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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칼럼] '나'라는 악기를 통해 드러내고 연대하기

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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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최근 생황과 피리·태평소를 다루는 연주자 서민기의 공연을 보았다. 국악기뿐 아니라 현악기와 타악기, 신체와 목소리, 수화 언어까지 다양한 악기로 어우러진 공연은 악기와 음악에 대한 나의 좁은 정의를 깨트린 시간이었다. 특히 국악기라고 하면 가야금이나 꽹과리·장구 같은 것만 떠올리던 나는 공연을 통해 '생황'이라는 악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공명통에 여러 개의 죽관을 끼워 넣은 생소한 형태로 두 손으로 받치다시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은 순식간에 나를 압도했다.

그가 연주하는 생황은 죽관이 서른일곱 개로, 각기 다른 관의 길이와 관에 있는 지공의 위치 차이로 서로 다른 음을 낸다. 하나로 매끈하게 재단된 소리가 아닌 여러 개의 관으로 동시에 나오는 소리, 날숨뿐 아니라 들숨까지 연주되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작은 진동이 이는 걸 느꼈다. 소리는 물체의 진동에 의해 생기는 음파가 귀청을 울려 귀에 들리는 것이다. 소리의 시작이 물체의 '진동'에 있다는 것이 새삼 새롭게 자각되었다. 진동은 청각보다 촉각에 가까운 하나의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러 갈래로 나오는 소리들은 어떤 움직임에서 출발했을까. 그 파장은 내게 어떤 움직임으로 나타날까.

연주자의 들숨 날숨을 통해 이어지는 연주는 마치 내면의 소리를 숨기지 말고 기꺼이 말하라고, 여과 없이 드러내도 된다고 다독이는 듯했다. 무수한 책임과 감정 속에서 발화되는 여러 겹의 목소리를 가진 나는 생황을 연주하는 그의 곁에서 함께 진동하며 나 또한 소리를 내고 싶은 하나의 악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각 개인이 속한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러 역할과 책무를 요구받는 우리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 주어진 역할에 따른- 엄마라면, 가장이라면, 직원이라면, 자식이라면 등등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고 인식되어온 당위성이 목소리 앞뒤로 따라붙어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자신조차 헷갈리기도 한다. 여러 자아의 소리뿐 아니라 발화되지 못하고 쌓여가는 소리, 억압된 소리도 있을 것이다. 감정이나 욕망은 대개 감추는 것이 지성인인 마냥 교육받아 왔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진동들이 '나'라는 개별적인 악기를 통해 드러날 때, 새로운 음악이 된 소리들을 함께 발견하고 공감하며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아스팔트 위로, 웅덩이 위로, 활엽수의 잎으로 닿는 곳마다 다른 소리가 나는 빗소리를 생각한다. 우리가 떠올리는 빗소리는 비가 내리는 소리라기보다는 어딘가에 닿아서 들리는 소리다. 진동이 있어도 매질이 없다면 들리는 소리도 없다. 나는 매질을 찾고 있는 작은 진동을 모르지 않는다.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그래서 주저하는 이들의 진동이 곳곳에 있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 한 사람이 낸 작은 용기로 누군가가 용기를 내고, 더 많은 사람이 용기를 내어 결국엔 그것이 큰 파장을 가지게 된 것을 기억한다. 2016년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으로 각계의 미투 운동은 고통받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수면 위로 끌어냈다. 고통과 싸움의 끝은 요원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작은 떨림이 두려움과 고민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우리가 매질이 되어줄 수 있다. 들어주고 연대함으로써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 나의 소리를 담아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주변의 작은 소리들도 귀 기울여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라는 악기를 통해서 해야 하는 연주일 것이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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