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직선제 했다면
영원한 2인자 김종필?
세계적 2인자는 덩샤오핑
한국정치 모처럼 등장한
2인자 한동훈, 질주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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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
'1980년 서울의 봄'은 민주화의 새싹이 움틀 뻔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집권으로 끝났지만, 만약 시위대의 요구대로 대통령 직선제 국민투표가 이뤄졌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이런저런 경로에서 접한 답은 다소 의외였다. 당시 권력투쟁을 벌이던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중 김종필이 당선됐을 것이란 추정이었다. 국가권력 공백기의 국민적 불안감에다 충청·영남권의 강한 지지세를 가졌던 그가 유리했다는 분석이다. 김종필은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영원한 2인자'로 불린다. 33세에 박정희(44세)와 5·16 쿠데타를 감행한 그는 박 대통령 아래에서 2차례 국무총리를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이란 유명한 말을 남기며 망명 아닌 망명길에도 올랐다. 후일 대통령이 된 김영삼·김대중에 비견하면 비운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Chat GPT'에게 실세 2인자로 최정상에 오른 역사적 실례를 들어보라니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을 가장 먼저 꼽았다. 그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 이래 1인자 마오쩌둥의 견제를 받았지만, 이후 부총리 등을 거치며 2인자로 권력을 쥐었고, 이른바 그의 별칭이 된 오뚝이처럼 거듭 일어나 부여된 관직(국가 원수)과 별개로 완전한 1인자가 됐다. 1990년대까지 흑묘백묘론이란 실용주의 노선으로 '거인 중국'을 잠에서 깨웠고, 일선에서 물러나서도 장막의 1인자로 장쩌민(국가 주석)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한국 정치에 모처럼 2인자가 탄생했다. 짐작하겠지만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다. 개인적으로 그를 관찰하는 취미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의 언변 때문이다. 속도감 넘치는, 서술 문장 같은 그의 말은 작문을 직업으로 하는 나에게는 흥미롭다. 질문의 농도, 현장 위치에 따라 답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회피하는 능력은 나름 카리스마를 구축한다. 사실 정치인은 '말'로 승부가 가려진다. 지도자가 직접 호미를 들고 밭을 갈지는 않는다. 호소력과 논리를 담은 말과 연설은 대중정치의 처음이자 끝이라 해도 무방하다.
'한동훈 관찰'의 또 다른 흥미는 그가 흡사 연예계의 '라이징 스타'처럼 팬덤을 구축한 2인자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팬심이 있다. 김종필이나 덩샤오핑과는 다른 종류의 2인자다. 신예의 등장이란 면에서는 어쩌면 버락 오바마를 연상케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듯 '넘버 2' 혹은 '넘버 3'는 묘한 소구력이 있다. 2인자는 응원을 유발하고 감정이입이 쉬운 존재다. 인생은 늘 2인자, 3인자의 무리 속에 정상을 꿈꾸기 때문일 게다.
정치의 세계는 새 인물을 갈망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그 강도가 더하다. 빨리빨리와 싫증의 교체지수가 높은 정치문화 탓인지도 모른다. 50세 한 전 장관이 결국 집권여당 국민의힘 간판이라 할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됐다. 그의 정치진로에는 오히려 험한 마이너스 길이라 평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그는 윤석열 정권의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됐다. 2인자의 처신은 어렵다. 그는 말했다. '당신은 결국 1인자 윤석열의 아바타가 아닌가'란 물음에 "누구를 맹종한 적이 없다. 윤석열 검사(대통령)와 가치를 공유했을지언정 이익을 공유하지는 않는 관계다"고 했다. 나는 대개의 2인자처럼 그가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쓸쓸히 내려올지, 아니면 마침내 정상을 향해 질주할지 무척 궁금하다. 이건 그를 향한 호불호를 떠나 정치생리와 권력의 속성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다.논설실장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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