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대구 상륙작전
오래 살다 보면 정치도 변해
대구의 거대 담론, 해결 공약
중요한 것은 도시의 섬세함
도시를 진정 사랑하는 시장이
박재일 논설실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언어구사는 듣기에 따라 독설에 가깝다. TK통합이 난항을 겪자 그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는 대구경북민 앞에 싹싹 빌어라. 무산되면 100% 국민의힘 책임이다"고 했다. 지난 2월 말 국민의힘 안방인 대구에서 열린 민주당 현장 최고위원 회의에서였다. 이달 7일 민주당은 대구에서 최고위를 다시 소집했다.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를 확정한 직후다. 정 대표는 "TK통합으로 1년에 5조원, 4년에 20조원을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이 중심이 돼 추진하겠다"고 했다. 앞서 '내가 대구를 위해 무엇이든 다해드림 센터장이 되겠다'던 정 대표는 이날 "사랑해요 대구"를 외쳤다.
오래 살다 보면 여러 변화를 겪는다. 정치도 그렇다. 대구시장 선거가 전국 핫 이슈로 떠오를 날이 올 줄 누가 장담했겠는가. 이제 막 시작이지만, 민주당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전례 없이 고무됐다. 박지원 의원은 "대구도 우리가 먹는다"고 했다. 김부겸 후보는 "이재명 정권에서 나를 써먹어야 대구가 살아난다"는 논리를 편다. TK신공항, 로봇수도 대구, 메디시티, AI(인공지능) 전환은 여당 시장이라야 가능하다는 의미다.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이번처럼 대구 총공세에 몰입한 적은 드물다. 30여년 전 비슷한 사례가 있기는 했다. 1997년 대선 후보 김대중은 대구에서 두 자릿수 10% 득표를 목표로 했다. 그는 당선된 뒤 대구에 '밀라노 프로젝트'를 선물했다. 섬유산업 고도화인데, 성공 여부는 별개로 하고 수천억원이 지원됐다. 물론 광주에는 첨단산업단지, 비엔날레, 서해안 고속도로 등 더 퍼부었다는 지적이 있기는 하다.
정치적 약속은 지켜지기 어렵다. 막상 추진하려면 지역 간 이해관계에다, 돈도 들고 추진력도 떨어져 슬그머니 포기한다. 김부겸 후보나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이 대구에 새끼손가락을 걸며 공언한 대부분 공약은 기실 창의적인 건 아니다. 신공항, 로봇, AI, 메디시티 모두 대구 현안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다 아는 해묵은 아이템이다. 몰라서 안 한 것들이 아니라 능력이 없어 못했다. 물론 민주당의 20조원 현찰공약은 예외적 유혹이긴 하다.
그렇다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반문할 법하다. 당신이 주장하는 바는 뭔가? 나의 희망은 약간 다르다. 대구의 섬세함, 속살을 들춰내는 것이랄까. 지금 대구 도심은 쇠락 중이다. 예를 들면 대구의 역사적 기업이자 동성로의 얼굴인 대구백화점 본점 건물은 수년째 자물쇠를 걸어잠근 채 방치되고 있다. 경북도청 후적지도 비슷한 처지다. 정부가 국립근대미술관에다 국립뮤지컬콤플렉스를 만들어주겠다는데도 굳이 화원 교도소 부지가 낫다고 까닭 없는 몽니를 부려 하세월이다. 통합을 종교 신조처럼 믿은지는 몰라도 미술, 음악, 오페라, 뮤지컬을 한 통속에 집어 넣은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엉망이 됐다. 진짜 까닭을 알 수 없이 대구시가 손을 뗀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은 구미시의 긴급구호 대상이 됐다. 234만 도시에 대한 조예 부족이 부른 참사다.
도시는 정교하고 섬세한 것들에서 빛이 난다. 서울의 청계천이나 성수동 도심재생이 그런 것들이다. 대구의 길고 긴 근대 골목도 그런 재료다. 거창한 비전은 차라리 쉽다. 애정 어린 시선이 가해져야 한다. 촘촘히 얽힌 대구의 산업, 문화, 역사 생태계를 복원해야 도시 발전을 근원적으로 앞당긴다. 현찰 이상의 그 무엇이다. 대구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길러 올리는 작업이다. 온몸으로 이 도시를 진짜 사랑하는 시장이 2026년 7월 1일 등장할 수 있을까.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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