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50501.010350823090001

영남일보TV

집 문을 열자 꽃향기 가득…화초·분재 많아 작은 식물원 느낌

2015-05-01
20150501
카페 빅 핸즈는 HIV/AIDS 감염인을 위해 설립된 공공성을 띤 카페다. 여운이 사진 속 커피빈을 바라보고 있다.

■ 감염인 집 방문해보니

식물이 유일한 말동무
질병에 노출될 위험 커
동물은 키우지 않아요

경제적으로 궁핍해
라면으로 끼니 때워
파나 계란은 못넣어
다 돈이니까요

1997년 치료약 개발된 후
에이즈도 만성질환일뿐
냉소적 시선 거둬줬으면…

지난달 25일 오전, 카페 빅핸즈에서 여운과 감염인 친구 김홍렬씨(가명·52)를 만났다.

여운과 김씨는 아침 일찍 칠성시장에 들러 ‘봄화분’ 10여개를 장만해 분갈이를 한 후 빅핸즈에 갖다놓았다. 오후에는 대구시 남구에 있는 여운의 집을 찾았다. 집은 4층 빌라였는데, 여운은 9평(29㎡) 원룸에서 생활했다. 여운과 김씨는 4층 계단을 힘겹게 올라갔다. 대문을 열자 꽃 향기가 코를 기분 좋게 간질였다.

“아레카야, 별 일 없었지. 이제 새순이 많이 올라왔네. 스토키야, 너는 분갈이를 하고 나니 훨씬 잘 자라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니.”

여운이 집안에 있는 화초와 분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고독한 삶에서 마음을 주고받는 유일한 친구가 식물이란다. 방은 좁지만 작은 식물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아늑하다.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식물과 동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옆집 사람은 제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몰라요. 사실 기자님도 유일하게 제 집을 찾은 일반인입니다.”

그가 커피를 끓이는 동안 집안을 살폈다. 책꽂이에는 추리소설가 김성종의 소설이 가득 꽂혀 있었다.

“김성종씨 팬이에요. 추리소설은 결말이 재미있어요. 늘 끝은 제가 예측한 대로 결론이 나지요. 하하하.”

여운은 하루에 커피를 5~6잔 마신다.

“커피를 마시면 마음이 안정이 돼요. 커피를 마시면서 식물과 대화를 합니다. 불을 끄고 잘 때에도 화초에게 잘 자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다른 감염인 친구 집에 있는 화초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말라죽었다는데 우리 집 화초는 3년이 돼도 이렇게 싱싱하잖아요. 커피는 식물친구와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죠. 하지만 동물은 키울 수 없답니다.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많아서죠. 감기나 폐렴 등 가벼운 병이 저희에겐 큰 병이지요.”

그가 가장 힘들어하는 건 사람의 편견과 고독, 경제적 궁핍이다.

“언론에선 소나무재선충병이나 참나무시들음병을 아무 생각 없이 소나무에이즈니, 참나무에이즈니 하더군요.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광우병이란 말도 정말 듣기 싫어요. 저희들은 그 말을 들으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질병을 퍼뜨립니까. 제발 기자님은 그런 말을 쓰지 마십시오. 에이즈는 ‘아, 이제 다 살았다’가 아니고 ‘아, 이제 살 수 있다’로 바뀐 지가 오래예요. 1997년 치료약이 개발되고부터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일 뿐입니다. 목욕탕에 같이 가도, 식사를 같이 해도 옮기지 않는데 참 억울합니다.”

호모, 변태라는 말도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사회의 냉소적인 시선이 가장 괴롭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들어요. 올해부터 대구시 남구와 수성구에서 건강지원금 20만원을 끊었어요. 월 50만원이 채 안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데 임차료, 수도·전기요금을 내고 나면 절반이 남아요. 그걸 갖고 교통비, 식료비 등 생활비로 충당해야 하는데 국수를 말아도 간장에 비벼먹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전직 요리사인데 재료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 돼야 요리를 해먹죠. 그래도 노숙자보단 행복하지 않나 위안을 합니다.”

여운과 김씨는 외출을 하고 싶어도 돈이 들기에 하루 종일 집안에 있는 게 남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는 게 유일한 낙이다.

“전 라면을 매일 먹어요. 그런데 파나 계란을 못 넣어요. 다 돈이니깐. 교회에서 매달 10만원을 주는데 교회에 가는 게 그나마 기쁨입니다.”

여운은 오랫동안 수기를 쓰다 수년전 불 태워 없애고 지난해부터 다시 수기를 쓰다 올해 건강보조금이 끊긴 뒤부터 의욕을 잃고 펜을 놓았다.

“수기를 ‘야화’로 했다가 ‘달맞이꽃’으로 바꿨는데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요.”

기자가 그래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자 그렇게 하겠단다.

여운은 돈을 아껴 여운복지기금을 만들어 동료감염인을 돕고 있다. 취재가 끝난 뒤 여운은 기자에게 취미교실에서 직접 만든 것이라며 작은 수제 비누를 선물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