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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로에서] 버킷리스트

2026-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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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장애에 시각까지 잃어가는
‘베니’ 구경선 작가가 건넨 울림
거창한 목표 대신 소박한 간절함
두려움 딛고 해외 유학에도 도전
“까불어 본다”는 삶 깨우는 응원

박주희 영남일보 문화팀장

박주희 영남일보 문화팀장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 국어사전에 명시된 '버킷리스트'의 정의다. 한때 큰 유행처럼 번졌고 지금도 유효한 '당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라'는 권유는 무심결에 수긍하게 되면서도 정작 내 삶에 피부로 체감되는 현실은 아니었다. 뭔가 거창한 목록을 작성해야 할 것 같은 강박과 함께 '여건이 되면' '좀 더 여유가 생기면'이라는 핑계 속에 미래의 숙제로 남겨두곤 했다. 나에게 버킷리스트는 삶의 동력이라기보다 언젠가 이루고 싶은 막연한 상상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버킷리스트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달 임재양외과의원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만난 구경선 작가 덕분이었다.


마흔셋인 구 작가는 두 살 때 열병으로 청각을 잃은 데 이어, 시야가 점차 좁아지다 시력을 잃게 되는 희귀 난치병 '어셔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현재 정면 8㎝ 정도의 터널 시야만 남아있는 상태이지만 다행히 10년 전 수준의 시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대신해 소리를 들어줄 귀가 큰 토끼 '베니'를 그리는 작가다. '싸이월드 스킨작가'로 첫 직업을 가졌고 현재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베니'의 작가이자 희귀난치성질환 홍보대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녀는 10년 전 캐릭터 '베니'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펴냈으며 이 책은 올해 초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다.


북토크 이후 읽어본 그녀의 저서에는 눈이 보이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들이 적혀 있었다. 작업실 갖기, 엄마에게 미역국 끓여드리기, 헤어진 친구 찾기, 소개팅해 보기, 플리마켓 참여하기,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연락처 묻기,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기, 헬렌 켈러의 소원 대신 들어주기 등이었다. 목록 하나하나마다 눈이 마저 어두워지기 전에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애틋함과 따뜻한 마음이 배어 있었고, '버킷리스트는 굳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삶을 향한 소박한 간절함'이라고도 말해주고 있었다.


현재 그녀는 또 다른 버킷리스트를 향한 도전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북토크를 통해 밝힌 그녀의 다음 행보는 바로 '베니' 캐릭터의 해외 진출과 유학이었다. 매니저처럼 그녀의 북토크를 돕던 남편은 "해외 진출과 유학은 정말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냥 앞만 보고 일단 '하자'고 하는 편"이라고 부연했다.


비장애인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인데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사람이 해외로 나간다니 염려 섞인 걱정을 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그녀도 "새로운 환경과 일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눈이 보이는 지금 더 많이 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다. 그냥 한번 '까불어 보는' 것"이라고 유쾌하게 대답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나이, 남들의 시선, 현실적 상황 등을 핑계 삼아 내 마음의 서랍에 '안 될 이유'와 '불안', '한계'라는 단어부터 채워 넣곤 한다. 그 단어들에 갇혀 시작도 하기 전에 자신의 크고 작은 버킷리스트를 먼지 쌓인 미래로 미뤄버린다.


장애라는 무거운 장벽 앞에서도 간절하게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해 나가며 당차게 전진하는 구 작가의 태도는 나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했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 내 삶의 동력은 무엇인가. 나의 소박한 간절함은 무엇인가. 과연 나는 내 삶의 가능성을 어디까지 열어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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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현장의 목소리와 울림을 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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