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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14] 영양 오무마을

2003-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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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는 계곡을 따라 흐른다. 바람은 냉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영양군내 대부분 하천들은 반변천 지류로 낙동강으로 흐른다. 그러나 유독 장수포천 만은 북동쪽으로 길을 내 불영계곡을 거쳐 울진 왕피천과 합류한다.

왕피에서 일어난 바람은 수비면 수하리에 이르면 더욱 드세진다.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고추따기에 바쁜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가볍다.

여름이 익는 소릴 들으며 오무마을을 찾아간다. 오무까지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버스는 송방에서 멈춘다. 지난해 태풍때 허리가 잘린 길이 한창 새롭게 단장되고 있다. 오무로 가려면 반딧불이공원 심천에서 급조된 계곡길을 따라 2㎞ 더 내려가야 한다. 수비면소재지에서는 50여길이다. 길이 나기 전에는 면 직원들이 오무까지 출장가려면 이틀씩이나 걸렸다고 한다.

송방에서 오무까지 내려오는 동안 바짓부리를 서너차례 걷어 올린다. 길이 없는 오무는 장마철이면 산 속의 섬마을이 된다. 면사무소에서 도랑에 흄관이라도 묻어 놓은 덕택에 피서객들은 오무까지 내려와 여름사냥을 즐긴다. 아이들은 개헤엄치고 어른들도 덩달아 동심으로 돌아간다.

은어, 피라미, 꺽지 등의 무리가 물 속에서 장관이다. 사발무지에 잡힌 고기들은 매운탕이 돼 피서객들의 입맛을 돋운다. 계곡으로 내려갈수록 바윗돌이 윤기가 난다. 흐르는 물에 몸통의 때를 말끔히 닦아낸 탓이다.

수십구비를 돌아 오무마을에 도착했다. 독산을 둘러싸고 경사를 이루는 마을에 8가구가 흩어져 있다.

‘오무’라는 말은 우묵하다는 뜻. 이름처럼 오무에는 예부터 골이 깊고 고기가 많았다. 마을 주변 산에는 오동나무가 많아 ‘오산(梧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마을에는 ‘거무방우’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 굴이 있어 곰이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곰’이란 발음이 약해지면서 ‘오무’로 변해 이 마을 이름이 오무가 되었다는 속설도 있다.

장수포천이 길을 막는 바람에 오무의 자연은 그대로 천연이다. 마을 앞에 있는 산은 홀로 있다고 해서 ‘독산’이라 불린다. 사람들은 독산을 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여긴다.

오무는 본래 수하리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공수골, 깨밭골서본동, 내앞, 뿔밭, 새터, 솔비, 오무, 지푸내 등 여러 자연마을이 됐다. 그 중 오무마을이 최고의 오지다.

오무에는 30년 전 40여가구가 있었다. 그때는 모두 굴피집이었는데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함석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됐다.

“마을이랄 게 뭐 있어?”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배상복씨(72)가 웃으며 말을 건넨다. 입향시조가 300여년 전 난리를 피해 들어왔다. 덩굴을 걷어내고 땅을 파니 좋은 흙이 나와 명당으로 알고 지금까지 3대를 이어 살고 있다고 배씨는 말했다. 일곱집이 배씨이고 박씨가 한집이다. 배씨들은 사촌, 오촌 멀게는 십촌이다. 아랫마을에 살고 있는 박용덕씨(68)네는 그래서 왠지 모르게 외롭다고 한다. 그래도 박씨는 배씨의 외손이다.

독산에는 입향시조의 묘소가 있어 후손들이 300여년을 내려오면서 제사를 모신다.

그는 “감나무가 있는 곳은 모두가 집터였다”고 손가락으로 이곳 저곳을 가리켰다. 오무에는 감나무가 지천에 널렸다.

오무 사람들은 담배·고추·천궁 농사를 짓는다. 토질이 비옥해 밭농사는 매년 풍년이었는데 올해는 채소값이 떨어져 농사를 망친 사람도 있다.

“장마와 폭설 등 기상이변이 심해 이곳 생활이 어려워 떠나야 한다고 마음먹으면서도 가진 것 없는 처지로 어쩔 수 있나. 죽을 때까지 가꿔온 텃밭에서 농사나 짓는거지. 그렇다고 누가 우리네 입장을 알아주기나 하나….” 박용덕씨는 교통불편으로 생필품과 농필품 구입이 어렵다고 하소연이다. 차라리 장수포천댐이 건설돼 보상금을 받아 마을을 떠났으면 하는 눈치다.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올 담배농사가 그런대로 잘 됐다며 박씨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북부지역개발촉진지구인가 뭔가 하며 읍내와 왕피리간 도로를 닦더니 댐을 막는다며 몇년째 중단됐지.” 열아홉에 시집온 박씨의 부인 김씨(60)는 길이 없어 살아온 고생담을 걸쭉한 입담으로 이야기했다. 송방에서 오무까지는 산기슭으로 소로(小路)가 나 있어 10여년 전까지 등짐을 지고 다녔다. 요즘은 힘센 트럭이 하천을 따라 다니지만 비가 오면 길이 끊겨 이마저 어려울 때가 많단다.

읍내에서 고추값 6천원일 때도 이 곳에서는 5천원에 팔린다. 잎담배 판매를 낼 때도 수송비가 많이 들어 이중고를 겪는다. 마을 사람들은 길만 난다면야 물 맑고 공기 좋은 오무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일이 세상 부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마을에는 100수를 넘긴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숨을 거둘 때까지 병원 신세를 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환자가 있더라도 길이 없어 병원행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이다. 지금도 일흔을 넘긴 노인들이 마을에서는 청년이다. 몇집 안되지만 경운기와 트랙터까지 구입해 농사를 짓고 있다. 집이래야 볼품 없는 초가에 슬레이트만 올려 놓았을 뿐이고 부엌에는 가마솥이 걸렸다. 소도 한지붕 밑에서 함께 살아간다.

인기척에 배재욱씨(66)가 맨발로 마당에 나온다. 여름휴가차 찾아왔던 딸부부와 손녀들이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며 서운해 한다. 좀더 있었으면 하는 눈치다.

담배농사로 자식 모두 출가시켰다는 배씨는 20대에는 곶감을 수비 장에 내다팔아 용돈을 보탰다.

독산이 숨겨주는 마을, 피난처로 이곳만한 곳이 없는 듯했다. 6·25때 인민군이 산을 따라 내려왔을 때 15세이던 배씨는 “인민군이 신기해 따라다니며 구경했다”고 웃는다.

박옥녀씨(68) 댁에는 7남매가 찾아왔다. 출가한 딸들과 사위들이 여름휴가차 온 것이다.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지켜보던 박씨는 “영감이 무엇이 바빠 그리 빨리 갔나”하며 이태전에 돌아간 남편을 애석해 했다. 혼자 살고 있는 박씨에게는 이 며칠이 1년중 가장 행복한 날 같아 보였다.

오무마을을 굽이흐르는 장수포천의 물줄기는 가지각색의 모양의 바위들을 만들어냈다. 메기, 꺽지, 뱀장어, 은어 등 각종 민물어류의 천국이다.

여름철만 되면 울진지역에서 꺽지, 뱀장어, 은어를 잡으려는 많은 조사들이 찾아와 낚시를 즐긴다. 하천 주변에는 산딸기, 머루, 다래넝쿨이 우거져 먹거리가 지천에 가득하다. 농사일에 바쁜 틈을 타 주민들은 봄에는 산나물를 채취해 팔고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채취한다.

300년전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처음으로 찾아왔던 오무마을. 몇 안되는 주민들은 조상들이 그래왔듯이 욕심없이 고향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영양지역 관광 명소
<>영양일월산=일월산(1천219m)은 산세가 웅장하며, 정상인 일자봉에서는국내에서 해와 달 뜨는 광경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다. 해와 달의 정기가 합하여 음양의 조화를 갖춘 신성시되는 일월산은 태백산 줄기 낙동정맥의 마지막 봉우리. 그래서 백두대간의 정기가 함축된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고 있다. 또한 일월산은 한국 무속신앙의 발상지로 일월산 정상의 황씨부인당에는 전국 무속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전통신앙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일월산 정기를 받기 위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일월산 심산유곡에서 자생하고 있는 산나물(고사리, 참나물, 금죽, 나물취 등)은 맛과 향이 뛰어나 옛날 궁중에 진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남이포와 선바위=반변천의 긴 물줄기가 입암면 연당리에 이르러 깎아 세운 듯한 석벽을 끼고 흐르고, 같은 산 서편 절벽을 끼고 흐르는 청계천이 합류하여 큰 강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남이포이다. 절벽과 강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바위를 깎아 세워놓은 것 같은 석순이 우뚝 솟아 있는 석순을 선바위라 부른다. 남이포의 절벽과 선바위가 마주보는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강변에는 새알같이 깨끗한 조약돌과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어 한폭의 아름다운 강촌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선녀탕과 용화계곡=선녀탕은 일월면 용화리 일월산 밑에 있다. 이 선녀탕 주변은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희귀한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화강암으로 된 골짜기에는 맑은 샘물이 흐른다. 이 샘물들이 모여 반변천의 원류가 된다.

계곡내 선녀탕은 물이 맑고 부드러워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 온다.

<>곡강과 척금대=영양읍에서 북으로 2㎞지점 반변천 강가에 있다. 일월산에서 시작된 반변천이 남으로 흘러오다 홍림산 줄기에 부딪혀 물길을 거꾸로 돌려 곡강을 만들었다. 물길에 의해 잘려나간 깎아지른 듯한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강과 맞닿은 곳의 평평한 석대가 아름다운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수하계곡=수하계곡은 영양군 동북편의 수비면 수하리에 있다. 장수포천의 맑은 물이 소나무가 무성한 수하계곡을 굽이쳐 흐르면서 화강암과 조화를 이루며 30리 수하계곡을 만들었다.

이밖에 영양군내 자연발생유원지로는 삼의계곡, 본신계곡이 있고 문화유적지로는 영양서석지, 봉감모전 5층석탑 등이 있다. 또 문학테마관광지로는 주실마을과 조지훈생가, 감천마을과 오일도생가, 두들마을과 이문열 광산문학관 등이 있다.

/배운철기자 baeu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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