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항쟁 진압군이 본 참상, 죄책감, 고백…30년 시간을 넘어서 말한다
5·18 시민군 초점 '칸트씨의 발표회'
반대편 선 김의기에게 시선 '황무지'
김태영 감독 연출 1987·1988년 작품
개봉하자마자 필름 압수·상영 어려움
민주화운동 40주년, 2개 작품 특별전
영상자료원 온라인 사이트서도 공개
김태영 감독이 연출한 '칸트씨의 발표회(1987)' 스틸 컷(맨 왼쪽)과 '황무지(1988)' 스틸 컷. |
광주 5·18 당시 시민군에 참여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칸트씨의 발표회'였다면 '황무지'(1988)는 바로 시민군의 반대편에 서 있던 진압군에게 시선을 맞춘다. 1980년 5월 탈영병 김의기는 6개월째 도망다니던 중 군산의 기지촌 술집에서 일하게 된다. 술집에는 미군을 상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주인공 의기는 파멸하는 주변의 비참한 삶들을 지켜보며 광주에서 학살한 소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는 망월동 묘지에서 분신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당시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뒤 1980년 5월30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 김의기 열사에게 빌렸다. 김의기 열사를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지만, 개봉하자마자 16㎜ 필름을 압수당했고 이후에도 제대로 상영되기 어려웠다. 또한 영화는 1967년 신동엽 시인이 발표한 시 '껍데기는 가라'가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다.
5·18 시민군 초점 '칸트씨의 발표회'
반대편 선 김의기에게 시선 '황무지'
김태영 감독 연출 1987·1988년 작품
개봉하자마자 필름 압수·상영 어려움
민주화운동 40주년, 2개 작품 특별전
영상자료원 온라인 사이트서도 공개
'황무지' 촬영현장의 김태영 감독 모습. |
'칸트씨의 발표회'에 이어 '황무지'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조선묵 외에도 서갑숙, 방은희, 전무송 같이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들의 젊은 모습을 보는 것도 이채롭다. 또한 '쉬리'(강제규 감독),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 '실미도'(강우석 감독)의 촬영을 맡았던 김성복이 촬영감독을 맡았고 저 유명한 신중현의 장남이자 그룹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황무지'의 OST는 김종서의 목소리와 서태지의 베이스 연주로 시나위 4집 앨범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 두 영화의 각본은 1990년 지금은 없어진 예술기획에서 시나리오집으로 출간이 되기도 했다.
'칸트씨의 발표회'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몇 번 공개된 적이 있지만, '황무지'는 무려 31년 만에 관객에게 공개되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시네광주 1980' 포스터 |
영화는 1988년 5월 광주에서 첫 공개하려고 했지만 당시 문화공보부와 광주시청의 상영 중단 압박 속에 투자사에 필름을 빼앗겼다. 닷새 뒤 서울 혜화동 상영에선 이 영화의 VHS 테이프마저 문공부에 압수됐다. 관객과 만난 건 2000년대 초 서울 아트시네마의 기획전에서 상영됐던 게 유일하단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
이미 1997년 법정기념일로도 제정된 5·18이 무려 40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 비극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 사회를 민주화시키는데 결정적인 토대가 된 사건에 대한 역사인식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핵심에 관한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이 세력들을 주요 동력으로 삼았던 한 정당의 원내대표가 최근 5·18을 폄훼해 공분을 일으킨 의원들의 문제적인 발언들에 사과하며 "5·18을 기리는 국민 보통의 시선과 마음가짐에 눈높이를 맞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한 일은 얼마나 다행인가.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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