님들은 대부분 은퇴한 나이이신데도 노후 자금을 털어 무려 60만달러를 보내주셨다. 8억원 가까이 되는 거액이다. 이에 뒤질세라 국내 동문 선후배도 예상외 과분한 금액을 기부했다. 한 선배님에게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보내셨냐고 물어보니 '경북의대 덕분에 지금까지 아들·딸 잘 키우고 의사로서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는데 모교 100세 생일에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보냈다. 오히려 더 못 보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참으로 마음이 숙연해지는 말씀이다. 더욱더 100주년 행사를 잘 치러야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지난해 9월2일 행사장을 가득 메운 100주년 기념식과 동문의 밤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순간을 함께한 저로선 평생의 큰 영광이다. 지난 4년 동창회장 재임 시기는 인생 최고의 잊지 못할 시간이었고, 9천명 이상의 경북의대 동문을 대표해 일할 수 있어 명예로웠다."


지난해 100주년 행사 성공적 개최
코로나 시기 취임해 비대면 교류
대면 허용되며 100주년 행사 준비

목표치보다 훨씬 많은 50억 모금
먼저 기금을 모은 건 원로 선배들
북미주·국내 선후배 기부 뒤따라

지난 4년 인생서 잊지 못할 시간
9천명 넘는 동문 대표해 명예로워
부족함을 일깨워 준 성찰의 시기



▶100주년 행사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점은.

"모교 교정에 전몰 학우비가 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앞뒤 재보지도 않고, 전쟁에 참전하면 어찌 될 것인지 뻔히 알면서 학업을 포기하고 학도병으로 자원해 참전했다가 전사한 의대 선배들이 많았다. 인척을 찾아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기로 했고, 지난해 9월2일 거행했다. 수여식에서 전몰 선배 자제분이 하신 말씀에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아버지가 전사하셨을 때 전 돌배기 아기였습니다. 그 아기가 이제 칠십이 훌쩍 넘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아버지를 잊지 않고 오늘 이렇게 졸업장을 줘 너무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이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실까요'라고 했다. 대다수 동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가 전몰학우 명예 졸업장 수여식이었다고 했다."

▶현재 명성은 과거보단 다소 못하다.

"저희가 의대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세브란스의대 가려고 한다면 경북의대를 가지 거긴 왜 가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이후 수도권 집중화와 서울 일변도 정책으로 경북의대도 과거보다 정말 못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인력 우수성은 지금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정책과 자금 지원이 이뤄지고 우리 구성원들의 각고 노력이 더해진다면 언제라도 과거 그 이상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도 지방의대가 더 우수한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처음에는 그동안 모교와 동창회에서 받기만 한 사랑과 은혜를 1만분의 일이라도 갚아 보자는 마음으로 동창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면 지난 4년은 오히려 더 많이 받고 또 한 번 더 큰 은혜를 입은 시간이었다. 부족한 저를 일깨운 성찰의 시기이기도 했다. 봉사한 게 아니라 도리어 봉사 받은 셈이다. 큰일을 도모할 수 있게 해준 동문과 시민들께 고맙단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일을 함께 해낼 수 있었다. 어느 선배님이 제게 동창회장이 영광의 자리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게 된다고 했다. 지나고 보니 너무나 정확한 지적이었다. 임기는 끝났지만 동창회장 재임 동안 진 마음의 큰 빚은 어떤 방식으로든 모교와 사회에 조금씩이라도 갚도록 하겠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강승규 기자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
기사 전체보기
기자 이미지

이윤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