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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그림편지] 정익현 작 ‘메모리’

2019-06-07

차가운 ‘블루’, 기쁨·환희 ‘골드’와 색다른 조화…묘한 기운이 넘치는 에너지

[김수영의 그림편지] 정익현 작 ‘메모리’

작품에 앞서 화가의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몇 년 전 잠시 본 후 ‘김수영의 그림편지’를 쓰기 위해 두 번째 만남을 가진 날, 기자 앞에는 너무나 여성스러운 여성이 앉아있었습니다. 하얀 피부에 약간 처진 눈, 조금 웨이브가 들어간 긴 단발의 그 여성은 조용한 말투로 반가움을 표시합니다. 그 모습에서 참 순하고 맑아보이는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천생 여자 같은 그 화가는 외모와는 달리 아주 힘있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차가움을 주는 파랑을 중심에 둔 작업입니다. 검은빛이 도는 푸른 아크릴물감의 굵은 붓질에서 절로 에너지가 솟아나는 듯합니다. 부드러운 화가의 모습만으로는 잘 연결이 안 되는 그림입니다. 작품과 작가가 닮기 마련인데 간혹 이 화가처럼 전혀 다른 작품을 마주할 때 기자는 색다른 감흥을 느낍니다.

한국화가 정익현. 그래서 그의 작업방식이 궁금해집니다. 그는 2015년부터 블루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블루를 보면 가슴이 뛴다”고 말하는 그는 대학원 졸업 후 7~8년간 그림을 접어둔 공백기가 있었습니다.

“대학원을 마치자마자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잇따라 낳으면서 작업할 시간을 잃어버렸지요. 짬 나는 대로 붓을 쥐어보려 했지만 늘 부족한 시간에 허덕여야 했고 집중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대학에서 색채학 강의를 한 게 숨통을 트이게 했지요.”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분명 행복한 일이었지만 가슴 한 편에 늘 답답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를 “해야 할 숙제가 있는데 그 숙제를 못한 느낌”이라고 합니다. 가슴이 답답할 때 하늘을 쳐다봤는데 그 하늘이 그를 그렇게 설레게 했다고 합니다. 하늘을 보면서 언젠가는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찾았답니다.

2013년 가족과 떠난 지중해 여행이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맑고 파란 바다의 색깔에 푹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 같은 느낌의 파랑을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하게 된 그는 대학 시절 은사님의 조언에 더 큰 힘을 얻어 다시 붓을 들 용기를 얻었고 화가로서의 재기를 시도했습니다. 2016년 재기 후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렉서스 서울본사에서 작품을 구매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후 화가로서 그의 삶은 순조로웠습니다. 작품에 대한 반응이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 싱가포르 아트페어에 처음 나가서 호응을 얻었는데 오는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같이 나가자는 화랑이 있어 마음이 한껏 들떠있다고 합니다. 불러주는 곳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는 겸손의 말도 전합니다. 물론 이 같은 반응은 그의 치열한 작업정신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파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저만의 표현기법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다각도로 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것이 아크릴물감에 먹을 섞는 방법이었지요. 한국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늘 먹을 가까이 했던터라 이런 접목이 가능했는데 깊이감이 느껴지는 파랑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김수영의 그림편지] 정익현 작 ‘메모리’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정 화가의 파랑이 유화물감의 파랑과는 다른 이유를 그제서야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유화물감처럼 탁하지도 않고 아크릴물감처럼 가볍지도 않은, 맑으면서도 심연의 깊이감이 느껴지는 그만의 파랑입니다. 먹으로 인해 자칫 무거워지고 가라앉을 수 있는 색조를 그는 붓의 강한 터치감으로 살려내는 감각까지 보여줍니다. 한국수묵화의 특징인 일필휘지의 기운생동을 담아낸 것입니다. 이런 터치감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작가 스스로 힐링의 시간을 가진다는데 작가의 긍정적 에너지가 감상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가 특히 아낀다는 ‘메모리’라는 작품은 파랑과 골드의 대비가 두드러집니다. 파랑 다음으로 그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색깔이 골드입니다. 파랑이 주는 차분함을 중화시켜주는 색깔로 그는 골드를 선택했습니다. 골드의 색깔 상징이 환희, 기쁨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아서 택한 이유도 있지만 색깔 자체가 주는 화려한 이미지가 끌렸다고 합니다. 이성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의 파랑과 대척점에 있는 것 같은 골드는 그의 작품에서 파랑과 묘한 조화로움을 선사합니다. 그와 이야기를 꽤 오랜 시간 나누다보니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작가와 작품의 이미지가 파랑과 골드처럼 색다른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화가의 고운 얼굴에서 묘한 기운생동의 에너지가 전해져옵니다. 아마 그것은 그림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정익현 화가는 대구예술대 한국화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을 공부했다. 대구, 프랑스 파리 등에서 5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프랑스평론가상, 스웨덴평론가상 등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렉서스코리아, 경북자유경제구역청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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