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작 영화 ‘별과 모래’
제1회 뉴욕한국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현지 관객과 금호강 팔현습지 이야기로 연대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 관심도 확인
15년간 대구 기반 활동 원동력은 ‘사람의 힘’
감정원 감독은 뉴욕 현지에서 영화가 상영된 것에 대해 "대구의 한 장소에서 출발한 영화가 먼 타국에서 누군가의 고향과 기억을 불러내고, 그 기억으로 사람들이 연결되는 경험이 특별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각) 제1회 뉴욕한국독립영화제 개막식에서 개막작 '별과 모래' 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에서 감정원 감독이 답변하는 모습. ⓒLou Aguilar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대구 금호강의 팔현습지 이야기가 전해졌다.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감정원 감독의 영화 '별과 모래'가 뉴욕한국문화원(KCCNY)이 주최하는 '제1회 뉴욕한국독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돼 상영된 것이다.
감 감독은 15년간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독립영화 감독이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협동조합 컨티뉴이티(Continuity) 대표로서 지역 영화 제작·배급 활동에도 적극 나서 왔다. 2021년 첫 장편 '희수'로 전북독립영화제 대상을, 두 번째 장편 '별과 모래'로 지난해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대구 영화계의 위상을 높였다.
뉴욕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제1회 뉴욕한국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감정원 감독의 영화 '별과 모래' 스틸컷.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제공
'별과 모래'는 금호강 팔현습지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담은 작품이다. 이곳 팔현습지는 보도교 및 산책로 조성사업을 둘러싸고 2022년부터 4년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연내 착공을 계획하고 있는 반면, 수리부엉이와 담비 등 법정보호종 25종이 서식하는 만큼 공사로 인해 생태계가 훼손될 수 있다는 반대 목소리도 크다. 개막식이 열린 날 팔현습지에서는 공사 재개 소식과 함께 영화의 출발점이 된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의 720시간 행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지역을 넘어 뉴욕까지 대구의 영화와 금호강을 알린 감 감독을 만났다.
지난 15일(현지시각) 개막한 제1회 뉴욕한국독립영화제 개막식에서 개막작 '별과 모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됐다. ⓒLou Aguilar
지난 15일(현지시각) 개막한 제1회 뉴욕한국독립영화제(The 1st New York Korean Independent Film Festival) 현장. ⓒLou Aguilar
▶'별과 모래'가 제1회 뉴욕한국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소감과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소식을 들었을 때 영화를 만든 시간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팔현습지 이야기를 타국에 알릴 수 있다는 기대가 컸는데, 현장에서 큰 호응을 얻어 무척 뜻깊었다. 출발 전에는 현대미술 컬렉티브 '간질간질간질'의 김태욱 디자이너와 함께 영화의 이야기와 팔현습지를 향한 마음을 담은 'Palhyun Wetland, NOT FOR SALE.' 티셔츠를 급히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고향이 대구인 관객들을 만나 그들이 그리워하던 금호강의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대구의 한 장소에서 출발한 영화가 먼 타국에서 누군가의 고향과 기억을 불러내고, 그 기억으로 사람들이 연결되는 경험이 특별했다. 상영 후 리셉션에서는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에 대한 뜨거운 관심도 확인했다. 앞으로도 팔현습지의 소식을 꾸준히 지켜보며 지지하겠다는 분들도 있어, 이 행동이 국경을 넘은 관심과 연대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별과 모래'가 긴 생명력을 얻고 있다.
"작업적으로는 제 손을 떠났지만, 영화가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고 찾아가는 것 같다. 올봄부터 전주국제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목포국도1호선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를 포함해 한 달에 한 번꼴로 상영됐다. 정식으로 극장 개봉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어디든 상영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영화는 영화인이 아닌 대구 팔현습지 보도교 공사를 막고 싶은 마음으로 모인 '팔현습지를 지키기 위한 예술행동' 행동원들과 함께 만들었다. 참여한 예술인들의 장르가 모두 다르다 보니 영화라는 형태에 이르게 됐다. 공사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제작해 완성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영화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이 사안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다만 팔현습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려던 것은 아니고, 인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서로 다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감 감독은 "'희수' '별과 모래'를 통해 제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너무 익숙해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최근에는 올해 80주년을 맞은 '대구 10월 항쟁'에 관심이 간다"고 전했다. 지난 11일 대구 오오극장에서 만난 감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수민기자
▶전작 '희수'와 '별과 모래' 모두 사회적 맥락이 읽힌다.
"두 작품의 출발점은 다르다. '희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했다. 친구를 지켜보며 청년 노동의 시간을 담고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사회적 맥락이 담겼다. 개인의 감정은 그 사람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고 살아가는 장소와 사회적 조건 안에서 만들어져서 그런 것 같다. 반대로 '별과 모래'는 공간에서 시작해 개인으로 좁혀졌다. 두 작품을 하면서 제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너무 익숙해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최근에는 올해 80주년을 맞은 '대구 10월 항쟁'에 관심이 간다. 올해 관련 주제 전시 작업에 참여하며 알아가는 중인데, 구상 중인 영화와도 언젠가 만나는 지점이 생길 수도 있겠다. 영화 호흡을 길게 잡는 편이라 5년에 한 편 정도를 생각 중인데, 다음 작품까지 4년가량이 남았으니 한 사안에 집중할 여유가 생겼다. 아마 10월 항쟁을 계속 생각해 볼 것 같다."
▶영화의 출발점이 된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 현황은.
"올해로 월간지 '월간팔현'이 3년 차가 되면서 다른 연대 단체나 개인들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제주를 방문했을 때는 눈물을 보이는 분도 계셨다. 관찰자의 시선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의 기록과 그림으로 전시를 하는 형태는 계획 중이지만, 어떤 사업의 형태로 확장할 생각은 없다. 특히 영화 상영일과 같은 날인 지난 15일부터 공사가 재개된다는 소식에 이날부터 '팔현습지를 지키는 720시간 예술 행동'을 진행 중이다. 한 달 동안 전시 '공생공존'을 시작으로 여러 예술 형태를 통해 팔현습지를 지킬 예정이다. 설령 지켜내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실패나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팔현습지를 지켜보는 눈이 많아졌고, 사람들이 생태계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 행동이 확장된 결과가 영화 '별과 모래'인데, 이런 움직임이 대구 시민들에게도 닿아 좋은 균열을 만들면 좋겠다. 조금 더 관심 있게 바라봐 주시고, 팔현습지에도 방문해 주셨으면 한다."
▶15년간 대구에서 활약해 왔다. 최근 대구 영화 생태계는 어떤가.
"환경이 나아졌다고 말하기에는 새로운 어려움이 계속 생기고 있다. 15년 전 지역에서 처음 영화를 만들 때는 제작 지원이 전혀 없어 장편을 만들기조차 어려웠다. 지금은 장편 영화도 만들어지고, 제작진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제작비 문제를 넘어,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제작뿐 아니라 배급·유통까지 영화의 순환 구조가 지역 안에서 가능하면 좋겠지만, 서울 중심의 구조는 여전하다. 지역에서 계속 작업하면서도 이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지역에서만 포착되는 소재나 관계가 있기에 오히려 지역만의 고유한 영화적 가능성이 될 수 있다. 대구 영화계가 이어지려면 무엇이 먼저라기보다 창작-배급-상영이 연결되는 구조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행정 측면에서도 영화 문화에 대한 더 적극적인 고민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대구에서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은.
"사람의 힘이 참 크다. 예전에는 삶과 영화를 분리해서 생각했는데, 이제는 작업과 사람이 하나처럼 느껴진다. '별과 모래'를 통해 금호강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과 함께한 것이 큰 자극이 됐다. 2022년 금호강에서 함께 작업을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타 장르 예술인들의 삶의 태도를 알게 됐다. '희수' 이후에는 주변에 영화인밖에 없어 영화 안에 갇힐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금호강을 자주 다니며 하루하루를 감각하다 보니 작업의 원천도 더 많아졌다. 이 활동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실험적이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잘 해냈다. 이 같은 '사람의 힘' 덕분에 계속 대구에 머무르는 것 같다."
정수민
공연장 지박령. 지역의 문화·예술 이야기를 구석구석 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