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춘향 ‘미’ 리나 씨, 한국 향한 10년 일편단심…대구 생활 3년차
우크라이나 출신 경북대 유학생… “정·한·멋 마음으로 배웠다”
전쟁 속 가족 걱정에도 봉사·학업 이어가며 한국 사회 꿈꿔
지난달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 앞 특설무대에서 열린 제96회 글로벌 춘향선발대회에서 '춘향 미'로 뽑힌 리나(23·우크라이나·경북대 대학원)씨가 경북대 글로벌프라자 앞에서 손 하트를 만들며 한국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춘향에게 몽룡이 있었다면, 저에겐 한국이 있었습니다."
11일 경북대에서 만난 리나(23) 씨는 웃으며 10년 가까이 한국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삶을 이 한마디로 함축했다.
제96회 글로벌 춘향 선발대회에서 '미(美)'에 선정된 리나 씨는 현재 경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우크라이나 출신 유학생이다. 이날 만남에서 그는 대회 출전은 물론 한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냈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리나 씨는 인터뷰 내내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단순히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이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사람이었다. 한국어를 처음 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여 왔다는 느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정', '일편단심', '마음'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설명할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들과는 조금 달랐다. 단순히 배운 표현이 아니라 오랜 시간 스스로 체득한 언어처럼 들렸다.
그가 한국어를 처음 접한 건 어린 시절이었다. 여러 외국어와 문화를 배우는 걸 좋아했고 우연히 접한 한국어의 발음과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영어를 비롯해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지만 그는 "한국어 소리가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졌다"며 "그냥 외국어 하나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생활한 후 어머니의 해외 취업으로 에스토니아(북유럽)로 이주했다. 하지만 그곳엔 한국 문화를 접할 환경이 거의 없었다. 한국 대사관도, 한국학 과정도 없었다. 한국어 교재를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는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고 도서관 자료를 찾아가며 혼자 한국어를 익혔다. 리나 씨는 "그때는 그냥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계속 공부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어느새 10년에 가까워졌다. 이후 탈린 세종학당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동안의 노력은 한국어 말하기 대회 1등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후 교수 추천으로 한국 교환학생 기회도 얻었다. 성균관대·동국대·경북대 등에서 공부했고 현재는 정부초청장학생으로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춘향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고전 속 여성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가치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인물 해석에 대해 "춘향은 사랑과 절개, 그리고 정의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 역시 어쩌면 춘향과 닮아 있다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한국을 좋아했고 그 마음을 계속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정·한·멋'이라는 단어 이야기도 꺼냈다.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하기 어려운 표현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 문화를 머리로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실제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한국 문화도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함께 밥을 먹으며 반찬을 챙겨주고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식사 문화였다. 그는 "한국에선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행동 안에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 앞 특설무대에서 열린 제96회 글로벌 춘향선발대회에서 '춘향 미'로 뽑힌 리나(23·우크라이나·경북대 대학원)씨가 경북대캠퍼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현재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경북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2024년 경북대에 입학, 대구 생활 3년차에 접어들었다. 서울보다 외국인이 적지만 대구가 오히려 더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경상도, 대구 사투리를 배우는 재미도 있다. 대프리카더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더위를 좋아해서 그런지 대구 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며 "더위가 생활하기 더 좋은 부분도 있다"고 했다. 어느날 앞산공원을 산책하다가 원피스와 구두 차림으로 그대로 산 정상까지 올라간 이야기를 꺼낼 때는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만큼 대구에 산이 많아 등산하기 좋다는 의미였다.
무대 위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던 도중 하루살이 한 마리가 얼굴 주변을 날아다니다 한복 저고리 위에 내려앉은 것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끝까지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오히려 그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했던 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미소를 보였다. 평소 곤충도 무서워하지 않는 성격 덕분에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고국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표정이 무거워졌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전쟁 중이다. 고국에 있는 아버지와 할머니는 여전히 위험 지역에 머물고 있다. 5년째 만나지 못하고 있으며 아버지는 군 복무 중이다.
그는 "전쟁이 시작됐을 때는 매일 울기만 했다"며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좌절 대신 봉사활동으로 마음을 버텼다. 에스토니아 재학 시절 우크라이나 지원 활동에 참여해 구호물품 정리와 홍보 활동 등을 맡았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에서도 영어 읽기 봉사와 통역 활동 등으로 이어졌다.
리나 씨는 앞으로 한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글로벌 춘향으로서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의미다. 조심스럽게 귀화에 대한 꿈도 전했다.
지난달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 앞 특설무대에서 열린 제96회 글로벌 춘향선발대회에서 '춘향 미'로 뽑힌 리나(23·우크라이나·경북대 대학원)씨가 경북대 글로벌플라자 앞에서 손 하트를 만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그는 "게 귀화는 단순히 국적이 바뀌는 의미가 아니다"며 "제 뿌리를 간직한 채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겠다는 약속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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