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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言官(언관)의 기개가 그립다!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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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언론학 박사)

몇 년 전 인터넷신문에 '낮술 언관의 자격'이란 칼럼을 실은 적이 있다. 아시다시피 언관(言官)은 조선조 언론기관인 사간원·사헌부·홍문관 등 3사(司)의 관원을 칭한다. 이들 언관은 지존인 임금에게 할 말을 하는 게 의무였다. 권력에 대한 간쟁과 논박이 일과였다. 직언이 도구였다. 그게 여론의 반영이자 공론이었다. 언론의 역할이었다. '벼락이 떨어져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서슴지 않는다'고 대사헌 서거정(徐居正)은 언론 후학들이 즐겨 인용하는 유명한 문장으로 그들의 기개를 표현했다.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줄 아는 언관에게는 유독 낮술이 허용됐다. 언관은 지부극간(持斧極諫), 도끼를 지고 들어가 간쟁하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면 그 도끼로 죽임을 당하겠다는 자세였다. 순지거부(順志拒否), 임금의 뜻이더라도 옳지 않으면 거부했다. 삼간불청즉거(三諫不聽則去), 세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그 직에서 바로 물러났다. 낮술을 마실 자격(?)을 부여받은 것도 이 정도의 각오가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언관은 항상 임금의 언행을 감시했다.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 임금 맘에 들도록 왜곡 조작하는 거짓언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임금도 언관에게 함부로 요구할 수 없었다. 조선조 후기 대간제도가 붕괴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현재 상황을 대입하면 우리나라가 도대체 역사와 전통이 있는 나라인지 의아스럽다. 현 대통령의 움직임, 언행을 누가 하나하나 살피고 있는지, 간쟁하고 논박하고 있는지, 영부인의 처신에 대해 누가 점검하고 비판하고 있는지. 언론의 바른 언론창달을 지원하고 있는지, 탄압하고 있는지. 방송통신위원회는? 왜 MBC는? KBS는? YTN은?

5년 단임제인 현 헌법하에서 대통령은 모두 처음 하는 초보이다. 특히 정계입문 몇 달 만에 당선된 현 대통령은 초보 중의 초보인 셈이다. 그렇다면 준비안 된 초보답게 '배우며 생각하고(學而思), 생각하며 배우는(思而學)'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날로 정진하며, 더욱 조심해서 국정을 운영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를 뽑은 국민은 여론은 지난 2년간 보수성향·진보성향 여러 신문과 방송이 쏟아내는 뉴스와 해설을 하나하나 지켜봐 왔다. 종합적인 평가가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결과이다. 물론 모든 책임은 당연히 대통령 1인에게 있다.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길게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런 '무지 무능 불통 오만'이라 정리되는 대통령을 누군가는 직언하며 올바른 길로 이끄는, 언관 같은 사람들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게 초점이다.

조선조 언관의 역할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언관이 근무하던 곳과 같은 기관이 현재에도 감찰기관 등으로 존재할 게 아닌가. 어느 자리가 과거 사간원 등 언관의 후예가 종사하던 자리라면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살폈어야 할 게 아닌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직언을 하고, 직언이 안 먹히면 즉시 물러나는 용기 있는 사람은 눈을 닦고 봐도 없단 말인가. 대통령실은 무엇 하는 기관인가. 오리엔테이션은 하지 않는가. 매뉴얼은 있는가. 관록의 국무총리는 보릿자루인가. 직언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을 하는가. 조선조 언관들은 직언할 분위기가 돼서 '삼간'을 했는가. 직언은 고사하고 '두둔' 모드로 작동하고 있으니…. 간쟁시스템이 없거나 가동되지 않는 것 같으니…. 과거 언관의 모습이 떠오른다. 역사 속의 '지부극간' 언관의 기개가 그립다!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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