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이행강제금’ 불안 확산
팔리지도, 짓기도 어려운 섬 농지의 현실
동부본부 홍준기 기자
요즘 울릉도에서는 수년째 풀만 무성하던 밭에 예초기가 돌아가고, 잡목이 자란 땅에는 작물이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농사지을 사람이 늘어난 것도, 농업 경기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울릉군이 올해 농지 851.7㏊를 대상으로 이용실태조사에 들어가면서 주민들의 긴장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422.7㏊는 심층조사 대상이다.
주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25%'라는 숫자다. 농지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농지를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등 일정한 사유가 확인되면 처분명령을 받을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해당 농지 가액의 25%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다. 다만 농사를 짓지 않았다고 곧바로 부과되는 것은 아니며 법적 절차와 정당한 사유 등을 따져야 한다.
"팔라고 하면 팔 수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주민의 이 말에는 울릉도 농촌의 막막한 현실이 담겨 있다. 급경사지가 많고 농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밭도 적지 않은 데다, 농사지을 사람은 줄고 인건비와 물류비 부담은 커졌다. 북면 김규백 씨(67)도 부지깽이나물 재배를 이어가기 어려워 농사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일손이 부족하고, 땅을 팔고 싶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사놓고 방치하거나 불법 전용한 땅은 당연히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평생 농사를 지어온 고령 주민과 투기 목적의 소유자를 같은 잣대로만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울릉도에는 농사를 짓지 않는 땅뿐 아니라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묵힐 수밖에 없는 땅도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 앞서 밭을 정리하고 작물을 심으려는 움직임은 주민들의 불안감을 보여준다. 풀을 베거나 나무를 심었다고 농지 이용이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농지정책이 농사보다 조사 대응을 먼저 걱정하게 만드는 상황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농민 입장에서는 평생 일군 땅이 어느 날 처분 대상이 될까 하는 걱정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농지 실태조사는 필요하다. 다만 풀이 얼마나 자랐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왜 농사를 짓지 못했는지, 왜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처분 대상과 정당한 사유, 처분명령 유예 요건도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지금 울릉도에서 들리는 예초기 소리는 농업이 살아나는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내 땅이 처분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주민들의 불안이 만들어낸 소리일 수도 있다. 농지를 지키는 법은 필요하지만, 농사지을 사람도 땅을 살 사람도 없는 섬의 현실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번 조사가 찾아야 할 것은 풀 무성한 밭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농사지을 사람이 사라진 이유다.
홍준기
발로 뛰는 현장 취재와 심층 기획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가치를 기록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