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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남긴 옛 명작, 칼끝에서 다시 피어나다…서각가 백랑 이정환, 동화사 승시축제 특별전

2026-10-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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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호국관서 11일까지 작품 38점 선보여
‘세한도’부터 독립선언문 병풍까지 칼끝으로 재현

9일 오전 동화사 사명대사 호국관에서 만난 이정환 서각가가 직접 글씨를 쓰고 칼로 새겨 완성한 독립선언문 8폭 병풍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9일 오전 동화사 사명대사 호국관에서 만난 이정환 서각가가 직접 글씨를 쓰고 칼로 새겨 완성한 독립선언문 8폭 병풍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추사 김정희의 섬세한 붓질부터 단원 김홍도의 생동감 넘치는 풍속화까지. 붓과 먹으로 완성된 옛 명작들이 서각(書刻)이라는 또 다른 예술로 되살아났다. 나무 위에 글씨와 그림을 옮겨 한 획 한 획 칼로 새긴 작품들이다.


서각가 백랑(白浪) 이정환 작가가 2026 동화사 승시축제를 맞아 오는 11일까지 대구 팔공산 동화사 사명대사 호국관에서 특별전을 연다. 팔공문화원 초청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사명대사 호국관 개관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국내보다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에서 주로 활동해 온 이 작가의 작품 38점을 선보인다.


9일 오전 사명대사 호국관에서 만난 이 작가는 "그동안 국내에서는 전시를 많이 열지 않았는데, 동화사 승시축제와 사명대사 호국관 개관을 기념하는 자리에 초청받아 38점의 작품을 선보이게 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눈여겨볼 작품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서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평소 추사의 글씨를 좋아한다는 이 작가는 원작의 섬세한 필치와 먹의 농담을 나무 위에 옮기는 데 공을 들였다. 글씨의 형태뿐 아니라 붓이 지나간 자취까지 칼끝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추사의 붓질은 아주 섬세하다. 그 붓질을 따라 일일이 파내고 색을 입힌다"며 "옻칠을 한 뒤 색을 입혀 완성한 작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환 작. 권혁준기자

이정환 작. 권혁준기자

이정환 작. 권혁준기자

이정환 작. 권혁준기자

독립선언문을 새긴 8폭 병풍도 주목할 만하다. 이 작가가 직접 글씨를 쓰고 칼로 새겨 완성한 작품으로, 천안 독립기념관의 의뢰를 받아 제작했다. 그는 "작품을 본 사람들이 추사의 글씨와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평소 추사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필체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화가인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재현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을 나무 위에 옮기고, 원작의 색채를 살려 회화적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 작가는 "김홍도의 그림에 나오는 색깔을 그대로 사용한다"며 "무엇보다 원래 그림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말했다.


중국 여산폭포와 관련된 작품에도 특별한 사연이 담겼다. 중국 여산의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직접 탁본해 제작한 작품으로,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와 명말청초 서예가 왕탁의 글씨가 어우러져 있다.


이 작가는 "이백이 시를 쓰고 왕탁이 글씨를 썼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며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의 시와 글씨가 하나의 작품으로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의 호인 '백랑'은 시인 박목월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한양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 작가는 대학 1학년 때 '바람 속에서'라는 시를 썼다. 학보에 실린 이 시를 당시 한양대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던 박목월 시인이 읽고 이 작가를 찾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대학 졸업식 날 박목월 시인은 직접 운전해 이 작가를 강원도 낙산사로 데려갔다. 의상대에 올라 바위에 부딪히는 하얀 파도를 바라보던 박 시인은 그 자리에서 '백랑'이라는 호를 지어줬다.


이 작가는 "당시에는 다른 호를 쓰고 있었는데, 박목월 선생님께서 졸업 선물처럼 백랑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백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회상했다.


이정환 작. 권혁준기자

이정환 작. 권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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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준

영남일보 권혁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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