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초선에서 5선 의장까지
“후배들에겐 정치 오래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청년 유출·공항공사 사택·농지 규제에 쓴소리
“군민에게 정직한 정치인으로 남고 싶다”
울릉군의회 최초의 5선 의원인 이철우 의장. 홍준기기자
"후배들에게 늘 이야기합니다. 정치 너무 오래 하지 말라고요. 한 3선 정도 하면 정치도 알고 사회도 알게 됩니다. 그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습니다."
35년 전 지방자치의 출발선에 섰던 청년 정치인이 이제 후배들에게 정치를 오래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울릉군의회 최초의 5선 의원인 이철우 의장이다. 1991년 4월 만 38세에 처음 군의원 배지를 달았던 그는 8년의 정치적 공백을 거쳐 다시 의회로 돌아왔다. 숱한 선거와 정치적 갈등을 겪으며 5선 의장에 올랐지만 긴 정치 인생을 돌아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16일 영남일보와 만난 이 의장은 자신의 정치 인생과 울릉도의 미래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남한권 울릉군수와의 관계에서는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청년 인구 유출과 공직사회 인력난, 울릉공항 직원 사택 문제, 정부의 농지 규제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1991년 첫 당선 당시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잠시 옛 기억을 더듬었다. 이 의장은 "당시는 지방자치가 막 시작됐을 때라 솔직히 뭘 제대로 알고 출마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5선 의원이 되고 의장까지 맡고 보니 이제는 군민들에게 어떻게 해야 실망을 주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오랜 정치 경험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꿔 놓았다.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가 따라오는 다른 일과 달리 정치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면 곁을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서운하고 원망스러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그는 "떠날 사람은 결국 떠나더라. 그렇다고 모두를 원망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밝혔다.
정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로는 과거 특정 정치인을 도왔던 경험을 꼽았다. 당시 진심을 다해 도왔지만 이후 관계가 틀어졌고, 그 과정에서 재산상 손실과 건강 문제까지 겪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후 다른 정치인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부 주민에게 서운함을 드러냈던 일도 후회한다고 털어놨다. 이 의장은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표를 줬든 주지 않았든 모두 같은 군민인데 이제는 누구든 품고 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남한권 군수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협력과 견제의 필요성을 함께 강조했다. 군정 운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때도 있지만 감정적인 대립으로 문제를 풀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군수와 대화가 잘 안 될 때도 있고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의장이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군수 역시 군민들에게 약속하고 당선된 사람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면 의회도 도와줄 것은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집행부의 모든 결정을 의회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군정에 문제가 있다면 지적하고 바로잡되 의견 차이는 대화로 풀어가는 것이 의장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울릉군의회 최초의 5선 의원인 이철우 의장. 홍준기기자
울릉도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청년 문제를 가장 먼저 꺼냈다. 젊은이가 울릉도에 남아도 미래가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겠느냐는 질문에 듣기 좋은 말부터 하지 않았다. 이 의장은 "지금 울릉도는 청년들을 위한 방향이 확실하게 설정돼 있지 않다. 젊은 사람들을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여건이 안 된다. 일자리 하나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청년 인구 유출을 막으려면 주거와 결혼, 자녀 교육, 안정적인 직장까지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울릉군 공직사회의 인력 구조를 걱정했다. 외지에서 들어온 공무원들이 일정 기간 근무한 뒤 떠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조직의 중간 허리가 약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조직은 피라미드처럼 중간에서 받쳐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울릉군은 그 허리 역할을 할 인력이 부족하다. 과장과 젊은 직원 사이에서 일을 이끌어갈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가장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 전출 제한 제도의 실효성을 재검토하고 지역 출신 청년들의 공직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주택 공급과 정주환경 개선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꼽았다.
최근 논란이 된 울릉공항 직원 사택 부지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공항공사의 사전 협의 부족을 지적했다. 공항공사는 49억원을 들여 사택 부지를 매입하고도 진입도로를 확보하지 못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의장은 "공항공사가 땅을 매입할 때 울릉군과 조금만 협의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닌가. 울릉도 사정은 현지 행정기관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런 부분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공항공사가 진입도로 개설을 위해 울릉군의 협조를 요청한 데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군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 부담을 떠안기는 쉽지 않지만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한 대안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군수와 이 문제를 깊이 논의해 보지는 않았다. 울릉군도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계속 늦어지는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다른 해결 방법이 있는지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에 대해서는 도서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릉도는 급경사지 농지가 많고 고령화와 인력난으로 농사를 계속 짓기 어려운 주민도 적지 않다.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 의장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땅도 있고 사정이 있어 농사를 짓지 못하는 땅도 있다.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는 게 울릉도 현실이다. 육지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주민들이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투기 목적의 농지 취득과 불가피한 휴경·상속농지는 구분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만 국가 법률을 지방의회가 직접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국가가 법을 정해 추진하는 일을 지방의회가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정부가 울릉도 같은 지역의 사정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사람들의 형편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울릉공항 개항과 특별자치군 추진 등 지역의 굵직한 현안에 대해서는 개발과 정주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개발사업보다 주민 한 사람이라도 더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이 중요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 의장은 "개발을 해야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살아야 개발도 의미가 있다. 옛날 울릉도에서는 길을 뚫고 파도를 막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결국 사람이 살기 위한 일이었다. 지금도 개발과 주민 생활을 함께 챙겨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산 낭비와 행정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소신을 드러냈다. 주민 세금이 잘못된 판단으로 낭비돼서는 안 되지만 고의적인 잘못과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고의로 한 일인지, 열심히 일하다 생긴 실수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무조건 책임만 묻고 처벌하려 하면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 결국 주민들이 손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공직자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결정을 미루는 행정으로는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의회가 철저히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인터뷰가 가족 이야기로 넘어가자 그의 말투가 달라졌다. 정치하면서 가족에게 가장 미안했던 순간을 묻자 지난 세월을 털어놨다. 이 의장은 "가족에게는 평생 죄를 짓고 살았다. 남을 위해 봉사한다고 돌아다녔지만 욕을 먹을 때는 가족까지 함께 욕을 먹었다. 어렵게 모은 돈도 정치하면서 많이 썼다. 돌이켜보면 가족들에게 너무 큰 희생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특히 아내 이야기를 하면서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집사람은 한 번도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묵묵히 남편 뒷바라지만 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된 사람은 가족이다. 생각할수록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밝혔다.
후배들에게 정치를 오래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정치적 성취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젊을 때는 잘 모른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정치가 아무리 중요해도 가족보다 앞설 수는 없다. 후배들에게 너무 오래 정치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고 말했다.
정치 인생을 마친 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정직한 정치인'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는 "내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다. 고집도 있고 남에게 쉽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의정활동만큼은 정직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군민들이 나중에 '이철우가 다른 건 몰라도 의정활동은 정직하게 했다'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과거 주민들의 응급상황을 돕기 위해 한밤중에도 차를 몰고 나섰던 기억도 떠올렸다. 교통과 의료 여건이 열악했던 시절, 주민들이 병원에 데려다 달라며 늦은 밤 전화를 걸어오면 직접 움직였다고 했다. 이 의장은 "밤 12시, 새벽 1시에도 전화가 왔다. 아픈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산길을 넘어 다닌 적이 있다. 그렇게 주민들 곁에서 발로 뛰며 정치를 해 왔다"고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군민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울릉도를 '외로운 섬'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동해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는가. 그런데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울릉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분들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1991년 38세 초선 의원으로 출발해 5선 의장에 오른 이철우.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세월과 함께 옅어졌지만 가족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가 정치 인생의 끝에서 바라는 것은 거창한 평가가 아니었다. 군민들에게 정직하게 일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35년간 울릉도 정치 현장을 지켜온 노정객의 바람은 소박했다.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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