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룩백'. <메가박스중앙 제공>
단풍이 짙어지고, 낙엽이 날리는 가을, 어딘지 모를 마음의 헛헛한 자리를 영화와 드라마가 메운다. 거장의 신작부터 심리 스릴러와 메디컬 누아르, 푸드 드라마, 시대극까지 소재도 장르도 다양하다. 극장가에는 예술의 향기가 짙은 영화 네 편이, 안방에는 입맛대로 골라 볼 드라마 네 편이 연이어 찾아온다. 올가을 화제작 가운데 가을밤을 알차게 꾸며 줄 8편을 개봉·방송 순서대로 소개한다.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영화들
가장 먼저 관객과 만난 작품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호평받은 '룩백'이다. 지난 8일 개봉한 이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 '브로커'(2022)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진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과 각본, 편집을 맡았다. 가족의 의미를 섬세하게 짚어 온 감독이 이번에는 가족이 아닌 친구, 그것도 창작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두 소녀의 관계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이어진 두 소녀의 우정을 다룬다. 학교 신문에 네 컷 만화를 연재하는 후지노는 데구치 나츠키가, 세상이 두려워 방 안에만 머무는 쿄모토는 고레에다 감독과 여러 차례 작업한 마키타 아쥬가 연기한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함께 그림을 그리며 성장해 가는 모습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2024년 개봉한 동명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 32만 명을 모은 바 있어 실사 영화에 대한 관객 반응이 궁금해진다.
'국민 어머니' 김혜자의 연기가 빛나는 '여전히 찬란하게'.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는 21일에는 한국 영화 두 편이 나란히 관객과 만난다. 먼저 송일곤 감독의 '여전히 찬란하게'는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절을 함께 보낸 단짝 친구를 60년 만에 다시 만난 순옥의 이야기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세월 끝에 재회한 두 사람이 지난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는 과정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순옥 역을 맡은 '국민 어머니' 김혜자는 "꽃 같은 소녀들의 꿈과 찬란했던 순간들, 소중한 우정의 이야기다. 그 소녀들을 기억해야 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라고 영화를 소개하며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오래도록 기억해 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곁들였다. 김혜자 외에 박서경, 최주은, 문성현, 차미경, 조성하, 이세영 등이 함께했으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됐다.
현실과 AI 사이의 괴리를 다룬 연상호 감독의 '실낙원'. <CJ ENM 제공>
쉬지 않고 연출하고 있는 연상호 감독의 '실낙원'은 같은 날 개봉하는 심리 스릴러다. 9년 전 캠핑스쿨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소영에게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선우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AI 프로그램 속에 열 살 모습 그대로 멈춘 아들과 만나며 하루하루를 버텨 왔던 소영이 진짜 아들이 나타나면서 흔들리게 되는 묘한 심리가 감상 포인트다. 그리움 끝에 마주한 기적이 오히려 불안과 의심으로 번지는 아이러니가 긴장감을 자아낸다. 연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가 쓴 3페이지 분량의 메모를 보고 직접 돈을 주고 구매해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모자가 협업한 영화라서 더욱 기다려진다.
앤 해서웨이의 연기 변신을 만날 수 있는 '베러티'. <소니픽쳐스 제공>
22일에는 올봄에 개봉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에 이은 앤 해서웨이의 새 영화 '베러티'가 찾아온다. 영화 '디 아이디어 오브 유'(2024)로 앤 해서웨이와 호흡을 맞췄던 마이클 쇼월터 감독이 연출한 심리 스릴러로,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콜린 후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사고로 다시는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 베스트셀러 작가 베러티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그녀의 대저택에 들어간 대필작가 로웬이 숨겨진 베러티의 자서전 원고를 발견하고, 베러티 부부의 비밀과 마주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 스릴러 영화다. 앤 해서웨이는 사고 이후 자신의 방에서 지내는 유명 작가 베러티를 통해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로웬 역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015)의 다코타 존슨이, 베러티의 남편 제레미 역에는 '오펜하이머'(2023)의 조쉬 하트넷이 캐스팅됐다. 세 배우가 만들어 내는 미묘한 긴장과 심리적 균열이 볼거리다.
천재적인 수술 실력으로 거대한 부조리를 깨부수는 '닥터X: 하얀 마피아'. <SBS 제공>
◆다양한 입맛의 드라마들
드라마의 포문은 지난 9일 첫 방송한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가 열었다. 실패도 타협도 모르는 천재적인 수술 실력으로 거대한 부조리를 깨부수는 외과의사 계수정의 활약을 그린 사이다 메디컬 누아르다. 의사 용역 소개소에서 파견돼 구서대학교병원의 위계질서를 실력 하나로 뒤엎는 계수정 역은 2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하는 김지원이 분했다. 이정은, 손현주, 김우석이 가세했고 드라마 'VIP'와 '악귀'의 이정림 감독이 진두지휘했다. '모범택시', '열혈사제'로 흥행 계보를 이어 온 SBS 사이다 장르물의 첫 메디컬 도전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막힌 속을 뚫어 주는 통쾌한 전개로 방송 2회 만에 1.49%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932년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총독부에 위장 잠입한 소매치기와 엘리트 통역관의 첩보 로맨스를 다룬 '100일의 거짓말'. <tvN 제공>
이어 지난 10일에는 tvN 개국 20주년 특별기획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이 베일을 벗었다. 1932년 경성을 배경으로, 밀정이 된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와 조선총독부의 엘리트 통역관이 적의 심장부에서 마주하며 벌어지는 100일간의 첩보 로맨스다. 김유정이 소매치기에서 통역생으로 위장 잠입하는 이가경을, 박진영이 두 개의 이름을 지닌 총독부 인물을 연기했다. 김현주는 저격수 유소란으로, 이무생은 그를 돕는 조력자 유필립으로 나서 어른들의 로맨스까지 더했다. 시대극의 묵직함에 첩보와 로맨스의 긴장감을 겹친 구성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유인식 감독이 연출자인 것도 눈에 띈다. tvN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눈물의 여왕'의 24.9% 기록을 깰 수 있을지 기대된다.
요리와 경쟁, 그리고 그 속의 사람 이야기를 담은 '파이널 테이블'. <SLL 제공>
24일에는 JTBC 토일드라마 '파이널 테이블'이 첫선을 보인다. 요리와 경쟁, 그리고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한데 버무린 푸드 드라마다. 최고의 한국인 요리사를 가리는 서바이벌 대회 '더 테이블: K 셰프 2026'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셰프들이 모여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안효섭은 해외에서 활동해 온 세계적인 셰프 강한 역을 맡았다.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은 뒤 '더 테이블'에 참가해 패밀리아 레스토랑을 대표하게 된 인물이다. 홍화연은 패밀리아의 홀 매니저 최송이를, 장률은 강한의 강력한 라이벌인 차우진을 연기했다. 단순히 요리 실력을 겨루는 서바이벌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사연을 품고 모인 셰프들이 경쟁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작품의 중요한 볼거리다.
10년 만에 재회한 유연석과 서현진의 연기 호흡이 기대되는 '라이어'. <MBC 제공>
30일 첫 방송하는 MBC 금토드라마 '라이어'도 큰 기대작이다. 처음 만나 호감을 느낀 두 남녀가 좋은 분위기에서 하룻밤을 보냈지만, 정반대의 기억과 주장으로 엇갈리며 법적 다툼을 벌이는 이야기를 다룬다. '낭만닥터 김사부' 이후 10년 만에 재회하는 유연석이 심장외과 전문의 민준호를, 서현진이 강지선을 연기했다. 같은 병원의 의사로 호흡을 맞췄던 두 배우가 이번에는 진실 공방의 양 끝에 선 셈이다. 둘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끝까지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에 로맨스가 아닌 심리 스릴러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천희가 강지선의 형부 김형수로 출연해 가족 구도에 온기를 더했다.
극장에서는 거장과 스타의 신작이, 안방에서는 각기 장르가 다른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으니 보고 싶은 작품을 미리 챙겨 두는 것도 좋겠다. 점점 길어지는 가을밤, 취향에 맞는 한 편쯤은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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