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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체코 브르노(Brno) <中>

2026-10-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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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 체코 브르노의 대표적 종교 유적이다.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 체코 브르노의 대표적 종교 유적이다.

브르노의 대표적 종교 유적은 페트로프(Petrov)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이다. 슈필베르크 언덕이 정치적 권력과 도시의 수호를 상징한다면 나란히 도시의 높은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페트로프 언덕은 종교적 권위와 도시의 위세를 상징한다.


이 성당은 브르노 시내 어디에서든 보이는 도시의 랜드마크이다. 84m 높이의 거대하고 날렵한 네오고딕 양식의 쌍탑이 구시가지를 굽어보고 있다. 건축적으로 보면, 11~12세기 로마네스크 예배당에서 출발해 고딕과 바로크, 네오고딕 양식이 공존하는 모라비아의 상징적 건물이다. 체코의 10코루나짜리 동전에는 'Katedrála sv. Petra a Pavla(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 이름과 함께 성당 도안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화폐의 모델이 됐다는 것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유적이라는 의미이다.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의 내부. 중앙 제단과 정교한 조각상,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조화롭다.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의 내부. 중앙 제단과 정교한 조각상,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조화롭다.

안으로 들어가니 웅장한 고딕 양식의 외관과 달리 화려하고 우아한 바로크 양식 장식이 주를 이룬다. 중앙 제단과 정교한 조각상,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조화롭다. 입장료가 있지만 '탑 전망대와 보물실'도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전망대 계단 입구에 작은 예배당이 눈길을 끌었다. 15세기 후반에 만든 후기 고딕 양식의 수태고지 예배당(Chapel of the Annunciation)이다. 예배당을 지나 좁은 계단을 꼬불꼬불 올라가니 구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담기는 시원한 풍경이 펼쳐졌다. 생각보다 좁지 않아서 종을 매단 종탑 공간은 물론, 성물과 전례 용품을 전시한 보물실도 꽤 큰 규모였다. 이곳의 종탑은 또 브르노의 도시 역사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30년 전쟁 당시 슈필베르크 성의 항전 역사와 결부된 이야기가 전해오기 때문이다.


1645년 어느 날, 30년 전쟁의 불길은 3개월 넘게 브르노를 큰 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스웨덴군은 이미 주변을 휩쓸고 내려와 도시를 포위했고, 시민들은 성벽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브르노를 지키는 이들은 병사만이 아니었다. 시민과 성직자는 물론, 아이를 안은 어머니들까지 모두가 성벽 안에서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있었다. 브르노가 무너지면 오스트리아 빈(Wein) 방면이 뚫리므로 이 전투는 전쟁의 승패와 직결되어 있었다. 식량은 줄어들고 불안은 커졌으며, 누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때 전령이 급히 소식을 전했다. 스웨덴 군이 총공격을 시작한다는 나쁜 소식과 정오까지만 버티면 물러날 거라는 좋은 소식이었다. 병사와 시민들은 온 힘을 다해 공격을 막아내며 초조하게 시간을 셌다.


데니스 가든의 콜로네이드(열주 회랑). 뒤로 바울 대성당의 첨탑이 우뚝 솟아 있다.

데니스 가든의 콜로네이드(열주 회랑). 뒤로 바울 대성당의 첨탑이 우뚝 솟아 있다.

해는 높아갔고, 공격은 더욱 거셌다. 성벽이 흔들리고 지친 수비대의 숨도 거칠어져 갔다. 모두가 기다린 것은 단 하나,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 순간 성당의 종이 울렸다. 스웨덴 군은 지친 듯 물러났고, 시민들은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종이 울린 실제 시간은 11시였다. 종지기가 도시를 살리기 위해 한 시간 빨리 종을 친 것이다. 덕분에 도시는 살아남았고, 브르노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 그리고 기지로 제국을 지켜낸 용감한 도시로 기억됐다. 이 이야기로 인해 성당의 종소리는 도시를 지켜낸 슈필베르크 성과 함께 시민들의 용기와 지혜를 상징하게 됐다.


대성당을 나와 또 들러야 할 곳은 뒤편의 데니스 가든(Denis Gardens)이다. 19세기 초에 조성된 도심 공원으로, 브르노 시내와 슈필베르크 성 등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 명소이다. 공원에는 나폴레옹 전쟁의 종전과 평화를 기념하는 높은 오벨리스크와 고전주의 양식의 콜로네이드(열주 회랑)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공원 테라스에 서면 북쪽의 슈필베르크 성부터 구시가지, 남쪽의 현대식 건물들까지 브르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유 광장의 페스트 기념탑. 왼쪽의 높은 탑은 구 시청사 탑이며, 멀리 야채 광장의 분수가 보인다.

자유 광장의 페스트 기념탑. 왼쪽의 높은 탑은 구 시청사 탑이며, 멀리 야채 광장의 분수가 보인다.

이제 4악장 '거리'와 5악장 '시청사'가 연주된다. 데니스 가든에서 대성당을 끼고 돌아 내려오면 아래쪽에 시민들의 일상이 담긴 거리와 시청사가 있는 구시가지가 펼쳐진다. 구시가지의 중심은 13세기 무역로 교차점에 형성됐던 자유 광장(Náměstí Svobody)과 전통 시장인 젤니 트르흐(Zelný trh), 즉 야채 광장이다.


자유 광장은 브르노의 중심 광장으로, 브르노 관광의 시작점이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오랜 건물과 독특한 조형물, 활기찬 카페와 상점이 어우러져 있다. 이 광장의 대표적 구조물은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건립된 페스트 기념탑(Plague Column)이다. 도시를 휩쓴 무서운 전염병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극복을 기원하는 기념탑이다. 꼭대기에 금빛 광채를 두른 성모 마리아상이 있고, 여러 성인의 조각상이 기둥 주변을 감싸고 있다.


자유 광장의 총알 모양 천문 시계. 30년 전쟁 저항 365주년을 기념해 2010년 세워졌다.

자유 광장의 총알 모양 천문 시계. 30년 전쟁 저항 365주년을 기념해 2010년 세워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검은 탄환 모양의 천문시계이다. 30년 전쟁 당시 스웨덴군의 포위 공격에 맞선 브르노 시민들의 승리와 저항 365주년을 기념해 2010년에 세운 총알 모양의 검은색 석조물이다. 모양만큼 시각을 알리는 방법도 독특한데, 구슬을 아래로 떨구어 관광객이 기념으로 가져가도록 한다. 그런데 구슬은 정오가 아니라 11시에 떨어진다. 성당의 종처럼 '한 시간 빠른 정오'를 알리는 것이다. 매일 오전 11시 정각이 되면 시계 내부에서 유리구슬이 아래로 떨어지는데, 하단에 있는 4개의 구멍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 어느 구멍으로 나올지 모르므로 관광객들이 구멍마다 미리 손을 넣고 대기하는 모습 또한 오전 11시 전 자유 광장의 익숙한 풍경이다.


야채 광장. 중앙에 파르나스 분수가 있고, 뒤쪽 가운데 건물은 그란데차 호텔, 오른쪽 흰색 건물은 레두타 극장이다.

야채 광장. 중앙에 파르나스 분수가 있고, 뒤쪽 가운데 건물은 그란데차 호텔, 오른쪽 흰색 건물은 레두타 극장이다.

야채 광장은 시민들의 일상과 더욱 가깝다. 양배추 광장으로도 번역되는 '젤니 트르흐(Zelný trh)'로, 중세부터 현지인들이 농산물과 전통 음식을 판매하던 전통 시장이다. 광장에 늘어선 천막 노점들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현지 상인과 주민들의 생생한 일상이 펼쳐지는 생활 공간이었다. 광장 중앙에는 17세기 바로크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파르나스 분수(Parnas Fountain)가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다. 얼핏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 궁전(페테르고프)의 대분수 조각상이 연상될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하다. 여름 궁전의 분수 조각상이 사자의 입을 찢고 있는 삼손이라면, 이곳은 헤라클레스가 쇠사슬로 지옥의 개 케르베로스를 붙잡고 있는 모습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 왕궁(Hofburg Palace) 외벽에 있는 조각상과 같은 장면이라고 한다.


이 광장의 '지하 미로'도 들러볼 만한 곳이다. 중세에 만들어진 8m 깊이의 지하 공간인데, 전쟁 시 피난처 겸 상업용 저장고로 지어진 것이다. 이후 연금술사의 실험실, 선술집, 와인 저장고, 고문실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이 들락거리는 공동체 공간이 됐다. 이곳에 들어서면 잠시나마 중세 시대로 타임슬립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디트리히슈타인 궁전. 브르노에서 가장 큰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디트리히슈타인 궁전. 브르노에서 가장 큰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이 광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디트리히슈타인 궁전(Dietrichstein Palace)이다. 17세기 초 올로모우츠 주교이자 추기경이었던 디트리히슈타인의 거주지 겸 총독 관저로 건립된 건물이다. 브르노에서 가장 큰 바로크 양식 건물로서, 20세기 초부터 '모라비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 건물 오른쪽의 레두타 극장(Divadlo Reduta)은 1767년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11살의 나이에 누나와 함께 방문해 기념비적인 연주회를 열었던 곳이다. 당시 타베르나(Taverna)로 불리던 이곳은 중앙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가운데 하나였다. 극장 앞에는 당시의 역사적 방문을 기리기 위해 천사의 날개를 단 어린 모차르트 동상과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 극장은 현재도 오페라, 발레, 연극 등이 활발히 열린다.


박물관 건물 왼쪽에는 또 이름도 괴상한 '줄 위의 거위 극장(Divadlo Husa na provázku)'이 있다. 레두타가 전통 극장이라면 실험적인 공연을 주로 하는 대안 극장이다. 이 극장은 1967년 브르노의 젊은 예술가들이 브르노 출신의 저명 예술가 이르지 마헨(Jiří Mahen)의 극본 '줄 위의 거위(Husa na provázku)'를 따서 만들었다.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공연을 하던 이곳은 197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정권 시절 큰 위기를 맞는다. 당시 체코의 공산당 서기장이자 대통령이었던 구스타프 후사크(Gustáv Husák)의 이름이 문제였다. 극장 이름에 들어간 'Husa(거위)'라는 단어가 대통령의 성인 'Husák'를 연상시킨다며 왕조시대의 '피휘(避諱)'처럼 그 단어를 못 쓰게 한 것이다. 이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젊은 예술가들은 그 단어만 쏙 빼고 'Divadlo na provázku(줄 위의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브르노 시민들은 오히려 이 극장을 더 응원하였고, 지워진 이름 자체가 공산 정권의 억압에 저항하는 강력한 상징이 됐다. 1990년 공산 정권의 몰락과 함께 이름은 다시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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