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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로에서] ‘무지의 장막’에 들어가라

2019-10-16

윤리·법 뛰어넘는 진영논리
가치관 상이한 공존의 나라
국회, 분열 해소보다 부채질
과반이냐 합의냐 충돌 빈번
무지의 장막서 대책 도출을

20191016
권혁식 서울본부 취재부장

많은 국민과 야당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아온 조국 법무부장관이 14일 임명 35일만에 결국 물러났다. 8월9일 장관 지명 이후 두달 넘게 지속된 ‘조국 정국’은 우리 사회에 윤리적·법적 기준을 뛰어넘는 거대한 ‘진영 논리’가 버티고 있음을 보여줬고, 그에 대한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는 숙제도 남겼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11일 조 장관 거취에 대한 국민인식을 조사해 14일 공개한 결과를 보면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이 55.9%,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40.5%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그간 조 장관과 그의 가족을 둘러싼 비리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조 장관 측의 증거인멸과 거짓말 가능성에다 동양대 총장 폭로와 검찰 수사 내용까지 겹쳐 조 장관의 부적격 사유는 차고도 넘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를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보고 ‘조국 수호’ 촛불집회에 동참하는 등 사퇴를 반대하는 국민이 4할이나 됐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처럼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서로 다른, 이질적인 국민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다. 같은 교과서로 초·중·고교 12년을 배웠지만, 이후 지식습득과 개인 환경 및 입장 차이로 이렇게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진보 진영이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위기감에서 전략적으로 조 장관을 떠받쳤다 하더라도 이 땅에 이해가 상충하는 두 개의 진영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도 각자 ‘진영 논리’로 무장한 채 주요 이슈 때마다 상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며 첨예하게 맞서온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선진국 문턱에까지 와서도 고질병처럼 도지는 분열의 작동구조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차기 대선에서 설사 정권이 바뀐다 하더라도 대결과 반목의 부메랑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 분열을 해소할 책임은 당연히 국회도 짊어지고 있지만, 국회가 오히려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력을 발휘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하나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빈번한 충돌지점은 ‘의결방식’이다. 민감한 법안 처리를 앞두고 ‘여야 합의가 필요하냐’‘과반이면 충분하냐’를 놓고 싸운다. 내용에 대한 거부감이 형식을 둘러싼 다툼으로 불거지는 것이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도 같은 선상에 있다. 헌법이 정한 의결정족수는 ‘과반 찬성’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소수 측이 ‘합의 의결’을 주장하며 맞서기 때문에 갈등이 빚어진다. 그래서 타협안으로 나온 게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상 ‘5분의 3 이상 의결’이다. 이마저도 야당이 ‘선거법 개정은 여야 합의가 관행’이라며 패스트트랙 법안을 저지하면서 훼손됐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는 ‘무지의 장막’ 개념을 제시했다. 자신의 특성과 지위를 알 수 없는 무지의 상태에서 서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합의를 이루면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했다.

여야는 내년 총선을 6개월 앞둔 지금, 승패를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지의 장막 속에서 결과에 상관 없이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는 대원칙을 협상해 보는 건 어떤가. 입장차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고 생각하면 ‘합의의결’을, 아무리 생각이 달라도 과반이 찬성하면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 ‘과반 의결’을, 이도저도 아니면 ‘5분의 3’처럼 중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정치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건강에 해롭다’는 한 미국 대학의 연구결과가 보도된 적이 있다. 내년 총선 이후에도 국민 발걸음을 광장으로 내몰아 국민 스트레스를 높이는 촉매제가 되길 원치 않는다면 여야는 무지의 장막이 사라지기 전에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권혁식 서울본부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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