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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정치칼럼] ‘풍류정객 JP’의 추억

2018-06-25

30년전 처음 취재한 김종필
공과에 대한 평가 다르지만
품격있는 정치언어 구사와
진영논리 초월한 유연성은
지금 정치인들과 차원달라

[송국건정치칼럼] ‘풍류정객 JP’의 추억

1988년 기자생활을 시작한 필자의 첫 출입처는 신민주공화당이었는데, 그때 당 총재가 JP(김종필)였다. 당시 다른 언론사의 선배 출입기자들은 “JP를 담당하려면 옥편과 고사성어사전 정도는 꼭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태우 정권에서 야당을 3등분했던 YS(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DJ(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취재 방식과 비교하면서였다. 나중에 공감했는데, YS는 말이 직설적이어서 신문기사의 제목을 뽑기 쉽다. 가령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식이다. DJ는 워낙 박식하고 논리가 탄탄해서 말하는 걸 쭉 받아 적으면 그대로 기사 문장이 됐다. JP는 풍류를 즐기는 정객답게 고사성어를 섞어가며 멋진 표현으로 그 시대의 정치상황을 묘사하고 자신의 심경을 내비쳤다.

“홍곡의 대지를 연작이지만 어찌 촌탁하지 못하겠느냐.” 1990년대 초반 민정·민주·공화 3당 통합으로 탄생한 YS 정권 시절 집권당인 민자당 대표이던 JP가 이 말을 했을 때 기자들은 무슨 의미인지 잘 몰라 옥편을 뒤져야 했다. ‘홍곡(鴻鵠)’은 큰 기러기와 고니다. 높고 큰 뜻을 품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연작(燕雀)’은 작은 제비와 참새다. ‘촌탁(忖度)’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뜻이다. 당시 문민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전격 단행하자 JP는 대통령이던 YS를 ‘홍곡’에 자신을 ‘연작’에 비유하며 몸을 낮췄다. 이런 ‘2인자 처세술’은 앞서 박정희 정권에 몸담았을 때나, 훗날 DJP 공동정부 시절에도 그대로 발휘됐다.

JP의 그런 처세술을 추억하는 건 아니다. 시각에 따라 인물평가가 극과 극으로 치닫는 건 JP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다만, 30년 전에 JP를 처음 본 뒤 그의 정치행로를 쭉 취재해온 입장에서 두 갈래로 추억하고 싶은 점이 있다. 지금의 정치인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하나는 그의 절제되고 품격 있는 정치언어 구사다. 정치적 논쟁거리나 반대자들의 공격에 대한 반론도 매우 부드러웠다. “5·16이 형님이고 5·17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1987년 대선후보 토론회)이라거나 “지기 전에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2004년 17대 총선 때 ‘지는 해’라는 비판에)는 식이다. 공동정부 시절 DJ와 내각제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그러면 우리도 성질 있으니까 ‘몽니’ 부리는 거야” 정도가 심한 말에 속했다. 감정조절을 못 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노골적인 막말을 해대는 지금의 정치인과는 다르지 않은가.

다른 하나의 추억거리는 정치적 유연성이다. 성향과 이념이 달랐던 YS, DJ와의 합작 역시 평가는 엇갈린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이종(異種)결합도 서슴지 않으면서 헌정사의 고비마다 성과물을 일궈낸 정치력은 인정해야 한다. 상대를 무시하고 혐오하는 진영논리에 빠져 악순환을 거듭하는 지금 정치인 중 누가 그런 도전,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겠나. 필자는 ‘3김 정치의 폐단’이란 말을 기자생활 시작할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다. 3김 정치시대가 끝나면 훌륭한 정치문화가 조성될 걸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3김 정치뿐 아니라 3김의 자연수명마저 끝난 지금 정치가 과연 그때보다 국민생활을 보듬고 신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는가. JP의 마지막 정치명언은 2015년 부인 박영옥 여사 빈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했던 말이다. “정치는 잘하면 국민이 그 열매를 따 먹지만 정치인 본인에게는 허업(虛業)이다. 국민들에게 나눠주는 게 정치인의 희생정신이지 정치인이 열매를 따 먹겠다면 교도소밖에 갈 데가 없다.” 지금 정치인들이 이 말의 깊은 뜻이나 알까.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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