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창란각’서 해례본·언해본 묶어 간행
조선어학회 영인본보다 앞선 대구의 한글 유산
“대구에 한글 유산 기념 공간 조성해 자부심 높여야”
1946년 대구 중구에 소재한 출판사 '창란각'이 발행한 합부훈민정음 표지. 경북대 백두현 교수 제공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대구에서 특별한 책 한 권이 출판됐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을 한데 묶은 '합부 훈민정음'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우리 말과 글을 되찾아가던 시기에 한글의 창제 원리와 쓰임이 생생히 기록된 책자가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그로부터 80년 후, 대구에서 탄생한 '합부 훈민정음'은 오늘날 시민들에게는 낯선 이름으로 남아 있다. 갖은 혼란 속에서도 한글을 지키고 보급하려고 애썼던 과정 모두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한글날을 맞아 합부 훈민정음이 대구에서 탄생하게 된 배경을 따라가며, 이 책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본다.
◆대구서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합부 훈민정음'
대구 중구 대구근대역사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1945~1948, 해방 이후 대구를 보다' 전시실에서 황수진 학예연구사가 합부 훈민정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윤화기자
합부 훈민정음은 한글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한문으로 풀이한 훈민정음 해례본과 훈민정음의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 적은 언해본을 한데 묶어 간행한 책이다. 해방 이후 대구지역 정치·사회·교육·문화 등 주요 변화를 나타내는 역사물 중 우리 말과 글을 되찾고 보급하려 했던 시대적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료로 손꼽힌다.
1940년 7월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뒤 국어학자들은 소장자인 간송 전형필의 도움을 받아 원본을 베끼고 번역해 신문과 소식지 등을 통해 내용을 알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해례본 원본을 정식으로 출판하지 못했다. 이후 해방 이듬해인 1946년 4월에 대구 동성로에 있던 출판사 창란각이 해례본과 언해본을 합친 합부 훈민정음을 펴냈다. 같은 해 10월 조선어학회가 간행한 영인본(원본을 사진·인쇄 방식으로 그대로 복제한 것)보다 앞선 결과물이다. 해방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과 관련된 서적을 대구가 가장 먼저 출간해 한글 보급 활동에 대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합부 훈민정음이 대구에서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배경으론 당시 대구의 탄탄한 출판·인쇄 기반이 꼽힌다. 대구 출판·인쇄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상도 전역을 관할하던 경상감영이 대구에 자리하면서 서적 간행과 인쇄를 담당하는 기능이 갖춰졌다. 이 같은 인프라가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지며, 대구에 여러 인쇄소와 출판사가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자연스레 서적과 신문, 각종 인쇄물을 제작하는 기능도 발전했다. 대구근대역사관 황수진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이어온 출판·인쇄 전통이 근대에도 이어져 계몽사를 비롯한 여러 출판업체가 대구에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됐다. 합부 훈민정음을 펴낸 창란각 역시 이 같은 상황에서 파생된 출판업체다"며 "창란각을 운영한 이창 선생은 당시 유명한 지식인이었다. 여러 해례본 계통 가운데 비교적 원본에 가까운 판본을 바탕으로 합부 훈민정음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창란각이 한글 보급 활동의 전초기지를 담당했다는 사실과 대구의 남다른 출판·인쇄 역량을 보여주는 주요 사례"라고 덧붙였다.
◆"대구의 한글 유산 기념할 공간 필요해"
경북대 백두헌 교수
합부 훈민정음이 대구에서 가장 먼저 간행됐다는 사실을 학계에 알린 이는 경북대 백두현 교수(국어국문학과)다. 합부 훈민정음에 대한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고 1999년부터 각종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훈민정음 해례본을 토대로 만든 최초의 단행본이 1946년 대구에서 간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09년 학계에 발표된 후, 합부 훈민정음은 해방 후 가장 먼저 출판된 해례본의 전사본으로서 훈민정음 연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자료로 평가받게 됐다.
백 교수는 "합부 훈민정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선 이를 펴낸 창란각 운영자 이청 선생의 구체적인 행적을 살피는 게 필수였다"며 "국가기록유산부터 1930년대 발간된 잡지까지 살펴봤지만, 깊이 추적하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책에 담긴 표현에서 이청 선생의 발간 취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청 선생이 합부 훈민정음을 '정음학도(한글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의 유일 지침서'라고 표현한 점에 대해 주목했다. 광복 이후 한글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새로운 연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책을 펴낸 점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는 것이다. 그는 "광복 직후 대구에서 '합부 훈민정음'을 간행한 것은 훈민정음 연구자와 학도들이 해례본을 접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길을 연 일"이라며 "한글을 널리 알리고 연구 기반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대구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합부 훈민정음'을 발간한 출판사 창란각이 있던 터. 공사가 중단된 채 장기간 비어 있다. 홍예원 수습기자
백 교수는 한글 관련 역사·문화 콘텐츠가 풍부한 대구에서 합부 훈민정음이 제대로 각광받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의 바람은 간단했다. '합부 훈민정음'이 간행된 창란각 터를 중심으로 한 기념 공간 마련이다. 이 책의 존재와 의미, 그리고 광복 직후 대구에서 한글을 지키고 보급하려 했던 이들의 노력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창란각 터에 '합부 훈민정음' 간행을 기념할 작은 전시관을 만들자고 대구시에 줄곧 건의했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성사되지 않았다"며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동성로에 한국인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훈민정음 문화공간이 만들어진다면 대구 청년들에게도 지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글 역사와 관련한 인물·자료를 한데 모아 기념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백 교수의 주장은 지역 학계에서도 공감대를 얻고 있다. 창란각 터가 대구 대표 번화가인 동성로에 남아 있는 만큼, 역사적 공간과 한글 콘텐츠를 연결해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뜻을 같이했다. 김덕호 전 한글학회 대구지회장(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대구에서 합부 훈민정음이 간행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비롯해 지역의 한글 관련 역사와 인물을 발굴하는 일 자체가 중요하다"며 "대구에도 이상화 시인처럼 우리말을 갈고닦으며 그 가치를 높여온 문인들이 많고, 조금만 더 찾아보면 한글과 연결되는 역사적 자산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인물과 자료를 각각 흩어놓기보다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시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백 교수 말처럼 관련 자산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기념하고 알릴 수 있는 공간이나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윤화
사회1팀 조윤화 입니다. 중구 동구 시민단체 복지 맡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